“그 뒤로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견제하는 것 마냥 더 자주 전화를 걸고, 집에 돌아올때면 카라마츠에게 더 집요하게 달라붙어 관계를 요구했어요. 꼭 그게 카라마츠의 사랑을 증명하듯. 카라마츠는 아이가 신경 쓰였지만 오소마츠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게 싫지 않았죠. 목요일에 갑자기 카라마츠를 데리고 나가 근처 러브호텔에서 주말까지 머무르기도 했고, 본가에 있을 땐 하루 종일 카라마츠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애무했어요. 카라마츠는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날 버리지 않고, 가끔 기분이 오락가락하며 신경이 예민해져도 오소마츠는 그저 카라마츠가 좋다고, 사랑스럽다고 안아줬으니까요. 어느 순간 카라마츠가 밤늦게 혼자 영화를 보고 있어도 이치마츠가 나타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랑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하고 아쉬워했죠. 하지만 카라마츠가 먼저 이치마츠의 방문을 두드리며 같이 영화를 보자고 할 수는 없었어요. 시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이치마츠는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소설, 시, 희곡 이것저것 두루 쓰면서 책도 몇 권 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카라마츠가 한참 서재를 뒤졌지만 이치마츠의 책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잘 팔리기는 한데 가족들에겐 보여주지 않는다고 시어머니가 서운해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오소마츠가 오랫동안 준비하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고 온 가족을 초대했어요. 그의 어머니, 이치마츠, 카라마츠까지. 배가 그렇게까지 불러오진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신경이 쓰여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들어갈 때, 나올 때만 조심하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카라마츠를 안심시켰어요. 그리고 연극 당일, 이치마츠와 카라마츠, 그리고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함께 극장을 찾았습니다. 규모가 꽤 컸어요. 카라마츠는 자리를 찾아 가면서 이러면 배우들 눈에도 띄지 않겠다고 안심했죠. 다른 생각을 해서 그런지, 카라마츠가 계단에서 옆으로 넘어가다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자 이치마츠가 손목을 낚아채 카라마츠를 붙잡았습니다. 카라마츠가 어색하게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이치마츠는 아무 대답 없이 카라마츠를 그의 곁에 앉혔어요. 그리고 연극이 시작됐습니다. 훌륭했어요. 수많은 배우들 사이에서 오소마츠 혼자 반짝거리며 빛났죠. 카라마츠는 연극의 절정에서 그만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카라마츠가 조용히 훌쩍거리자 이치마츠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그걸 꼭 붙잡은 채로 연극의 마지막까지 눈을 돌리지 않았어요. 연극이 끝났습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오소마츠와 그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앞으로 나갔고, 카라마츠는 차마 극단 사람들을 볼 수가 없어 조용히 극장을 빠져나왔죠. 곧 이치마츠가 뒤따라 나와 차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카라마츠는 그제야 손에 꽉 쥐고 있던 손수건을 눈치 채고 미안하다고, 집에 가서 세탁해서 돌려주겠다고 사과했어요. 하지만 이치마츠는 고개를 젓고 손수건을 가져가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었죠. 그리고 잠깐 있다가, 그 아이를 정말 낳을 거냐고. 이치마츠가 물었습니다. 예전에 그가 카라마츠를 비웃는 것과는 다른 목소리였어요.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그렇게 아이가 싫은 건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건가 싶어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랑하는 오소마츠의 아이고, 한 번도 아이를 낳으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건 기적이라고 대답했어요. 자긴 포기하고 싶지 않은 기적이라고. 이치마츠가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돌아와 세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어요.”
“카라마츠는 불임이었나요? 어린 나이라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해도,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같이 살면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했을 법 한데.”
쵸로마츠가 물었다.
“어렸으니까요.”
남자가 짧게 대답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 쵸로마츠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 뒤로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카라마츠와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책장에 꽂힌 비디오 중에 자긴 이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추천해주기도 했어요. 알고 보니 두 사람의 영화 취향이 비슷해서 내일은 그 영화를 보자고 약속을 하고 만나기도 했습니다. 카라마츠가 집 주변을 산책하러 간다고 하면 말없이 따라와 같이 걷기도 했고, 카라마츠가 용기를 내 이치마츠가 쓴 글을 읽어보면 안 되겠냐고 묻자 부끄러워하면서 책을 내주기도 했어요. 나쁘지 않았죠. 어딘가 모르게 오소마츠 같은 느낌도 나서, 카라마츠는 두 사람이 정말 형제인가봐요, 하고 책을 돌려주었습니다. 그게 이치마츠를 불쾌하게 만들었는지 그 뒤로 이치마츠가 다시 책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죠. 시어머니는 이치마츠의 책이 꽤 팔리는데, 베스트셀러까지 가지는 못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재능이 있지만 천재가 아닌 수재의 수준이라고.”
“이치마츠가 쓴 책을 가지고 계세요?”
