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마츠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고기들이 보관된 냉동 창고를 지키는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돼지며 소며 하는 것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관리할 필요도 없었고, 창고 앞에 마련된 조그만 방에서 먹고 자고 하다가 식당 아줌마가 고기를 가져오겠다고 하면 같이 들어가 나르는 걸 도와주는 것이 다였다. 마주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식당 아줌마가 한 번 고기를 가져가면 일주일은 고기를 썼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를 나르면 됐다. 게다가 봉급도 적지 않았다. 숙식을 제공해주는 덕에 이치마츠는 자신의 취미생활에 돈을 조금 쓰고도 남아 저축을 할 수 있었다. 강철 문 너머에 하얗게 얼어붙은 고기들이 새파란 조명 아래에서 매달려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지만, 그가 이전에 하던 일에 비하면 훨씬 쾌적하고 마음이 편했다. 오늘도 이치마츠는 그다지 할 일이 없었고 자기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다음 달이면 계약이 끝나 다시 재계약을 하게 된다. 이치마츠는 이번에 여주인의 눈치를 살펴보고 방에서 고양이를 키워도 되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고 늘 키우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이치마츠가 한 생명을 책임지기엔 너무 어리다고 거절당했고, 부모님도, 집도. 심지어 한 쪽 얼굴마저도 잃었을 땐 고양이를 키울 방이 없었다. 성인이 된 이치마츠가 새로운 직업을 얻었을 땐 매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괴로워하다 잠이 들어 고양이를 키울 여유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조금씩 고양이를 데려올 때 필요한 것들을 사들이고 있었다. 고양이가 쓸 모래화장실이라던가, 고양이가 좋아할 쥐 인형이라던가. 어느 품종이 좋다고 딱 찍어둔 건 없었다. 이치마츠는 어느 날 그의 운명 같은 고양이를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기에도 방이 있었군!"

낮지만 요란한 목소리가 방문 앞에서 들리더니 이치마츠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무슨 일이지? 이치마츠는 당황해 잠깐 굳었다가 문 앞에 걸어둔 마스크를 꺼내 뒤집어쓰고 문을 열었다. 깜짝이야! 낯선 남자는 이치마츠의 마스크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 쳤다가 다시 미간에 힘을 주고 멋진 척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자는 눈썹이 짙고 어딘가 가벼워 보이면서도 몸이 탄탄하고 힘이 넘쳐흘렀다. 이치마츠는 본능적으로 이런 종류의 사람을 꺼리는 편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고아로 살아와야 했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불안증세도 있었으며 뭣보다 그의 얼굴에 남은 흉 때문에 주눅이 들어 눈을 직접 마주치는 것도 어려워했다. 이렇게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면서 자신감이 넘치고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은 괜히 미웠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그런 자신을 더 미워했다.

이 사람은 뭐지? 이치마츠는 아무 대답 없이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열심히 손질한 티가 역력한 머리카락, 새까만 가죽 자켓, 그리고 안 어울리는 해골벨트에 새까만 스키니진까지, 남자는 이 저택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남자도 이치마츠가 훑어보는 시선을 느끼고 씨익 웃었다.

"처음이죠, 우리? 혹시 마스크 써서 내가 못 알아보는 건가? 마츠노 카라마츠, 여사님의 비서로 왔습니다! 오늘은 여사님이 친목 모임에 나가시는 날이라 휴일!"

비서. 이치마츠는 바로 카라마츠의 정체를 눈치 채곤 피식 웃었다. 얼굴을 전부 가리는 마스크 덕에 카라마츠는 눈치 채지 못했고, 그는 대뜸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치마츠는 손을 잡아야 되나 잠깐 고민하다 결국 살짝 카라마츠의 손가락 끄트머리를 잡고 잠깐 흔들곤 바로 손을 놓았다.

"이치마츠."

"그냥 이치마츠?"

이치마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 이치마츠 하고 몇 번 되뇌어보다 역시 내가 온 첫 날 소개받은 사람 중엔 없었던 것 같군. 하고 고개를 저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이십대 초반? 카라마츠는 자기가 저택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저택이 넓고 산책하기도 좋고 밥도 맛있고 하는 얘기를 늘어놓다 문을 가로막고 서있는 이치마츠 너머로 방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저기, 들어가봐도 될까?"

이치마츠는 곧 인상을 찌푸렸지만 뭐라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문에서 조금 비켜 카라마츠가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 고양이 좋아해?"

