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마츠의 조언으로 카라마츠는 주연을 꿰어찼다. 조언이라기보단 토도마츠가 농담으로 던진 소릴 카라마츠가 그대로 실행해 운좋게도 성공한 것이지만 카라마츠는 이번 문화제의 주연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카라마츠는 연극 대본을 대학 합격증처럼 흔들면서 집으로 달려와 엄마아빠에게 한참 자랑을 하고 형제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를 설명해주곤-안타깝게도, 우리 형제들 중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알고 있는건 나뿐이었다- 줄리엣 역할을 맡은 여자애가 얼마나 귀엽고 수줍으며 자길 보면 양 뺨을 발갛게 물들이면서도 당찬 여배우라고 한참 자랑을 늘어놓았다. 누가 보면 니 딸인줄 알겠다. 오소마츠가 농담을 던져도 카라마츠는 고개를 거칠게 젓고 눈을 반짝이며 바닥에 드러누운 형제들을 다분히 연극적인 몸짓으로 돌아보곤,

"연극 연습할 때 놀러와. 연습할 때조차 완벽하다니까." 하고 대답했다.

 지까짓게 로미오에 가당찮기는 한가.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만큼의 교양과 예절은 있었다. 

 카라마츠는 넓은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목받고 싶다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연극부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부터 배우를 시켜주진 않았다. 연극부실의 청소를 하고, 무대 의상을 만들고, 소품을 만들며 선배들의 자질구레한 시중을 들기도 했다. 가끔 학교 복도를 목적없이 마냥 걷다 보면 연극부실 앞에서 카라마츠가 혼나는 소리가 들렸다. 쪼그만 여선배는 빽빽거리며 카라마츠가 얼마나 연극 연습에 방해가 되는지, 만든 소품이-이를테면 왕자가 휘두를 칼이나 주인공이 타고 달려갈 자동차 모형같은걸- 아무 짝에도 쓸수 없을 만큼 형편없게 만들었는지를 따져물었다. 그럼 놈은 한참 손바닥을 비벼대다가 자기가 밤새 만든 쓰레기를 제 자리에 버리러 부실 문을 나섰다. 늦가을 진한 색 해가 저 너머로 지려는 오후에 나는 창가에 팔꿈치를 짚고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그러나 다른 뒷모습을 한 놈이 연극 주인공의 대사같은 것을 흥얼거리며 걷는 것을 한참 보았다. 

 밤새 대사를 외우려고 했지만 형제들이 쫓아내는 바람에 카라마츠는 백열등이 어두침침한 부엌에 담요를 질질 끌고 가 대사를 외웠다. 나는 옆자리가 허전하고 왠지 조금 서늘한 것 같아 뒤척이다 일어나 조용히 부엌 뒷문으로 걸어갔다. 불은 켜지 않았다. 문 너머로 희미하게 카라마츠가 웅크린 그림자가 비쳤다. 오늘 한참동안 쥬시마츠의 야구배트로 칼싸움 하는 연습을 하겠다고 뛰었던 탓인지 이제 더이상 팔짝 뛰고, 과장된 몸짓으로 빙그르르 돌고 할 힘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서서 한참 귀를 기울이다 조심히 앉아 문에 귀를 바짝 갖다대고 인기척이 들리는지, 아님 그저 조용히 카라마츠의 숨소리가 들리는지 들었다. 오늘 밤을 새우겠다더니 예상대로 잠든듯했다. 엄마아빠도 일찍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고 형제들도 조용하다. 남자애들이 6명이 있는 집은 조용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나이를 들어도 혼자서 조용히 사색에 잠길 틈도 찾기 힘들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지붕을 두드리고, 물방울이 풀잎에 떨어지며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등 뒤에, 얇고 낡은 담요를 둘둘 말고 웅크리고 앉아 얄팍한 대본에 침을 질질 흘리며 깊이 잠들어있을 카라마츠가 있다. 잠시만,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앉으면 어릴때부터 유난히 후끈후끈하던 그의 체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맨발이 조금 시려왔다.

