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는 옆에 앉은 동생을 곁눈질로 흘끔 보았다. 평일 오전의 낚시터였다. 사람은 많았으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하고, 간혹 아직 힘이 남아도는 물고기가 첨벙거리고 물 튀기는 소리만 들렸다. 수면에 부딪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내가 여태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건 사랑하는 동생을 곁에 둔 탓이 아니라,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아린 탓일 것이다.

있지, 오소마츠.”

카라마츠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생들 앞에서는 늘 터프한 척 형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이름을 불렀다. 어릴 때는 형제 중에 누가 형이고 동생이고를 가리지 않고 이름을 불렀는데 어느 순간 카라마츠가 나를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형이 되고 동생이 되었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갔다. 오소마츠가 형이 되고, 형님이 되고. 그렇게 카라마츠가 나에게서 독립해가는 게 가끔 섭섭해질 때면 이렇게, 다른 동생들을 따돌리고 단 둘이 집을 나왔다. 같은 이름이라도 네가 부르는 걸 듣는 게 좋아.

최근 고민거리가 좀 있는데.”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아마 오늘 순순히 낚시터로 따라온 것은 이 얘기를 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넌 고민 좀 하고 사는 게 좋은데? , 나도 그런가?”

사람들은 나보고 쓰라리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내가 때린 것도 아닌데.”

카라마츠가 한숨을 푹 쉬었다. 쓰라리다니. 동생들이 가끔 그런 소리를 하곤 했다. 특히 막내가 사사건건 카라마츠의 옷이며 신발이며 하는 것들을 쓰라리다는 소리를 하며 지적하는데, 아마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굵어지고 오자키를 따라하며 터프한 남자처럼 굴었지만 사실 카라마츠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담아 놓고 두고두고 떠올리는 성격이었다. 어린애같다고 할수도 없고, 소심하다고 할 수도 없다. 카라마츠가 먼저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건 그냥 배려심이 많고 늘 다른 사람을, 특히 형제들을 생각하는 카라마츠의 천성이었다.

하지만 이 동생은 좀 모자란 구석이 있다. 물리적으로 때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다분히 1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는 뭐라고 생각해? 무시당하거나, 비웃음당하거나 하는 것들은 너에게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아프지 않아? 마음이 저릿저릿해지지 않아? 꼭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작아진 것처럼 눈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 느끼고 있지 않아?

그러나 카라마츠는 자기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감싸 안기는커녕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귀엽고, 멍청하고, 사랑스럽고. 자신의 상처에 둔감해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상처에도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된 일인지 네가 받을 상처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네가 상처를 줬다는 사람들에게만 시선을 돌린다. 조금 안타깝다. 네가 상처를 받아 아파하고 있으면 내가 형이란 이름으로 은근히 끼어들어 네 편이 되어주고, 너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속삭일 수 있을 텐데, 그럴 틈은 영 보이질 않는다.

나는 뭔가 내 속을 숨길 말을 떠올리며 낚싯대를 잡아 움직였다. 입질이 오지 않는다. 이래서야 연서 따위를 미끼로 내건 너와 별다를 바가 없어 부끄러운데 말이지. 나는 머리를 한참 굴리다 대답했다.

그게 너잖아? 다른 사람을 쓰라리게 하더라도 곧 적응하니까, 그냥 너는 그대로 있으면 돼.”

카라마츠는 미심쩍은 듯 곰곰이 생각을 하다 곧 고개를 끄덕였다. 도통 저 머릿속에서 어떻게 생각이 굴러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내 말이 맞는 거라고 믿고 더 이상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너에게 그런 사람이다. 웬만해선 믿고 따를만한 형. 오묘한 기분이 든다. 너에게 과분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는데서 오는 우월감과, 그 영향력이 네 안으로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데서 오는 무력함. 어느 하나를 떼어낼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이었다.

물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카라마츠의 낚싯대에도 소식이 없다. 내 낚싯대의 미끼로는 뭘 걸어놓았더라

이른 새벽 택시에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지금 뒷좌석에 탄 두 남자도 그렇다. 백미러로 슥 훑어보니 아무리 봐도 얼굴이 똑같이 생긴 게 쌍둥이 같은데, 아까 택시를 탈 때도 그렇고 어딘가 모르게 초상집 분위기가 난다.

남자 둘이다. 한 명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렸었는데, 히터를 틀고 하니까 턱까지 마스크를 내렸다. 머리가 새집같이 부스스하고, 좀 구부정하고. 눈에 힘이 없다. 아까 보니까 트렁크에 커다란 짐가방을 하나 실었던데. 독립하는 걸까? 아님 여행?

다른 하나는 눈썹이 짙다. 생긴 건 옆에 탄 형제랑 똑같이 생겼는데, 이쪽은 자세도 바르고 허리가 꼿꼿하다. 그냥 얼굴만 봐선 멋쟁이일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잠옷 같은걸 입고 위에 어중간한 가죽자켓을 입었다. 역시 친인척이 급사해서 헐레벌떡 뛰어나온 건가. 그러면 짐가방은? 둘 중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일까?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먼저 말을 걸 수는 없다. 분위기가, 영 누가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가죽자켓을 입은 쪽은 눈가가 시뻘겋게 부어서 누가 옆에서 툭 치기라도 하면 울어버릴 것 같다. 마스크를 탄 쪽도 자기 형제를 힐끔힐끔 돌아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이가 안 좋은가? 아니지, 형제끼리면 달래주고 하는 걸 좀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다.

아저씨. 잠깐만 멈춰주세요.”

마스크를 쓴 쪽이 입을 열었다. 가죽자켓을 입은 쪽이 의아하단 표정으로 돌아봤다. 딱히 급하지도 않고.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멈춰서 기다려줄 정은 있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형제도 내렸다. 마스크를 쓴 쪽이 내 눈치를 좀 보더니 도로 저 아래쪽으로 가죽자켓을 입은 쪽을 끌고 갔다.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지만,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차도 없는 도로에서. 일부러 엿들으려 한 건 아니지만 들리는 걸.

가죽자켓을 입은 쪽이 형제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처박더니 곧 무너졌다. 반쯤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엉엉 울기 시작하는데 역시 부모님 상을 치르러 가는 모양이다. 마스크를 쓴 쪽은 달래주려고 하지도 않고, 가만히 서서 형제를 내려다보았다. 이쪽은 울지 않는다.

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

가죽자켓을 입은 쪽이 울면서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뭘 어떡해.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냐.”

마스크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가죽자켓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산채로 잡혀 먹히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나도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스크 쪽이 형이겠지. 동생을 달래주고 싶은걸 거야.

마스크는 한참 그대로 서 있다가 가죽자켓의 머리를 쓸어내리다, 가죽자켓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우는 소리가 좀 줄었다.

누가누가 알았을까. 우리 너무 오래 있었어. 들킬 수밖에 없는 건데, 왜 몰랐지.”

가죽자켓이 목이 매여 간신히 말했다. 오래 있어? 들키다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아닌가?

그럼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어?”

마스크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냥 나랑 장난질 좀 치다가 그만두면 된다고 생각했냐? 그냥 잠깐 재미만 보고 말고?”