카라마츠는 방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멋지게 다리를 꼬더니 테이블에 가득 쌓인 애완동물 잡지나 사진, 책을 보고 웃으며 이치마츠를 돌아보았다. 성인 남성이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놀리는 건가? 이치마츠는 괜히 기분이 상해 대답하지 않고 방 한편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꺼내 카라마츠 앞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잘 마실게. 카라마츠는 눈치가 없는 건지 철면피인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캔을 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치마츠는 자신의 공간에 낯선 사람이 들어온 게 벌써부터 불편해지고,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최대한 카라마츠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카라마츠가 얼른 꺼져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신기한 듯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방에 어울리지 않게 강철로 된 문을 발견했다.

"저 문이 화장실문은 아니겠지? 화장실 문은 그 옆에 있는 나무문 같은데? 저긴 어디야?"

카라마츠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말을 놓아버렸다.

"냉동 창고."

"특이하네. 방 안에 냉동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니. 저택에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냉동 창고를 따로 두고 고기를 보관하는 거야? 몇 명이더라, 여사님, , 이치마츠, 식당 이모, 경비 아저씨, 기사 아저씨. 총 여섯 명 밖에 안 되는데. 여기서 파티 같은 거 자주 열어서 그런가?"

카라마츠는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말없이 앉아 무릎 위를 손가락으로 작게 톡톡 두드렸다. 이치마츠가 말이 없으니 카라마츠는 괜히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뭔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이치마츠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정원 호수 근처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혼자 떨어져 있는 걸 본 것 같은데, 혹시 본 적 있어?"

고양이? 이치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이치마츠는 자기 방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가끔 시내에 나갈 때도 정원이 있는 정문 쪽이 아닌 그의 방에서 제일 가까운 쪽문으로 나가 버스를 타기 때문에 그가 여기서 일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원에 가본 일은 없었다. 호수가 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어젯밤에 산책하는데 어디서 애기 우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야. 그래서 설마 귀신인가? 하고 가봤는데 정말 주먹만 한 애기 고양이가 혼자 앵앵거리고 울고 있더라고. 어미가 나르다가 떨어뜨린 것 같던데, 어미가 물어가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것 같아서 오늘 아침에 확인해보려고 했다가 깜빡했어. 같이 가볼래?"

야생에서의 삶은 가혹하고, 카라마츠의 말대로 어미고양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집을 옮기다 한 마리를 깜빡했다면 새끼고양이는 거의 죽은 목숨이다. 요즘 날씨는 제법 풀렸다지만 밤에는 쌀쌀했고, 이치마츠는 얼어 죽은 고양이 시체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이치마츠가 한참 고민을 하자 카라마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끌었다.

"지금 얼른 가지 않으면 한 생명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가자!"

카라마츠의 손이 뜨끈뜨끈했다. 이치마츠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고 일어나 방문 열쇠를 집어 들고 카라마츠를 따라 나섰다. 카라마츠는 영 손을 놓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붙들려가며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있는 게 그닥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체온을 이렇게 오래 느끼고 있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지난달에 저택 앞에서 만난 고양이를 만졌을 때가 마지막인가. 두 사람은 냉동 창고가 있는 지하에서 한 층 위로 올라가 부엌을 지나가다 식당 아줌마와 마주쳤다.

"좋은 아침입니다, 마담! 아침 식사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머, 이치마츠 군이랑 카라마츠 군……."

아줌마는 말끝을 흐리며 이치마츠를 돌아보았지만 이치마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 앞을 지나쳤다. 바로 어제 식당 아줌마가 고기를 가지러 내려와 이치마츠에게 여주인의 새 '장난감'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자 대부호인 여주인은 사실 어느 요정에서 있던 '출신이 더러운' 여자였다. 그녀는 힘든 삶을 꾸려가던 중 우연히도 이 집의 원 주인인 '멍청한 박사'를 만났다. 그녀는 이것이 그녀에게 내려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온 힘을 다해 달려들어 박사의 정실부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행복한 것도 잠시, 그녀가 이 집의 안주인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년마다 박사의 아들, , 주치의가 차례로 실종되어 이 근방의 마을까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그들은 이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고-식당 아줌마는 당연히 그 세 사람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결국 박사마저 실종되는 것으로 이 집은 여주인의 소유가 되었다. 여주인은 자신에게 내려진 시련에 괴로워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상처를 극복하고 젊고 잘생긴 남자들을 데려와 잠깐 가지고 놀다 쫓아내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전 새로운 장난감이 저택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 장난감은 그 전 남자들과는 어딘가 달랐다. 자신이 남창과 다를 게 없다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고 저택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여주인이 있든 없든 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열심히 치장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어딘가 어색함이 묻어났다. 부엌 아줌마는 그런 그의 스타일을 싸구려라고 잘라 말했다. 남의 말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높은 도덕심을 요구하는 아줌마는 남자를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남창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치마츠는 간만에 활기가 넘쳐 보이는 부엌 아줌마를 보며 이런 시골에서도 재밌을 만도 하지, 하고 흘려들었던 것이다.