 쌍둥이는 어디까지 닮은걸까? 어디까지 같은거고? 나는 종종 나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형제들에게 물을 수도 없다. 너와 내가 이렇게 다른 타인인데 너와 내가 어디가 다른가를 묻는 건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괜히 젠체 하는 프랑스 영화에서나 볼법한 대사다. 그리고 읽는 것이라곤 연극대본밖에 없는 카라마츠나 할법한 대사다. 우리는 하나에서 시작해 우연히도 갈라져 타인이 되었다. 미스터리 쇼 같은데서 종종 쌍둥이끼린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우린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그러니까 다른 일반적인 형제들과는 다르고, 계속 하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카라마츠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랐다. 계속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고, 주목받고 싶어하고, 자기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별 시덥잖은 농담을 던져가며 형제들의 이목을 돌리려고 한다. 나는 카라마츠가 그렇게 행동할때마다, 꼭 그가 다른 형제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싶어하는게 아닌가 하는 굉장히 당연한 생각이 들어 불쾌해졌다. 카라마츠가 연극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불쾌하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아예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집도 가족도 뭐도 다 버리겠다는 새파란 로미오가 되어 줄리엣에게 마지막 키스를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최대한 카라마츠의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에서 놈의 연기에 흠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겠지. 

 시계 초침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카라마츠의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나는 잠깐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미닫이 문을 열었다. 반들거리는 새카만 머리통이 담요에 파묻혀 색색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동그란 머리통에 가만히 손을 올려보고, 손이 조금 녹자 천천히 그의 목 뒤로 미끄러뜨렸다. 피부가 차갑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목이 조금 녹을때까지 손을 대고 있다가 더 천천히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손을 밀어넣었다. 어깨는 더 넓어진 것 같고, 조금 마른 등에 척추뼈가 도드라졌다. 한참을 잤는지 몸이 서늘했다. 내가 계속 싫은 티를 내서인지 카라마츠는 목욕을 하러 갔을때도 나에게 등을 맡기지 않았다. 직접 몸이 닿은 일도 잘 없고, 이렇게 맨 살을 만지는 건 제법 오랜만일것이다. 부드러운 등은 곧 따뜻하게 온기가 돌았고, 나는 넣을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손을 빼 머뭇거리다 조그만 귀를 살짝 건드렸다. 카라마츠가 지난 방학에 피어싱을 하겠다고 귓볼에 뚫었던 구멍은 이미 막힌지 오래라 깨알만한 흉터만 남아있었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 흉터를 손 끝으로 살살 덧그려보다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췄다. 

 나는 이게 시작임을 알고 있다. 비웃음거리가 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카라마츠는 계속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나는 생각지도 않은 옷을 입고 부끄러운 대사를 읊을 것이다. 그럼 나는 점점 그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걸 느끼고, 부정하다가, 반쯤 포기하곤 내가 잘못된 것을 원한다는 결론에 이르를것이다. 여섯 명 중에서 내가 계속해서 하나로 남아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카라마츠뿐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까슬하게 말라붙은 입술에 보드라운 귓볼이 닿았던가, 아님 착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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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이 죽었다. 


- 죽지 않았다. 


- 캐스는 리퍼를 찾았다. 리퍼들은 대답할 수 없다며 자리를 피했고, 샘은 막 손톱을 깎은지 반년이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를 잘라도 손톱을 깎아도 팔을 잘라도 하룻밤이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 샘이 사람을 구하겠다고 닭모이 다지는 기계에 뛰어들었다. 죽지 않았다. 죽는게 나을뻔 했다. 


- 캐스가 자살시도를 했다. 목에 엔젤 소드를 꽂고 이건 잘못된 일이야, 나는 이러면 안돼, 하면서 난도질을 했다. 이번에도 죽지 않았다. 


- 내가 죽지 않으니 사람을 살리는 일에 둔감해졌다. 다섯명을 구하기 위해 한사람을 희생시켰다. 샘이 벙커를 나갔다. 


- 캐스는 혼자 내버려두면 자해를 한다. 몸은 재생이 되어도 피는 없어지지 않아 치우는게 힘들다. 


- 캐스를 유혹해 잤다. 천사는 천사가 아니게 되고 사람도 아니게 된 뒤에야 섹스에 맛을 들였다. 