형제끼리의 대화라고 치기엔 뭔가 이상했다. 이걸 더 들어도 될까? 하지만 묘한 호기심이 들어 아주 조금, 두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죽자켓이 엉엉 울면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카라마츠. 똑바로 얘기해.”

마스크가 카라마츠라고 부른 형제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자세가 달라서 그런가. 카라마츠가 마스크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데 카라마츠는 맥없이 멱살을 잡혔다.

“흡, 이치마츠, 우린우린 방금 가족을 버린 거야.”

카라마츠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공중에서 민들레 홀씨가 흩날리는 것처럼 놓아버린 목소리였다. 이치마츠가 작게 욕을 몇 마디 했다.

엄마도, 아빠도, 형제들도. 우리가 방금 버렸어. , 문고리를 잡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제 다 알거야.”

카라마츠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야반도주를 했구나. 둘이. 세상에. 쌍둥이끼리 야반도주를 해? 그것도 남자 쌍둥이가? 어디 가서 얘기라도 했다간 거짓말이라고 욕먹기 딱인 얘기였다. 이치마츠가 씨발, 하고 카라마츠를 밀쳤다.

그러면 처음부터 얘길 했어야지! 시발, 나 갖고 놀다가, 놀다가 적당히 때 되면 버리고 돌아 갈 거라고 얘길 했어야 될 거 아냐! 넌 그러고도 나랑 다시 보통 형제들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어? 병신아 너는 이제 나 보면 꼴린다고! 그게 정상이야? 너는 원래부터 정상 같은 거 아니었어. 너도 나도, 우린 존나 병신새끼들이라고!!!!”

이치마츠가 소리 질렀다. 텅 빈 도로에 이치마츠의 비명 같은 고함소리가 가득 찼다가 훅 하고 꺼졌다. 카라마츠는 놀라 우는 것도 멈추고 이치마츠를 올려다봤다. 어쩌다 그랬을꼬. 쌍둥이에, 보니까 다른 형제들도 있고. 간혹 따로 자란 남매들이 커서 만났다가 자기들이 한 핏줄인줄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는 본거 같은데, 한 배에서 동시에 태어나서 같이 자란 형제가 눈이 맞았다니. 좀 소름이 돋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웠지만 두 사람은 아직 차를 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카라마츠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이치마츠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추울 텐데. 이치마츠는 고개를 눈가를 연신 닦아냈다.

내가 미안해.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울음기는 거의 가신 목소리였다.

내가 형인데, 내가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렸어야 했어.”

지랄하지 마. 우린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 너도, 나도 언젠간 달려들었을 거라고.”

우리 죽을까?”

죽으면 끝날 줄 알아?”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 형제인거, 쌍둥이인거 한눈에 알아볼 거 아냐. 그냥 게이도 아니고 쌍둥이 근친이라고.”

얼굴 갈아버리면 돼. 다 뜯어고치지 뭐.”

넌 얼굴에 손댈 생각 하지 마. 내가 할 거니까. 이치마츠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카라마츠를 일으켜 세웠다.

꼬라지 봐라.”

이치마츠가 퉁명스럽게 얘기하면서도 카라마츠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카라마츠는 다시 훌쩍거리다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우리 돈도 없는데 어쩌지.”

아까 통장에 있는 거 헐어서 일단 잘 곳부터 구하고, 그다음에 막노동이라도 뛰지 뭐.”

진짜 죽어도 안 끝나는 걸까?”

죽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지.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두 사람이 어디로 도망을 가든 간에, 이치마츠가 어떻게 얼굴을 고치든 간에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보니까 가족들에게 들킨 모양인데 가족들이 그들을 그저 내버려둘까? 부모는 아들 둘이 붙어먹었다고 그냥 알아서 살아라 하고 놓아줄까? 내 자식들을 떠올려보니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절대 안 된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갈라놓고 제대로 살도록 말릴 것이다. 저 형제는 아직 어려서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건 녹록치 않다. 동성애자라는 것도, 형제라는 것도. 언젠가 사랑이 식으면 두 사람도 지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두 사람이 이제 정리가 된 모양인지 차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해가 뜨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담배를 끄고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그 사이에 차가 식어 시트가 오싹했다. 택시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태웠다. 연예인도, 야쿠자도, 정치인도, 범죄자도. 불륜 커플을 태운 적도 적지 않았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눈물겹게 서로를 어루만지던 커플이었다. 하지만 저 둘은 달랐다. 나는 저 두 사람을 내 차에 태우면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가 있을까.

형제가 차에 탔다. 아까보다 좀 가까이에 붙어 앉아서,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지만 이치마츠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제 가죠, 하고 말했다. 나는 백미러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뒷좌석에서 간혹 카라마츠가 숨을 고르려고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났지만 별 다른 대화는 없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린 커플이었다. 순진하고, 사랑이면 모든 게 해결 되리라고 믿는 젊은이들. , 누구더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식을 올려주고 줄리엣에게 죽은 듯 잠드는 약을 주었던 성직자가 떠올랐다. 나는 그저 두 사람을 태우고 운전을 할 뿐이었지만 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징그럽다던가, 더럽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육욕을 쫓고 배덕감을 즐기려고 그런 관계가 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진 운명의 희생자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껏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지만 별 다른 대화가 오고가지는 않았다. 둘 중 한 사람의 휴대폰이 진동했지만 곧 멈췄다. 전원을 끈 모양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기차역까지 태워다주고, 돈을 받았다. 가방은 작았다. 저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야반도주를 하면서 챙겨 나올게 뭐가 있을까. ? 통장? 옷가지? 자식뻘인 나이였다. 한 끼 밥을 거르고 하루 밤을 새우는 게 무섭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곧이어 다른 손님이 택시를 불렀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도 될까? 쌍둥이로 태어나서 사랑에 빠진 형제가 야반도주 하는 걸 태웠다고?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잘못 없는 사람의 불행한 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두 사람이 행복하기만을 빌어줄 수는 없었다.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불행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있다. 불행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서든.

카라마츠는 자리에 똑바로 누워 눈을 감고 형제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형제들은 모두 잠든 것 같았다. 좀 더 기다려야 하나. 카라마츠가 괜히 긴장되어 몸을 뒤척이려고 한 순간, 조금 거칠고 차가운 손가락 끝이 카라마츠의 손바닥을 천천히 긁었다. 물에 새빨간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그 손가락이 닿은 곳부터 가슴께까지 찌르르 저려 왔다.

