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는 계절이 왔다. 하늘에는 오래된 먼지 같은 먹구름이 가득 끼어 그 경계를 알아볼 수조차 없고, 습한 공기가 무겁게 깔렸다. 카라마츠의 기분이 끝도 없이 가라앉는 시간이었다. 이치마츠는 방구석에 앉아 카라마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라마츠는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그저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고 낡은 커튼이 조금씩 펄럭이기 시작하는 걸 내버려둔 채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 너는 말하는 연습을 하는 거겠지. 이치마츠는 속으로 생각했다. 한 방울이라도 비가 오기 시작하면 카라마츠는 목소리를 잃는다. 성대가 빗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첫 번째 빗방울이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카라마츠의 말소리가 멈췄다. 곧이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마른 땅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사방에 울리고, 다른 소리들은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사라진다. 빗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이치마츠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카라마츠와, 그 무기력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치마츠만 남았다.

목소리와 비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이치마츠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 늦은 밤, 이치마츠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가 안방 문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열 시간이 넘도록 비행기를 타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하소연을 하고, 카라마츠의 목에는 이상이 없더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지친 목소리였다. 비가 온다는 이유만으로 카라마츠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치마츠는 쌍둥이들의 방문 앞에 주저앉아 빗소리를 들었다. 한참 빗소리를 듣다가, 이치마츠는 눈을 감고 빗물이 카라마츠의 폐안에 가득 차오르는 상상을 했다. 카라마츠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기쁘다던가, 슬프다던가, 혹은 아프다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그 빗물은 카라마츠의 목 끝까지 차올라 카라마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파도처럼 철썩이고 있었다. 하얀 물거품이 카라마츠의 치아에 부딪쳐 사라졌다.

카라마츠는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주먹을 꽉 쥐었다가 힘을 풀었다. 가까이서 말을 할 자신은 없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응? 하고 대답을 할 것처럼 입을 벌렸다가, 자기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저 양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을 뿐.

좋아해.”

카라마츠가 눈썹을 올리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치마츠는 문 쪽으로 한발자국 걸어가 다시 카라마츠를 돌아보았다.

좋아하고 있어.”

빗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카라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걸 보고 이치마츠는 달려가 문을 붙잡았다.

더럽지. 미안. 이 비가 그치면 자살할게.”

마지막 말이 카라마츠에게 들렸을까. 이치마츠는 물을 열어젖히고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이치마츠는 아랑곳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신발을 꿰어 신고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비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목덜미를 따라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사흘이 지나도록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바다로 난 절벽 위에 쪼그리고 앉아 시꺼멓게 요동치는 바다위로 번개가 번쩍거리며 내리꽂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바다는 하루 종일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바다가 늘 새파랗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해가 떠오를 때는 꼭 저 지평선 너머에서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물 밑을 따라 흐르는 것 같았고, 해가 진 뒤에는 밤하늘 한 쪽을 끌어다 저 물밑 깊은 곳에 카펫처럼 고르게 깔아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장마의 끄트머리에선 바다가 거무죽죽한 빛으로 어두워져 화를 내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좋았어. 다른 사람들은 그저 파랗다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바다를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조금 더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너를 알 수 있어서 좋았어. 그렇게 보고 있으면 너랑 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고, 너는 내 안으로, 나는 네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빗소리 너머로 작은 돌멩이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미끄러운 돌 위에 지친 발을 내려놓는 소리도.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맨 손이 바위를 오르고 있었다. 하얗게 힘이 들어간 손가락 끝에는 흙과 모래가, 젖은 이끼가, 물에 녹아 흐려진 핏방울이 묻어있었다. 너무 이르게 날 찾아왔어. 이치마츠는 차마 그 손을 잡아당기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비가 아직 그치질 않았는데.

그리고 카라마츠가 절벽 위로 올라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사흘 만에 눈 밑이 퀭하게 들어갔고, 조금 마른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거친 숨을 고르다 고개를 들고 이치마츠를 향해 걸어왔다. 등 뒤로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가 손을 내밀고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만약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빗소리에, 천둥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라마츠의 손을 더운 물에 씻겨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치마츠는 그 손을 잡지 못하고 다시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어떻게 날 찾았는지, 나를 찾아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물어보고 싶었고, 동시에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어.

여기서 보는 바다가, 나 혼자서 보는 바다가 너 같았어.”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다가오다 멈춰서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내 목소리가 들릴까.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치고 파도가 잡아먹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날에.

여기서 보는 바다가 너 같았는데, 지금은 너무 어두워.”

카라마츠가 내밀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파도치는 소리가 무섭고, 비가 바다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무서워.”

뺨으로 뜨거운 게 흘러내렸다. 이치마츠는 손등으로 눈가에 고인 물을 닦았다. 아니, 그런 건 무섭지 않았다. 무서운 건 다른 거야. 지금 이 비가 그쳐버리고, 네 안을 가득 채운 빗물이 순식간에 말라 버릴까봐 무서워.

축축한 지면을 박차고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치마츠가 고개를 들자, 하얗게 질린 카라마츠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카라마츠의 숨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의 눈은 우는 것 같기도 했고, 또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카라마츠는 잠깐 그런 눈으로 이치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치마츠의 손을 잡았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시린 손이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파랗게 핏기가 가신 입술이 열렸다. 카라마츠는 아주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노력할게.

이치마츠는 멍하니 그 입술을 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잠깐 이치마츠의 대답을 기다리다, 다시 입을 움직였다.

노력할 테니까.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바다 밑바닥에는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바닷물을 한참 파헤치고 들어가도 그 무겁고 부드러운 물이 머리 위로 쏟아져서, 그 안에 잠겨있으면, 단념하게 된다. 그 시퍼렇고 깊은 곳에 뭐가 있는지, 내가 꿈꾸고 바라던 것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이대로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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