저택은 무지막지하게 넓었다. 둘은 부엌문으로 나와 오솔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정원은 주기적으로 전문 업체에서 나와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간만에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반짝이는 햇살에 눈을 찌푸렸다. 카라마츠는 어느 새 썬글라스를 쓰고 고양이를 담아오겠다며 작은 종이박스까지 주워들어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이치마츠가 키울 수 있을까? 카라마츠도 그닥 경험이 많아 보이지는 않은데. 이치마츠는 새삼 어색해져 카라마츠의 손을 놓았다. 카라마츠도 아차했는지 귀 끝을 붉혔다. 정원은 벚나무 몇 그루로 시작해 자작나무 숲을 지나 조그만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호숫가로 이어졌다.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훑고 지나가면서 쏴아아- 하는 소리가 났다. 돈도 많지. 이치마츠는 다음 계약 때 좀 떼를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쯤에 있었는데...”

카라마츠가 허리까지 오는 수풀 사이를 뒤지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새끼고양이가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벌써 죽었겠구나. 이치마츠는 한 쪽에 서서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호수 표면위에 비치는 구름을 한참 보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새끼고양이는 어미가 물어간거면 좋을텐데, 이렇게 좋은 날에 죽는 건 슬프다.

, 찾았어.”

카라마츠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이치마츠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입이 썼다. 만약 어제 저녁에 이치마츠가 난데없이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여기까지 나왔더라면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을까. 카라마츠는 자리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조그만 고양이를 감쌌다. 고양이는 정말 작았다. 카라마츠가 얘기했던 것처럼 정말 주먹만 하지는 않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죽은 고양이라고 해서 보기 흉하지도 않았고 그저 차갑고 숨을 쉬지 않는 고양이일 뿐이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손수건에 싼 고양이를 가져온 종이박스에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카라마츠는 풀이 죽어 말없이 서있다가 옆에 조심스럽게 종이박스를 내려놓고 어디선가 두꺼운 나무 막대를 찾아와 고양이가 발견된 수풀 한 쪽을 파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묻어줄 생각인가. 이치마츠는 속으로 카라마츠를 비웃었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서 슬퍼하는 유치원생도 아니고, 성인 남자가 새끼 고양이가 죽었다고 무덤을 만들어주겠다며 맨 땅을 파고 있는 모양이라니. 유치하다면 유치했다. 착하게 보이고 싶은 건가? 나같은 사람한테 잘 보일 필요 없는데. 하지만 카라마츠는 말없이 계속 땅을 팠다. 삽도 아니고 나무 막대였지만 카라마츠는 제법 요령 있게 땅을 팔 줄 알았다. 도시 촌놈은 아니겠구만. 카라마츠는 어느 새 조그만 구덩이를 만들어 상자를 내려놓았다. 카라마츠는 의외로 이치마츠에게 함께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자거나 혹은 무덤에 흙 뿌리는 것을 함께 하자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혼자서 고양이 무덤을 만들고 몇 번 토닥거려준 뒤에 손을 털고 일어나 조금 기운 빠진 얼굴로 아침 먹으러 돌아가자며 앞서 걸었다. 이치마츠는 지금 자신이 카라마츠를 위로해줘야 되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카라마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카라마츠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부엌 문 앞까지 한 마디도 없이 걷다가,

괜히 따라 나오게 해서 미안.”

하고 사과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별 일 아니라며 묵언의 대답을 했다. 이치마츠는 오랜만에 부엌에서 다른 직원들과 아침식사를 했다. 카라마츠는 고양이가 죽어서 슬펐다던가 하는 얘기는 꺼내지 않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마디 맞장구를 치는 게 다였다. 마스크 밑으로 밥을 먹는 게 제법 힘들었다. 이치마츠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안락하고 따뜻하고 아무도 없는 나만의 방. 이치마츠는 마스크를 벗어 문 앞에 걸어두고 소파에 주저앉는 순간 카라마츠가 그의 마스크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을 온통 가리고 눈구멍이랑 숨구멍만 몇 개 난 밋밋한 가면을 보고도. 이상한 기분. 이치마츠는 곧 생각을 털어버리고 다시 아까 읽던 책을 집어 들어 접어둔 페이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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