이치마츠는 일주일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다른 형제들에게 물어보면 카라마츠가 집을 비웠을 때나 혹은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돌아와 해가 뜨기 전에 나갔다고 했다. 후회하고 있을 테지. 이치마츠도. 차라리 이치마츠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해주길 바랬다. 그랬으면 카라마츠는 그 무거운 실수를 한 순간의 추억으로 남겨놓고 모른 척 다시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치마츠의 방황은 카라마츠에게 후회와, 슬픔과, 부정한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먼저 나서서 이치마츠를 찾아보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맞닥뜨렸을 때 카라마츠와 똑같이 생긴 얼굴 위로 미처 숨기지 못한 혐오감이 스친다면, 카라마츠는 와르르 무너져버릴게 분명했다.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만끽하고 싶었다. 고양이가 들어있는 상자 같은 거야. 그 안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고양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수 있는 거지. 언제까지 뚜껑을 닫아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불도 켜지 않고, 커튼도 젖히지 않았다. 카라마츠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 라면박스들과 철지난 옷가지들, 낡은 책장, 경첩이 망가진 옷장, 손댄지 한 십년은 족히 된 장난감 박스가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설핏 잠에 들었다가, 갑자기 지금 눈을 뜨면 이치마츠가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잠에서 깼다. 하지만 카라마츠의 곁은 처음 잠자리에 들었을 때처럼 차갑게 비어있었다. 카라마츠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창고로 올라갔다. 이치마츠의 글이 읽고 싶었다. 사실 여러 번 읽은 만큼 머릿속에 내용이 남아있긴 했지만, 활자로 남은 글을 읽고 싶었다. 어딘가에 습작이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책장 구석에 반쯤 쓰다 만 노트들이 가득 꽂혀있으니까 그중에 하나쯤은 이치마츠가 쓰던 노트일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창고 문고리를 돌려 여는 순간 카라마츠는 자신이 아무것도 읽을 수 없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창고 안에는 온통 이치마츠의 숨소리와, 카라마츠의 목을 감싸던 손, 주저하던 입술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카라마츠는 잠깐 가쁜 숨을 쉬다가, 비틀거리며 걸어가 벽에 기대앉았다. 카라마츠는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직접 죽은 고양이를 얼굴에 들이밀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이치마츠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만약에, 자신을 고등학생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좋아해왔다고 하더라도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말렸어야 했다. 아님 그 자리에서 바로 이치마츠에게 장난이 심했다고 주먹질이라도 했어야 했다. 아예 없던 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 지금 울어야할 것 같은데. 카라마츠는 멍하니 문을 바라봤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포기했던 감정이라 눈물이 차있을 자리도 남아있지 않은 건가.

그때, 1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질질 끄는 듯한 발소리가 천천히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양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발소리가 계단을 올랐다. 점점 가까워졌다. 발소리는 창고 문 앞으로 다가오면서 조금씩 느려지다가, 창고 앞에 멈췄다. 상자가 이제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카라마츠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치마츠의 등 뒤로 집안이 새벽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물들어있었으나 이치마츠는 어두워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입을 열고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한참 카라마츠를 응시하다가,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방안에 적막이 흘렀다.

이치마츠가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카라마츠 쪽으로 다가왔다. 이치마츠에게도 카라마츠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전신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이치마츠를 향해있었다.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바싹 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답은 없었다. 이치마츠는 조용히 카라마츠의 곁에 주저앉아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이치마츠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카라마츠의 뺨을 간지럽혔다. 새벽 공기냄새가 났다.

 

두 사람은 시간 간격을 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꼭 약속한 것처럼 불은 켜지 않았다. 카라마츠가 여러 번 뒤를 돌아보며 창고로 올라가면 이치마츠가 간신히 형체만 구별될 정도로 어두운 방안에서 조용히 카라마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다 할 대화는 없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에게 기대앉아 가만히 체온을 느끼거나, 아니면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밤을 새우고 해가 뜨기 전에 잠자리로 돌아가면 한참 늦게까지 잠을 잤다. 낮밤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아침에 억지로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생활을 하더라도 반쯤 잠에 취해있었다. 밤이 낮이고 낮이 밤인 것 같았다. 창고에서 이치마츠를 만나는 순간이 정신이 또렷한 낮이었다. 카라마츠는 두 사람이 창고에서 불을 켜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창고에서 이치마츠의 얼굴을 보게 되면, 해가 떠 있을 때 이치마츠를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촉각만으로 이치마츠를 느끼는 게 좋았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문 밑으로 은은한 불빛이 비쳤다. 카라마츠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치마츠가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카라마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은한 백열등 불빛에 이치마츠의 얼굴이 반쯤 뚜렷하게 보였다. 카라마츠와 너무도 닮은 얼굴. 자라오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누가 봐도 자신의 얼굴임을 부정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카라마츠가 문을 닫고 들어와서도 계속 주저하며 서 있으니까 이치마츠가 말없이 고갯짓으로 옆자리를 가리켰다. 카라마츠가 머뭇거리다 이치마츠의 앞으로 다가오자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겨 그의 다리 위에 카라마츠를 앉혔다. 카라마츠가 뭐라고 물을 겨를도 없이,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보이는 게 좋아.”

이치마츠가 웅얼거렸다. 카라마츠는 잠깐 멈칫했다가, 어리광부리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문집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집게손가락이 따끔거려 보니 얄팍하게 베인 상처가 있었다. 아마 문집을 읽다가 종이에 베었는데 알아채지 못했던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핏방울이 살짝 맺힌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핥았다. 바짝 말라붙은 혀끝에 선득한 피 맛이 스쳤다.

겨우 세 권이었지만 카라마츠는 문예부의 문집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원래 책을 찾아서 읽을 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도 문득 이치마츠가 쓴 글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카라마츠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이치마츠가 어디 있는지, 혹시 이치마츠가 티도 내지 않고 카라마츠가 하는 걸 지켜보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한 뒤 2층 창고에 올라가 먼지 가득한 책장 사이에 꽂아둔 문집을 찾았다. 시 두 편, 단편 소설 한편, 그리고 유행하던 소설에 대한 비평. 여러 번 읽어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가끔 카라마츠의 입안에서 맴도는 글귀가 있었다.

이치마츠는 좀처럼 형제들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밤새 글을 써놓고 형제들이 보여 달라고 하면 벌써 버렸다던가 아님 학교 사물함에 두고 왔다던가 하면서 피하곤 했다. 야한 거라도 쓰나보지? 오소마츠가 키득거렸지만 이치마츠는 그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마감을 맞춰야한다고 이치마츠는 사흘 밤을 새워가며 글을 썼다. 창고 문 밖으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카라마츠는 이번에 꼭 문예부의 문집을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치마츠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카라마츠는 형으로서 이치마츠를 응원해주고 싶었고 한편으론 이치마츠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한 부분을 살짝 들여다보고 싶었다. 네가 형제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은 뭘까. 태어난 이래로 늘 함께 해온 형제들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아예 낯선 타인들에겐 보여줄 수 있는 너의 어쩌면 연약하고, 새빨갛게 날것인 부분.

카라마츠는 일찍이 연극 홍보지를 돌리고 문예부실에 들렀다. 문예부원 둘이 나란히 앉아 문집을 팔고 있었다. 몇 권 팔리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애초에 많이 뽑은 건지 문집은 한참 쌓여있었다. 카라마츠는 부원들에게 이치마츠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돌아섰다. 카라마츠는 문예부실의 문을 닫고 나오며 문집의 차례를 뒤져 이치마츠의 글을 찾았다.

 

한 번도 의심을 해본 적이 없는 남자가 있었다.

이치마츠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단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고, 한 글자 한 글자를 꼭꼭 씹었다. 네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구나, 이치마츠. 상처받은 날의 햇빛은 고운 모래알갱이가 쏟아지듯 내리쬐어 살갗에 닿을 때마다 쓰라리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엔 세상에 빗물이 차올라 그대로 어두운 심해 밑바닥에 가라앉는 꿈을 꾸는구나.

