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 하고 통조림이 가득 든 나무상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쵸로마츠는 색깔별로 쌓고 있던 통조림을 내려놓고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토도마츠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꽉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쵸로마츠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토도마츠의 손가락에 무슨 상처라도 났는지 보려고 했지만 너무 멀어 보이지 않았다. 쵸로마츠의 곁에서 통조림을 나눠 쌓고 있던 쥬시마츠가 들고 있던 걸 모조리 바닥에 집어던지고 창고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쥬시마츠의 다급한 발소리와 통조림이 쏟아지는 소리가 창고 안에 가득 울려 퍼졌고, 바닥에 깔린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토도마츠! 괜찮아?”

쥬시마츠가 순식간에 토도마츠의 곁에 달라붙어 토도마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피가 나는 건가? 붕대는 부엌 찬장에 있었다. 쵸로마츠는 손에 끼고 있던 면장갑을 벗어 그 자리에 내려놓고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었다.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으니 붕대만 가져오면 되겠지? 쵸로마츠는 다시 토도마츠를 흘끔 돌아보았다. 쥬시마츠가 한껏 진지한 표정을 하고 토도마츠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었고, 토도마츠가 좀 훌쩍거리는 것 같더니 바지에 손가락을 쓱쓱 문질러 닦았다.

붕대 가져올게.”

얼른 갔다 와!”

쥬시마츠가 손을 흔들었다. 오늘 오후 노동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일해야 하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게 좀 찝찝했지만, 창고 정리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세 명이나 자리를 비운 상태니까 나머지 세 명만 일하는 건 억울하지. 쵸로마츠는 뻣뻣한 목을 풀면서 창고 문을 나섰다.

많이 아파?”

못이 튀어나와있을 줄 몰랐어. 저거 망치로 튀어나온 부분 좀 눌러놔야겠다.”

오는 길에 망치도 들고 와야겠군.

 

카라마츠는 순식간에 미지근해진 물수건을 찬 물이 담긴 대야에 넣고 더운 기가 가시길 기다렸다. 물수건을 계속 빨았더니 대야에 담긴 물도 점점 미지근해져 물수건을 한 번 더 빨면 물을 새로 떠와야 할 것 같았다. 아까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업고 와 자리에 눕히자마자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내리질 않았다. 카라마츠는 새빨갛게 열이 오른 얼굴을 한참 보다가 마른 수건에 손을 닦고 이치마츠의 이마에 살짝 손을 얹었다. 동그스름한 이마가 뜨끈뜨끈하게 끓고 있었다. 대야에 담구고 있던 손이 시원했는지 이치마츠의 표정이 조금 풀어져서, 카라마츠는 양 손으로 이치마츠의 얼굴을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잠을 자고 있는 건지, 아파서 앓고 있는 건지. 카라마츠는 답답했지만 이치마츠를 흔들어 깨울 수는 없었다.

약을 한 번 더 먹여야 되나? 아니면 다른 약을 먹여야 되나?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약은 종류도 얼마 되지 않았고, 빨아서 계속 쓸 수 있는 붕대와는 달리 소모품이었기에 다들 아껴서 먹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몸이 약해 툭하면 앓아누웠다. 그럴 때마다 카라마츠는 해열제를 타다가 먹이려고 했지만 오소마츠는 툭하면 약을 내주지 않았다. 도대체 두 사람은 왜 사이가 안 좋아진 거지?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대야에서 한참 식힌 물수건을 꺼내 물기를 짰다.