- 샘이 1년만에 돌아왔다. 죽지 않는 사람에 대한 전설을 모조리 조사했다고 했다. 여태까지 남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 샘이 이번엔 뱀파이어 소굴에 뛰어들어 열명을 구해냈다. 뜯겨난 팔다리가 꿈틀꿈틀 자라나고 잇몸에서 뱀파이어 이빨이 우수수 뽑혀나왔다. 샘이 침을 뱉을때마다 피가 덩어리째 튀어나왔다. 


- 캐스의 집착이 점점 심해진다. 결국 샘에게 들키고 말았다. 


- 샘이 자살했다. 반쯤 날아간 뒤통수를 붕대로 칭칭 감고 으르렁거리는걸 무시했다. 


- 샘과 캐스가 크게 다퉜다. 캐스가 샘을 한번 죽였지만 죽지않았다. 나는 벙커에 틀어박혀 옛날 기록이나 읽기 시작했다. 샘같은 짓이다. 


- 샘에게 멱살을 잡혀 키스당했다. 한건 아니고, 머리채를 쥐어 뜯기며 입을 강제로 열었다. 샘한테는 악마도 죽이는 칼조차 무의미했다. 샘은 피냄새를 맡더니 더 흥분해서 옷을 찢어버렸다. 동생에게 칼질을 하는게 점점 더 익숙해진다. 샘이 칼을 맞고 죽었던게 한참 옛날일같다. 옛날일이 맞지만. 


- 캐스가 사온 신문의 날짜가 2070년이다. 살아있는 사람중에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구한 사람들도, 우리를 구했던 사람들도, 우리가 반쯤 죽였던 사람들도. 


-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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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비록 그 남자가 내 친아버지도 아니였고 또 내 아버지였던 시간이 채 3년도 되지 않았다해도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씹히기엔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그가 실종된 지 1년도 안 되어 새 남자친구를 구했다.  


정말 점잖고 범죄랑은 관련없는 착한 사람이야. 


개를 별로 안좋아해서 그렇지. 어머니가 투덜거렸다. 그때 남자의 손을 탔던 개들은 전부 보호소로 보냈다. 어머니는 개들에게 정이 들어 계속 키우고 싶어했지만 그 남자가 개밥으로 무슨 고기를 줬을지 어떻게 아냐고 나서자 결국 포기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다시 습관처럼 길거리에 버려진 개를 한 마리씩 데려와 키웠고 어느 새 그때처럼 개가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보상금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그 남자가 계획적으로 살인마를 탈옥시켜 둘이 도망쳤다는 설이 유력했고 어머니는 어떻게든 남자의 명예를 회복시켜보려 애썼지만 어머니보다 그와 가까웠던 이들이 그는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반박해 굴복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직접 얘기해주진 않았지만 온갖 신문과 잡지와 가쉽거리와 사람들의 눈빛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열기가 더 식기전에 비싼값에 인터뷰를 하라는 벌레같은 기자들의 전화도 하루에 두세 번씩 걸려왔지만 어머니는 대답도 없이 끊었다. 그가 우릴 버렸으니 우리도 한 번쯤 그를 팔아도 괜찮을텐데.  


어머니의 연애는 순탄치않다. 길어야 반년. 반년이면 내 새아버지가 되겠다고 웃으면서 들어왔던 남자들이 짐을 싸 욕을 하며 나갔다. 어머니는 집에 남자가 없으면 내가 그를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이사를 하고 남자들이 집을 들락거려도 그의 존재감은 옅어지지 않는다. 나는 반쯤 미친것처럼 온갖 싸구려 잡지들의 기사들을 스크랩했다. 동유럽 어드메에서 살인마를 찾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기사도 있었고 그의 수법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해됐다는 살인사건 기사도 있었다. 침대밑에 숨겨둔 신문기사는 어느새 한 박스가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으려면 세네 시간은 족히 걸릴 지경이 되었다. 


강박적으로 신문기사를 읽고 남자의 흔적을 쫓는다. 베개밑엔 총을 숨겨놓고, 집을 나설땐 벨트 안쪽으로 칼을 숨긴다. 

나의 연약하고 깊은 의식 어딘가에 언젠가 그가 다시 그의 남자와 함께 우릴 사냥하러 올거라는 예감이 매일 닦는 거울처럼 또렷해져간다. 


남자는 언젠가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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