이치마츠가 없을 때 은근히 다른 형제들에게 물어봤지만 문예부 문집을 샀다는 사람은 없었다. 카라마츠는 왠지 다른 형제들은 모르는 이치마츠를 혼자만 알게 된 것 같아 한편으론 뿌듯하고,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보통의 형제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축제 때마다 문집이 나왔다. 3학년 땐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고 이치마츠가 바빴기 때문에 문예부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혹시나 하고 산 문집엔 이치마츠가 쓴 시가 실려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겠지. 카라마츠는 아쉬워하며 문집을 책장 구석에 꽂았다.

 

이치마츠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이치마츠는 문예부 활동을 할 때처럼 밤늦게까지 글을 쓰지도, 책을 읽지도 않았다. 카라마츠는 늘 이치마츠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문학성적은 거의 만점이었고, 비록 문집에 실린 것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치마츠는 제법 글을 잘 썼다. 카라마츠가 전문적인 문학 비평가는 아니지만 이렇게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생각난다는 건 이치마츠가 글을 잘 썼다는 뜻이 아닐까. 이치마츠는 작가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작가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닐텐데. 카라마츠는 못내 아쉬웠다. 

 

덜컹, 카라마츠의 등 뒤에서 방문이 열렸다. 깜빡하고 문을 잠그지 않았던 모양이다. 카라마츠는 깜짝 놀라 읽고 있던 문집을 던지듯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치마츠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보고 마찬가지로 놀란 것 같더니, 곧 카라마츠가 손에 들고 있던 얇은 책을 알아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거의 6년을 숨겼는데 이렇게 들킬 줄이야. 카라마츠는 속이 쓰라렸다.

니가 그걸 왜 보고 있어.”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는 척척 다가와 문집을 집어 들고 단숨에 반으로 찢어버렸다. , 카라마츠가 탄식했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실린 문집이었다.

이거 하나밖에 없어?”

카라마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찾아서 나오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진심이다. 카라마츠는 다시 고개를 끄덕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구석에 숨겨놓았던 이치마츠의 문집 두 권을 더 찾아 내밀었다. 씨발, 이치마츠는 문집을 건네받자마자 쫙쫙 찢어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더러운 걸 만졌다는 듯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다가와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이치마츠! 너 지금 형한테!”

재밌었냐? 이렇게 숨겨놓고 보면서 재밌었어? 혼자 비웃으니까 재밌었어?”

이거 놓고 말해!”

이치마츠는 놓기는커녕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은 채로 바닥에 넘어뜨렸다. , 하고 찧은 허리가 아팠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위에 올라타 후드 안에 두 손을 밀어 넣고 목을 움켜쥐었다. 이치마츠의 차가운 손에 카라마츠의 동맥이 펄떡거리고 뛰는 게 느껴질 것이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목을 부여잡고 떼어내려고 했지만 이치마츠는 단단히 힘을 줘 카라마츠의 목을 내리 눌렀다. 천천히 목이 졸렸다. 이치마츠의 무게까지 더해져 카라마츠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이치마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라마츠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자, 이치마츠가 그제서야 손에 준 힘을 풀었다. 카라마츠는 한참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완력은 카라마츠가 훨씬 우위에 있을 텐데, 지금 놀란 탓인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카라마츠는 동생들을 상대론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치마츠는 이상한 표정으로 카라마츠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뭔가 물을게 많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원망스러운 것 같기도 했고, 아님 화가 잔뜩 난 것 같기도 했다. 카라마츠는 숨을 고르고, 이치마츠의 밑에서 빠져나오려고 몸을 돌렸지만 이치마츠가 놓아주지 않았다.

어땠어?”

이치마츠가 갑작스럽게 물었다. ? 카라마츠는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이치마츠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그저 응시할 뿐이었다.

어땠냐고, . 저거 다 봤을거아냐.”

카라마츠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느낀 걸 그대로 읊을 수는 없었다. 그건 카라마츠가 글에 대해 느낀 것도 있지만, 그가 동생에게 갖는 은밀한 욕망이 뒤범벅되어 칼로 무 자르듯 분리하여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라마츠가 망설이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내가, 이런 걸 뭐라고 평가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카라마츠가 운을 떼자 이치마츠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소설이 제일 좋았어.”

뭔가 소설을 읽으면서 드는 감상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가 않았다. 떠오르는 감각이 있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색깔이라던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비오는 풍경이라던가, 아니면 운동장 같은걸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지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이치마츠는 얌전히 카라마츠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대답을 해야 될 텐데.

좋았어?”

이치마츠가 입을 열었다. 카라마츠는 생각할 것도 없이 응, 하고 대답했다. 이치마츠가 묘한 표정을 하고 카라마츠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너 말고 본 사람 있어?”

아니, 아마 없을걸. 회지 산 것도 나밖에 없었고…….”

다른 형제들에게 얘기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치마츠가 놔주지 않을라나. 카라마츠는 지금 얘기를 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 이치마츠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이치마츠가 목에서 손을 놓고 카라마츠의 위에 올라타 있는 지금 카라마츠는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가만히 바닥에 누워있을수가 없었다. 안그런척 하려고 애썼지만, 이렇게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낯설지만 오래된 감정을 가진 대상과 함께 붙어있는다는건 카라마츠에게 이상한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이치마츠가 얼른 비켜줬으면, 그럼 카라마츠는 단숨에 화장실로 돌아가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고 혹시 이치마츠에게 이상한 내색을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볼수 있을 텐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빠져 나오려고 계속 몸을 들썩여도 놓아주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대뜸 한 손을 들어 카라마츠의 눈 위를 덮었다. 이치마츠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바짝 말라 카라마츠가 계속 혀로 축이던 입술에 천천히 부드러운 것이 내려앉았다. 부드럽고, 살짝 젖어서, 독한 담배냄새가 은근하게 나는. 카라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될 것 같은데. 이치마츠가, 무슨 장난을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누워있으면 안될 것 같은데. 하지만 입 밖으론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치마츠의 입술이 느리게 카라마츠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스치다, 카라마츠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자 매끈한 혀가 천천히 미끄러지듯 카라마츠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혀를 건드렸다. 살짝, 마치 무섭다는 듯. 등줄기를 타고 전기가 흐르는듯 팔다리가 움찔거렸다. 이치마츠는 잠시 기다리다 카라마츠의 혀를 휘감으며 부드럽게 쓸고, 입 안에 여린 점막을 훑다가 혀를 세워 입천장의 예민한 살갗을 건드렸다. , 하고 신음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카라마츠는 점점 숨이 가빴다. 지금 이치마츠의 목에 팔을 둘러도 될까? 카라마츠가 망설이다 천천히 팔을 드는 순간, 이치마츠가 순식간에 떨어져나갔다. 카라마츠는 온몸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느새 해가 져 방안은 어두컴컴해졌다. 이치마츠는 마른세수를 하다 바닥에 엉망으로 흩뿌려진 종잇조각을 긁어모았다. 묻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치마츠는 아무 것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 지금 한 게 키스가 아닌가? 아님 이치마츠가 그저 동정의 호기심에 키스가 해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이치마츠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키스장면을 넣고 싶은데 마지막으로 해본 게 너무 오래되어 제대로 기억이 안 난다던가? 아니면, 나랑 키스해서 좋았어? 나는좋았는데. 하지만 입 밖으론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방안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치마츠가 한때 카라마츠가 아끼던 문집이었던 종잇조각들을 후드 주머니에 쑤셔 넣고 몸을 돌려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그 소설 주인공, 나였어?”