어렸을 땐 여섯 명이 다 같이 몰려다녔다. 특히 쥬시마츠가 형제들이랑 떨어지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울어재꼈기 때문에 쥬시마츠를 그들 가운데에 끼우고, 여섯 쌍둥이가 방주의 수많은 방들을 탐험하고 강당에 가득 쌓여있는 간이 의자들로 성을 짓고 놀았다. 의자로 얼기설기 쌓은 그들만의 성 안에 들어가면 카라마츠는 방주가 곧 세상처럼 느껴졌고, 그 성이 곧 그들을 구원해줄 작은 방주 같았다. 그 안에 형제들과 함께 들어가 있으면 가만히 있기만 해도 행복했다. 쥬시마츠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그들 중에 가장 먼저 글을 깨친 이치마츠가 도서관에서 읽은 책 이야기를 더듬더듬 들려주기도 했다. 이치마츠가 일곱 난쟁이와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꼭 붙잡으며 난쟁이 같은 게 방주 안으로 쳐들어오면 자기가 다 물리치겠다고 속삭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방주 안이 답답해지기 시작하면서 형제들은 꼭 모여서 활동을 해야 할 때가 아니면 각자의 구역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았다.

카라마츠는 있는 힘껏 물기를 짠 손수건을 펼쳐 이치마츠의 이마 위에 얹었다. 왕자의 입맞춤으로 공주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기도 공주와 뽀뽀를 하겠다고 눈을 반짝이던 동생은 어느새 아버지보다 큰 어른이 되어서 카라마츠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서재에 대체 뭐가 있기에 오소마츠가 잘 때도 손에 꼭 쥐고 놓지 않는 열쇠를 빼돌려 들어가려고 했던 걸까?

카라마츠는 순간 그 좁은 틈새로 이치마츠가 속삭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우린 속고 있다고.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우린 누구에게 속고 있는 건데? 우린 어떤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있는 거야? 카라마츠는 대야를 저 구석으로 밀어놓고 이치마츠의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가 이치마츠를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이치마츠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이치마츠의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어렸을 때부터 이치마츠의 병간호는 늘 카라마츠 담당이었다. 이치마츠는 자기 밑으로 동생이 둘이라고 형아 노릇을 하면서도 단 둘이 있을 땐 카라마츠에게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카라마츠가 어설프게 물수건을 짜 이마에 얹고, 물을 떠먹여주며 병간호를 하고 있으면 이치마츠는 팅팅 부은 눈으로 카라마츠를 돌아보며 안아달라고 울먹였다. 카라마츠가 이불 밑으로 들어가 이치마츠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리다 보면 따뜻한 체온에 둘 다 골아 떨어져서, 잠에서 깰 무렵이면 이치마츠는 말끔하게 나아있었다.

안 비좁아?”

카라마츠가 그때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감고 잠에 막 빠져들려는 순간, 문가에서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는 간신히 눈을 떠 문가로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심통난 표정으로 카라마츠를 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조금 민망해져 일어나 앉았다. 문밖에서 찬바람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는지 이치마츠가 몸을 돌려 카라마츠의 다리에 팔을 둘러 안았다.

열이 내리질 않아서 안아주고 있었어.”

변명할 필요 없어. 그런 거 따지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오소마츠가 수면실 문을 닫고 들어와 카라마츠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이치마츠의 머리맡에 툭 던졌다. 해열제였다. 카라마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툭하면 으르렁거리고 싸우긴 해도 둘은 형제였고, 오소마츠도 동생을 아끼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나중에 이치마츠가 일어나면 오소마츠가 약을 챙겨주더라고 넌저시 말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 이치마츠도 오소마츠에게 고마워할 거고, 그럼 삐죽삐죽하게 세웠던 가시도 조금 수그러들겠지.

오소마츠는 손이 시리다는 듯 양손바닥을 비비다 이불 밑으로 집어넣었다.

오후 노동은 빠진 거야?”

너랑 이치마츠가 걱정된다고 약 갖다 주고 오겠다고 하고 빠졌어. 쵸로마츠도 별수 없이 보내줬지 뭐.”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오후 노동이 끝날 시간이었다.