“저 쪽에 꽂혀있는데.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남자가 축음기 옆에 서있는 책장을 가리켰다. 이치마츠의 글이 궁금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산달에 다다랐습니다. 카라마츠는 불안해했죠. 오소마츠는 휴가를 내고 본가에 머무르면서 카라마츠를 돌봤습니다. 가끔 자다가 카라마츠가 벌떡 일어나 너무 불안하고, 무섭고, 혹시나 잘못될까봐 걱정된다고 울면 오소마츠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기가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갈 거라고 달랬습니다. 이 집은 이치마츠가 독차지 한다는 게 아쉽지만, 하면서 농담을 하기도 했죠. 카라마츠가 배에 손을 대고 있으면 태동이 느껴졌습니다. 이치마츠는 오소마츠가 집에 계속 머무르자 카라마츠와 거의 마주치지 않았지만 간혹 오소마츠가 자리를 비울 때 와 카라마츠가 잘 있는지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배를 만져보라고 하면, 이치마츠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배를 만져보고, 카라마츠를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곤 했죠. 이치마츠가 감격한 건지, 아님 생리적인 불쾌함을 느끼는 건지 카라마츠는 한참 생각을 해봤지만 알 수가 없었어요.”
“오소마츠는 꽤 괜찮은 남편이네요.”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맞아요.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카라마츠가 아이를 낳는 날이 왔죠. 카라마츠는 병원에 가고 싶어했지만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한사코 의사를 부르겠다고 카라마츠를 말렸어요.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편을 들어주지 않고 그저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했고, 카라마츠가 고통에 까무러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온 뒤였습니다. 카라마츠의 배엔 긴 수술 자국이 남아있었죠. 의사는 이미 돌아갔다고 시어머니가 카라마츠에게 아기를 안겨주었습니다. 카라마츠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사랑스럽고 예쁜 아기였어요. 오소마츠도 카라마츠의 곁에 매달려서 펑펑 울었고, 카라마츠는 한참 아기를 들여다보다가 잠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꿈을 꿨어요. 이번에는 아기가 없는 꿈이었습니다. 오소마츠를 닮은 남자가 카라마츠의 곁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늘 방안을 뛰어다니던 아이는 구석에 서서 방문을 쳐다보고 있었죠. 카라마츠는 한참을 떨다 꿈에서 깼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그냥 꿈이었어요. 오소마츠가 곁에 있었고, 아기가 곁에 있었죠.”
아, 쵸로마츠는 그제야 눈치 챘다. 아마도 이건 이치마츠가 쓴 소설의 내용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남자는 사실 이치마츠고,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그리고 자기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한껏 지어놓고 쵸로마츠에게 꼭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글 쓰는 사람의 오만인가. 이렇게 찻집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글을 써서 버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아 부업을 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남자가 잠깐 찻주전자 안을 들여다보는 동안 쵸로마츠는 여태 들은 이야기의 화자에 저 남자를 끼워보았다. 어린 카라마츠가 잘생긴 오소마츠와 연애를 하다 아이를 낳고, 그의 쌍둥이 동생인 이치마츠와 위험한 관계에 있으면서 눈치 채지를 못하다니. 좀 진부했다. 그렇지만 쵸로마츠는 쿠키를 집으면서 이 이야기를 소설로 읽는 다면 좀 재미가 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재주가 있었다. 꼭 연극배우처럼.
“아기가 태어나고, 오소마츠는 2주간 더 머무르다 어쩔 수 없이 극단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는 한참 아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힘들게 돌아서야 했죠. 카라마츠는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면서 그에게 온 기적에게 감사하고 아기가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하고 기도했죠. 그의 시어머니가 아기를 돌봐주겠다고 나서느라 그렇게까지 육아가 힘들지는 않았어요. 카라마츠는 다시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카라마츠의 오랜 꿈이었고, 어쩌면 이 경험이 그가 연기를 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오소마츠가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연극과 연기에 관한 책들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병원에 데리고 간다며 집을 비운 날이었습니다. 카라마츠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죠. 그때 이치마츠가 서재 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카라마츠가 반가워하면서 책을 내려놓자, 이치마츠가 카라마츠가 앉은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아선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죠. 자기랑 도망가자고, 이 집은 아기에게 너무 위험하다고.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 손을 빼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재차 물었지만 이치마츠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아기를 이런 곳에서 키워서는 안 된다고, 아이에게 다른 기회를 줘야 된다고 하면서 카라마츠에게 매달렸습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왜 자기가 평생 살아온 집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동생인 이치마츠가 자기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게 불편했어요. 꼭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사랑하는 것처럼. 카라마츠는 혹시나 하고 드는 의문을 애써 무시하면서 서재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갔죠. 이치마츠가 쫓아와 문을 두드렸지만 카라마츠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가달라고, 못들은 걸로 하겠다고 소리쳤어요. 문을 잠그지도 않았는데, 이치마츠는 문을 열고 들어오지도 않고 문 앞만 맴돌다가 사라졌습니다. 카라마츠는 밤새 이 얘기를 오소마츠에게 해야 되나 하고 고민했지만 형제를, 그것도 쌍둥이 형제를 서로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또 카라마츠가 오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뒤로 이치마츠와 단 둘이 남는 때를 피했고, 더 이상 밤늦게 영화를 보지도 않았죠.”
그럴 줄 알았지. 쵸로마츠는 속으로 혀를 차며 차를 마셨다. 어느 새 차가 식어 쵸로마츠는 직접 찻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따랐다. 뜨거운 물이 담겨있던 주전자도 가벼워져 남자가 물을 더 끓여오겠다고 주전자를 들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쵸로마츠는 차를 홀짝이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단 한명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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