카라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묻고 당황해 얼굴을 가렸다. 뭐라는 거야. 지금 쌍둥이 동생이랑 키스하고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

.”

이치마츠의 잠긴 목소리가 아주 조용히, 꼭 한숨소리처럼 대답하고 방을 나섰다

카라마츠 군, 이번에는 축구야?”

저번에는 야구부였지? 연극도 하고 운동부 객원선수도 하고……. 카라마츠 군 진짜 대단해.”

그러게……. 머리 짧은 것도 잘 어울려. 좀 풋풋한 느낌?”

이치마츠는 마지막 온점을 찍고 펜을 내려놓았다. 방과 후 부활동 시간, 이치마츠는 그날 합평을 할 때 내놓을 글을 미처 다 끝내지 못해 부실에서 마지막 퇴고를 했다. 같은 부의 여자애들은 창가에 옹기종기 매달려 운동부 남자애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문예부 남자애들은 별 매력이 없다는 거냐? 같은 부원들 중 남자부원이 투덜거렸지만 여자애들은 그저 꺄르르 웃고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합평 시작하지.”

이치마츠가 마스크를 내리고 말했다. 운동장에서 축구부 코치가 부원들을 윽박질렀고, !! 하는 남자애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부실까지 들려왔다.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쾅 닫았다.

카라마츠가 처음 머리를 박박 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정말 놀랐다. 사실 카라마츠가 여자였다고 고백을 해도 놀랄 것 같지 않던 오소마츠마저 놀라 카라마츠를 붙잡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카라마츠도 제 머리가 낯선지 자기 머리를 쓱쓱 문지르면서 웃었다. 이번 연극에서 맡을 역할 때문에 머리를 밀어버렸다고 했다. 토도마츠가 말도 안 된다고 쫑알거렸지만 카라마츠는 후회하는 기색도 없었다. 좀 길다 싶었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자 카라마츠의 얼굴이 좀 더 도드라져보였다. 짙은 눈썹, 깊은 눈, 가만히 있을 때는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지만 누군가 말을 걸면 바로 풀려버리는 쉬운 입술.

그 마츠노 카라마츠가 연극 때문에 머리를 밀었다는 소문은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전교로 퍼졌다. 카라마츠가 어디서 뭘 하든 꼬리빗을 꼭 하나씩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빗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애들은 카라마츠의 교실 앞에서 카라마츠를 훔쳐보곤 흥분된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카라마츠 군 되게 프로페셔널하지 않아?”

연극 때문에 그렇게 아끼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다니……. 어른 같고 멋있어.”

이치마츠는 말없이 카라마츠의 교실 앞을 지나쳤다.

카라마츠의 연극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카라마츠의 머리가 홍보를 톡톡히 했을 것이다. 연극을 마치고 카라마츠는 한동안 모자를 쓰고 다니다가 머리가 좀 자라 삐죽삐죽해지자 다시 빗을 들고 다니며 빗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길이가 아직 짧아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비니를 빌려 눈썹까지 덮이도록 푹 눌러쓰고 잠을 청했다. 답답하지도 않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깊게 잠들었다 싶으면 조심스럽게 모자를 벗겨내 방 저 멀리로 던져버렸다. 그래서 비니는 별 효과가 없었다.

카라마츠의 머리카락은 쑥쑥 자라 어느새 앞머리가 이마를 반쯤 덮고 있었다. 꼭 어린애 같기도 하고, 운동부 애들 같은 느낌이 났다. 카라마츠가 객원 선수로 뛴다며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땐 전혀 연극부로 보이지 않았다.

합평이 끝났다. 여자애들은 입술을 앙다물고 원고지와 가방을 챙겨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부실 문을 나섰다. 남자애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이치마츠는 부실에 혼자 남아 멍하니 원고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빽빽하게 채운 원고지 가장자리엔 빨간색으로 이치마츠가 휘갈겨 쓴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냥 버릴까. 이치마츠는 고민하다 원고지를 대충 둘둘 말아 가방에 집어넣고 창밖을 슬며시 내다보았다. 축구부는 아직도 연습 중이었다. 이치마츠는 별 어렵지도 않게 카라마츠를 찾아낼 수 있었다. 허리가 꼿꼿하고, 밤송이 같은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살짝 달라붙었다. 유니폼 밑에 타이즈를 받쳐 입은 다리가 매끈했다. 날이 어두워 공이 대체 어디를 굴러다니는지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데 카라마츠는 열심히 운동장 위를 날아다녔다. 코치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연습을 마쳤다. 이치마츠는 바로 가방을 챙겨들고 부실을 나섰다.

이치마츠는 교문 앞에서 잠깐 서있다 축구부 애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듣고 두세 걸음 앞서 걸었다.

이치마츠! 미안, 동생이랑 같이 갈게. 내일 봐!”

그러면 뒤에서 보도블록 위를 힘차게 달리는 소리가 나고, 곧 푹 젖어서 수건을 두른 카라마츠가 왁! 하고 달려들어 이치마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치마츠는 미간을 한번 찌푸려 보이고 땀 냄새 나잖아, 하고 카라마츠에게서 조금 떨어져 걸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연극 얘기를 하고, 축구 얘기를 하고, 같은 반 여자애 얘기를 했다. 머리를 기를 때보다 박박 밀었을 때가 더 인기가 좋은 것 같아서 계속 밀고 다닐까 싶기도 한다고. 이치마츠는 건성건성 들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 보다 보폭이 넓었다.

어지간히 관심받는 거 좋아하네.”

이치마츠가 톡 쏘았다. 아니,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조금 돌려 말해서 놀리려고 했는데. 이치마츠는 당황해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연스럽게 변명을 할지 생각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카라마츠는 잠깐 대답이 없다가, 응, 하고 시원하게 말했다.

무대 위에서 관심 받는 것도 좋고, 축구 하면서 관심 받는 것도 좋아. 여자애들이 관심 가지는 것도 좋고, 누군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으면 행복해.”

그렇게 얘기하면 부끄럽지도 않나. 이치마츠는 계속 걸었다. 카라마츠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몰라 멈춰서 카라마츠의 얼굴을 돌아볼 수도 없었다. 아니,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따라할 수 없는 카라마츠만의 표정. 막 지구를 구하고 돌아와 지치고 힘들지만 보람차다는 히어로 같은 표정일 것이다. 물론 이번에 그를 지치고 힘들게 만든 것은 그를 질투하고 또 독점하고 싶은 동생이었다.

네가 글을 쓰는 것도 그래서잖아.”