 

오후노동은 그들이 열 살이 됐을 때부터 해왔던 오랜 일과였다. 방주 안에 어딘가를 보수하거나 그들의 생활 유지를 위해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으면 그들은 창고 안에 모여 물건들을 옮겼다. 방주 꼭대기에서부터 네 번째 되는 층에 창고가 있었다. 창고는 강당보다도 넓었고 천장이 한참 높았다. 창고 안에는 그들이 이 곳에서 살아가며 쓸 모든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수십 년 동안 먹을 통조림, 그들 여섯 명을 위해 준비된 옷과 신발,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과 방주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한 물건들이었다. 아버지는 형제들이 열 살이 되자 작은 면장갑을 양 손에 끼워주었다.

명령은 단순했다. 이 쪽에 있는 물건들을 저 쪽으로 날라라. 그리고 물건들을 전부 저 쪽으로 나르면 다시 이 쪽으로 날라라.

아마도 물건을 나르면서 남은 물자들의 수량을 파악하고 그들이 찾기 쉽게 정리를 하란 뜻이었을 것이다. 매일 형제들은 점심을 먹고 잠깐 쉬었다가 창고에 모여 세 시간동안 물건을 날랐다.

 

오소마츠는 한참동안 이불 밑에서 손을 녹였다. 걱정하고 있던 게 해결되고 나니 카라마츠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고, 또 아까 이치마츠를 업고 뛰느라 긴장했던 근육이 슬슬 풀려 피로가 몰려왔다. 그걸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오소마츠가 손을 뻗어 카라마츠의 어깨를 끌어당겨 그에게 기대게 했다. 카라마츠는 형의 넓은 어깨에 기대 온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오소마츠도 이치마츠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거 힘들겠지.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오소마츠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소마츠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고, 곧 따뜻한 손이 카라마츠의 뺨을 어루만지다 감싸 안았다.

오소마츠.”

?”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이치마츠랑 싸우지 마.”

오소마츠는 대답이 없었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의 대답을 기다리며 빤히 보고 있어도 오소마츠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카라마츠의 코끝에 다시 입을 맞추고, 코끝에서 인중을 타고 내려와 카라마츠의 입술을 살짝 물었다. 부드러운 입술 새로 더운 숨이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모로 조금 틀어 살며시 눈을 감았다. 따뜻한 손이 카라마츠의 후드 밑으로 슬금슬금 들어오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저녁을 먹고 다시 수면실로 돌아오자 이치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있었다.

이제 깼어? 몸은 좀 어때?”

목말라.”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버석버석하게 말라있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부엌으로 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왔다. 아직 얼굴이 빨갛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은 모습이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곁에 앉아 컵에 물을 조금 따라 내밀었다. 이치마츠는 컵을 받아드는 것도 힘에 부치는지 간신히 컵을 들고 있다가 천천히 들어 입술에 댔다.

아까 오소마츠 형이 약 갖다 줬어.”

이치마츠가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옷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더 마실래?”

됐어.”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치마츠는 컵을 이불 옆으로 치워버렸다. 이치마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카라마츠도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하리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이치마츠는 기분이 확 상했다는 얼굴로 방구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천히 화해하면 되겠지.

있다가 물 더 마시려면 마셔.”

.”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가 했던 말 기억 안나?”

, 깜빡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이불에서 조금 물러나 앉아 대답했다.

우리가 속고 있다고?”

이치마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 작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뭔가 설명을 해주리라고 기대했는데, 이치마츠는 말없이 카라마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먼저 질문을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누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데?”

누굴 거 같아?”

글쎄, 여기엔 우리밖에 없으니까. 우리 중 누군가가…….”

이치마츠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카라마츠에게 다가왔다.

이치마츠, 좀 더 누워있어. 한참 앓았다니까.”

그러나 이치마츠는 쓰러지듯 카라마츠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도서관으로 가자.”

도서관은 이치마츠의 구역이었다





















사실과 맞지 않는 설정오류 같아보이는게 있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뒤에가서 설명할게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