글은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해서 쓰는 거 아니야?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어깨를 툭툭 치곤 춥다, 하고 수건으로 물에 젖은 머리를 털었다. 이치마츠는 가방 속 깊숙한 곳에 묻어둔 원고지 뭉치를 떠올렸다. 어느 반짝거리고, 씩씩하고, 아량 넓은 남자를 한 글자 한 글자 그려낸 원고를

어쩌면 인류의 종말은 이렇게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쵸로마츠는 대문을 마지막으로 담장 점검을 마치고 한숨을 쉬었다. 햇볕이 따사로운 주말 아침이었지만 거리는 숨 막힐 정도로 조용했다. 옆 건물 어디서 누군가 산채로 씹혀 먹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쵸로마츠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버리고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목덜미가 뜨거웠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죽었다. 자식들의 손에. 쵸로마츠는 늘 여섯 쌍둥이를 낳기로 결심했던 어머니를 떠올리곤 했다. 보건시간에 임신과 출산에 대해 배우면서 쵸로마츠는 한동안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다. 어머니는 배도 여섯 배로 불러오고, 몸도 여섯 배로 축나지 않았을까. 쵸로마츠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취업을 하겠다고 날뛴 것도 어머니가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미안해 엄마. 여섯 배로 효도하고 싶었는데, 여섯 명이나 키운다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보람 있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쥬시마츠가 쵸로마츠의 눈을 양 소매로 가려주는 동안 오소마츠는 긴 대걸레 막대기 끝에 망치를 테이프로 둘둘 만 장난감 같은 것으로 어머니의 뇌를 박살냈다. , 하고 꼭 수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듣는 순간 쵸로마츠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아침 출근을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그저 어디선가 집에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기대를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였던 허리가 동강난 시체는, 쵸로마츠가 깨어났을 땐 이미 마당 한 구석에 묻혀있었다. 무덤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흙더미 앞에서 쵸로마츠는 멍하니 무릎을 꿇고 앉아 밤을 지샜다. 해가 뜰 때쯤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를 억지로 일으켜 업고 방으로 데려가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이부자리에 눕혔다. 그건 어머니가 아니었어. 카라마츠는 쵸로마츠의 곁에 앉아 잔뜩 굳은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이미 죽었던 거야. 허리까지 뜯어 먹히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건 어머니가 아니야.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문 손잡이를 잡고 옆에 기대놓았던 장도리를 집어 들었다. , 헉 하고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카라마츠가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문 열어!!!!”

쵸로마츠는 바로 문을 열어 두 사람을 잡아당기고 대문을 잠갔다. 곧이어 우당탕탕 하고 돌덩이를 대문에 집어던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혹시 대문 경첩이 빠지지는 않는지 계속 지켜봐야 하는데, 쵸로마츠는 멍하니 서서 그의 형들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의 왼쪽 무릎 밑이 보이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등에 지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손을 벌벌 떨면서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하고 오소마츠의 다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막으려고 애썼다. 피가 누렇게 말라붙은 잔디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어 땅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서, 가서 횃불 만들어둔거랑 라이터 가져와.”

, 지금 제정신이야?”

이러다 형 죽어! 빨리!!!!”

쵸로마츠는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다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창고를 뒤졌다. 책장을 잘게 쪼개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있던 동생들이 쵸로마츠를 돌아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밖으로 뛰어나갔다.

카라마츠는 이를 악물고 홰 끝에 불을 붙여 충분히 타오르길 기다렸다. 오소마츠가 입에서 거품을 물고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토도마츠와 이치마츠가 오소마츠의 양 팔을 잡아 꾹 누르고, 쥬시마츠가 말없이 오소마츠의 입에 자기 팔뚝을 물렸다.

형아,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낼게.”

카라마츠는 단번에 오소마츠의 무릎 끝을 지졌다. 살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토도마츠가 바로 욱,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오소마츠가 물고 있던 쥬시마츠의 손목에서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오소마츠는 숨을 한번 몰아쉬고 그대로 기절했다.

오소마츠를 안방에 가둬두고 남은 형제들은 거실에 모여 피튀기는 말싸움을 벌였다. 단 한 번도 이런 일로 싸울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쵸로마츠는 넋을 놓고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오소마츠 형이 우리 잠든 사이에 변하면 어쩔 건데. 그럼 다 죽는 거라고.”

이치마츠가 으르렁거렸다. 변하지 않으면!! 토도마츠가 테이블을 쾅 내려치고 소리 질렀다. 이건 살인이라고!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냉정하게 생각해보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다. 비록 어머니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소마츠는 부상이 심각하지도 않고, 아직 어떻게 사람이 한번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건지 몰랐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대가 남아있었다. 쥬시마츠는 잠깐 방을 나가더니 수건에 물을 적셔와 카라마츠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었다. , 잊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손에는 아직도 오소마츠의 피가 검붉게 말라붙어있었다. 하얀 수건에 피가 묻어났다.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적당히 해. 형이 우리가 잠든 사이에 변하더라도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고, 일단 기다려보자. 물린 사람이 완전히 숨이 끊어져야 괴물이 되는 걸지도 몰라.”

이치마츠는 뭔가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쵸로마츠는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고, 조용히 창고로 들어가 오래된 옷장 안으로 기어들어가 옷장 문을 닫았다. 쵸로마츠가 형제들이랑 싸우고 이렇게 숨어있으면 어머니가 어떻게 알고 올라와 쵸로마츠를 찾아내 달래주곤 했었다. 우린 이렇게 여섯 명이나 되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하나가 없어진걸 알고 찾으러 올라오셨을까. 나는 어쩌면 어머니한테 제일 소중한 아들이었을지도 몰라.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형제들 중 누가 창고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쵸로마츠는 나갈까, 하다가 형이나 돼서 애새끼처럼 옷장에 숨어 울던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숨소리를 죽이고 바깥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코를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쵸로마츠는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이도 동갑에 철없이 구는 형이었지만 늘 믿고 의지하던 큰 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들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쵸로마츠는 나가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동생을 달래주려고 마음먹었다.

울지 마.”

이치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멎어가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리고 울음소리 사이에, , 하는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울지 마. 그만 울어. 운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내가, 내가 물리면, 바로 죽여줘야 돼.”

카라마츠였다. 너네는 살아야 돼. 카라마츠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힘들게 말을 잇고,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다시 입 맞추는 소리가 났다.

그럼 너도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버릴거니까 울지 마.”

카라마츠가 울먹거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참 있다 이치마츠가 입을 열었다. 벌벌 떠는 목소리였다.

제발 울지 마, 웃어 줘. 너는 괜찮을 거라고 말해줘.”

안녕하세요. 흑임자 전병입니다. 사실 이게 제가 원래 쓰던 닉이 아니고 그냥 임시로, 카라마츠 저금통으로 쓰는 통이 흑임자 전병 통이라 아무렇게나 갖다 붙였는데 이렇게 오래 쓰고 있네요. 아까 신나게 완결내고 동생이랑 하이파이브도 좀 하고 편의점에 뛰어가서 바카디를 사와서 반캔 원샷을 했는데 링크가 해킹링크였어요.... 해킹링크는 아니고 뭐라고 해야되지 링크 우회? 같은걸 하는 사이트던데 니미럴 그래서 여러모로 많은 분들을 곤란하게 해드렸습니다.. 지금은 해결했지만요... 제가 너무 신난 나머지 바카디 남은걸 마저 원샷하고 후기를 쓰고 있다는걸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여튼, 여기까지 와주신 분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까지 길게 늘여서 쓸줄 몰랐어요..... 그냥 8화를 보고 아 뭐야 너무 짧다 설정은 좋은데..... 하고 보고 트위터에서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있는데 어느 분이 이치마츠가 저렇게 칼 들고 뛰어가는게 카라마츠의 복수를 하러 가는게 아니냐고 그러셨더라구요. 죄송합니다. 제가 보자마자 바로 하트를 달아놨어야 했는데 그 당시엔 보고 음 그럴수도 있겠네... 하고 지나갔다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후기를 남길만한 글은 아니에요. 처음에 애니를 보면서 이치마츠는 왜 가면을 쓰고 있을까, 칼이랑 망치는 어디서 나온거고, 다른 피해자들은 왜 죽었을까. 하고 보면서 설정을 대강 꾸렸습니다. 진짜 별거 없이 이치마츠가 가면을 썼네- 흉터가 있나보다-아 얼굴에 화상자국이 있는거야 ~ 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설정으로, 플롯도 안짜고! 캐릭터 설정도 없이! 무턱대고 글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실 막 사랑에 빠지는 감정묘사나 이런게 너무 자신이 없어서 제가 쓰고도 오글거릴거같아 읽지도 못하고 오소송 파지도 않는 친구한테 퇴고를 맡겼스니다 ㅠㅠㅠ 친구가 야 여기 오타 있다 하면 수정하구요 막 ㅠㅜㅠㅜㅠ 그리고 트릭이고 뭐고 할것도 엇이 아 추리소설 쓰는 법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메모해둔게 없어서 잘 기억이 안났어요 외딴 섬 악마라는 추리소설이 있는데 그것 참 좋습니다 추천드려요 한번 읽어보시면 술술 넘어가고 좋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끼워맞추느라 급급해서 이런 졸작을 내놓게 되엇습니다 함꼐 달려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부분은 그래도 넘어갈수 있었는데. 8화 내용을 넣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냥 단순히 얘가 얠 죽이고, 꽥! 하고 넘어갈려고 했는데 쓰면서 설정도 하나하나 붙이고 추리소설 어디서 본거 주워들어서 끼워넣고 하다보니까 제가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판을 벌리게 되었더라구요......... 세상에......... 제가 이렇게까지 길게 장편을 이전에 쓴 적이 없어 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해도 될까요?? 이번에 쓴 안식의 오소마츠 프롤로그가 총 사만오천자였어요! 제가 예전에 좀 길게 쓴 글이 이만자였나? 해서 친구들한테 자랑했었는데 사만오천자라니. 이젠 뭐든지 할수 있을거같아 힘이 불끈불끈 납니다. 아 술기운이 올라와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헛소리 해도 양해부탁드려요 여하튼간 매 화가 끝날때마다 부탁해 내일의 나! 하고 설정을 달았더니 요모양 요꼴이 되었습니다. 길고 늘어지고 플롯도 심지어 복선도 제대로 안되어있는데데가 캐릭터 설정도 오락가락하고 해서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존잘님이 쓰셨더라면 더 좋게 더 재밌게 쓰셨을지도 모를 소재를 제가 말아먹은거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번글을 교훈삼아 더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는 흐김이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달려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감상도 주시고 팬아트도 그려주시고 ㅠㅠㅜㅠㅜㅠㅜㅠ 제 안에 잠자던 관종병이 깨어나버렸어요 ㅠㅜㅠㅜㅠ 일주일동안 하루에 세시간자고 막 기말 대체 과제를 새벽 두시부터 다섯시까지 세시간만에 써서 내고 할정도로 일상이 덕질에 방해됐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힘나게 달릴수 있었습니다 8ㅁ8 사랑이에요 여러분.............. 


아 그리고 제가 트위터 메인 트윗으로 애스크폼을 걸어놓고 두근두근 하면서 기다렸는데 아무도 질무늘 안하셧ㅅ더라구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래서 저 혼자 붙여놓고 선덕선ㄷ거했던 설정을 풀어보겠습니다.


버스커 버스커의 첫사랑 좋아하세요? 1화를 반쯤 쓰다가 우연히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되는데 노래랑 가사가 제가 쓰고 있는거에 많이 어울리는거같아서(미안해요 버스커버스커!!!) 일주일동안 내내 그노래만 들으면서 글을 썼습니다 같이 들어주셔도 좋을거같아요 지금도 듣고 있어요 아 좋다 메인 테마곡이라고 생각해주셔도 좋을거같아요


그리고 뒷 배경설정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왜 악당들이 잡혀서 킄... 사실 진실은 이러하지... 하고 썰푸는걸 정말 안좋아하고 깬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는 이유가 있었어요... 걔네가 얘기를 안하면 알 방법이 없더라구여............. 그리고 히지리사와 쇼노스케씨는 말을 안해요........ 이렇게 불친절한 진행 정말 죄송합니다......그래도 달려주신 분들 정말 사랑해요...............


이치마츠가 어렸을때 일입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시간대가 안맞는거 같지만 무시해주세요 ㅠ ㅠ ㅠ ㅠㅠㅠㅠㅠ 이치마츠네 집에 떨어진 헬기는 근처에서 훈련을 하던 군용 헬기였어요 (자위대라는걸 잊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훈련은 하겠죠??? 젠장!!!!!!!!! 오늘생각났어요!!!!!!!!!!!!). 헬기는 새로 개발된 연료를 이용해 가동되고 있었는데 문제가 생겨 안타깝게도 이치마츠의 집으로 떨어집니다. 연료를 개발한 데카판박사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이치마츠를 자신의 상속인으로 삼아 아들과 딸, 이치마츠에게 고루 재산을 나눠줄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격렬하게 반대하고, 데카판 박사가 마음을 먹고 유언장에 올렸을 때는 이미 이치마츠가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실종된 후였습니다. 

히지리사와 쇼노스케씨는 여주인의 남동생입니다. 여주인은 젊었을때 무척 아름다웠는데 히지리사와 쇼노스케씨는 선천적으로 기형으로 타고나 작고 말을 못했죠. 그래서 여주인은 동생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그를 거둬들입니다. 여주인이 데카판 박사와 결혼을 한 뒤엔 둘이 짜고 아들과 딸 박사 그리고 주치의 다용을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냉동창고에 묻어두죠 시체를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체를 어디다 파묻어버렸다가 들키는게 두려워 여주인과 히지리사와 쇼노스케씨는 시체를 일단 냉동창고에 방치해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스크를 쓴 이치마츠가 고기를 나르러 오게 되죠

히지리사와 쇼노스케씨와 여주인은 아들딸을 제거해버렸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이치마츠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죽었으면 좋겠는데 살아있다면 재산을 빼앗기게 되고 말테니까요 그러다가 아 이름 엄청 기네요 쇼노스케씨는 이치마츠를 발견하고, 간단한 뒷조사를 통해 이치마츠가 그 이치마츠라는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치마츠를 집으로 끌어들여, 사람들의 이목이 닿지 않는데 숨겨놨다가 이치마츠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질 때 없애버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냉동창고 말고 다른 방을 주지 못한건 그 이유라고 할 수 잇습니다. 카라마츠가 잠깐 언급한 얘기 기억하시나요? 이 집에서는 종종 파티를 여는데 이치마츠같이 튀는 코스튬이 돌아다니면 기억될수밖에 없으니까요

여주인은 이제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했습니다. 저택도 정리하고. 이치마츠도 없애버리고. 그 준비를 한다고 이치마츠를 더욱 방치해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민은 오래걸려요 힘들어요 저는 캐나다로 이민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치마츠가 방에 가둬놓았는데, 애가 워낙 히키기질이 있고 사람 만나는걸 싫어해서 가만 내버려둬도 혼자 잘 있더라구요. 그래서 시체를 건드렸는지 정도만 볼 수 있게 한달마다 창고를 점검하고 (솔직히 이건 안전불감증이죠) 이치마츠를 방치해두었습니다.


카라마츠는 가출 한 뒤 몇살 많은 형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그걸 자기도 즐겼다고 세뇌시키는 반면에 자기는 동성을 유혹할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인것처럼 연기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증세가 없지 않습니다 드러났나요? 안드러났죠....... 사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 뒷통수를 쎄게 쌔리는 반전을 생각했었는데 이치마츠한테 너무 못할짓을 하는것같아 포기헀어요.... 미안... 카라마츠..... 아긴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만납니다


두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치마츠가 먼저 도망친사이 쇼노스케씨는 이치마츠가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여주인은 카라마츠도 같이 도망가려는건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침대 옆 협탁 서랍을 열어놓고, 카라마츠가 평소엔 돌보듯 하던 금붙이를 훔친걸 확인하고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와 함께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카라마츠를 죽이게 됩니다 사실 여주인은 카라마츠를 정말 좋아했어요 씨발


여튼 그렇게 된 이야기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수십억대의 상속자가 되었던 이치마츠는 영문도 모르고 좋은 일을 잡았다고 좋아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카라마츠는 난생 처음 누군가를 책임지고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가지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았죠.

보면 일반인들이 어라 위기상황에 처하니까 갑자기 신들린것처럼 펄펄나는 탐정이 되었다! 하는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이치마츠도 카라마츠도 혼자서 자라 어딘가 좀 부족하고 모자라고 안타깝고 자존감 낮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이런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이렇게 같이 달려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한 3화까지 쓰다가 오 이제 계펑할때가 됐어 계펑을 하고 튀어야지 ㅌㅌㅌㅌ 했는데 이렇게까지 길게 완결을 내게 된 건 전부 함께 봐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했는데 앞으로 더 읽고 더 쓰고 해서 쓰고 들고오겠습니다.....럽유,.............................


아 혹시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Qnamski 로 트윗 주시거나 여기 댓글 부탁드립니다 그럼 더 추가하도록 하겟습니다 지금은 제가 생각이 나는게 더 없네요.......

저랑 같이 버스커 버스커 첫사랑 들으실래요?????

감사합니다!!!!!!!!!

이 집 안에 있던 시체는 모두 네 구였다. 그리고 그 중에 두 구가 의도치 않게 발견됐다. 이치마츠는 초조해져 문에 등을 기대 손톱을 물어뜯었다. 운전기사가 어디서 뭘 하고 있든 간에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창밖만 내다봐도 경찰들이 정원과 그 근처를 수색하고 있으니 곧 들키리라는 걸 예상했을 것이다. 비록 이 곳이 깡촌이라고는 하나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이십여 년 전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은 실종사건의 피해자들의 시체가 추가로 발견된다면, 경찰은 곧 추가인력을 동원해 저택 안을 이 잡듯 수색해 운전기사를 잡아낼 것이다. 저택의 포위망은 더 견고해질 것이고. 이제 운전기사가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경찰들은 이치마츠가 있던 방 앞에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지 복도에선 다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러다 복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잡혀버리면 어떡하지. 이치마츠는 손에 땀이 나 바지에 연신 손을 문질렀다. 침착하자.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있어.

어젯밤 기차역에서 이 저택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이치마츠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고양이, 정착할 수 있는 삶, 어쩌면 카라마츠가 그에게 주었던 관심과, 애정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카라마츠가 그에게 주었던 애정까지도 포기했다. 그저 카라마츠가 살아있기만을 바랬는데. 하지만 마지막으로 갖고 있었던 기대마저도 배신당하고, 이치마츠는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 카라마츠는 귀신이 되어서 이 저택에 남아있을까. 만약 내가 여기서 죽으면 카라마츠와 함께 이 저택에 남을 수 있을까. 천국에, 카라마츠는 천국에 갈게 분명한데 나는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천국으로 따라갈 수가 없을 거야. 카라마츠가 여기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을까.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치마츠는 다시 이 저택의 내부 구조를 떠올렸다. 여주인과 운전기사는 이치마츠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냉동 창고에 숨겨둔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체를 어디에 숨길지 의논한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 중에 두 구를 정원으로 나르는 것은 성공했다. 어떻게 한 구는 호수에서, 한 구는 얼어붙은 채로 발견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두 사람은 두 구를 해치우고 남은 시체들을 처리한 뒤 카라마츠를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이 들이닥쳤고, 경찰들은 저택 곳곳을 수색했을 것이다. 1층부터 2층까지 방문을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사용한 흔적이 있는지, 범죄의 흔적이 남지는 않았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순간 이치마츠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이 저택에 단 한 곳, 문이 수십 년간 열리지 않은 곳이 있었다. 카라마츠가 지나가는 말로 열쇠도 없다고 했던 곳. 바로 시계탑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상을 해보면, 이치마츠가 여주인의 방으로 찾아갈 때 2층에는 경찰이 단 두 명뿐이었다. 여주인의 방은 계단에서 올라가 바로 왼편이고, 경찰들은 바로 오른편에 있는 서재를 향해 걸어가 막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계단을 중심으로 왼편에 있는 방들을 점검하고 오른편에 있는 방들을 막 점검하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여주인이 비명을 질러 경찰들은 모두 여주인의 방으로 달려갔고, 아마도, 운전기사는, 그 쪽에 있는 방들 중 한군데에서 미처 옮기지 못한 시체들을 들고 숨어있었다. 시계탑으로 가는 계단은 2층 복도 끝에 있었다. 시계탑은 그들의 마지막 보루였을 것이다. 바깥에서 보기에도 시계탑은 너무 작고 좁은데다 트여있어 시체를 오래 숨기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위급한 순간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을 정도는 됐을 것이다. 그렇게 은닉할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계탑으로 향하는 문이 잠겨있는 걸 경찰이 확인해야 한다. 아마도 운전기사는 경찰들이 그쪽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수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돌아가는 걸 기다렸다가, 가지고 있던 마스터키로 시계탑으로 가는 문을 열어 시체를 끌고 올라갔을 것이다. 이치마츠가 여주인을 죽인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졌겠지. 이치마츠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다시 문에 귀를 기울여 인기척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조용하다. 만약 1층 복도에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멀리 있어 그를 바로 잡지는 못할 것이다. 이치마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문을 박차고 나가 바로 옆에 있던 비상계단으로 달려가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바로 2층으로 뛰어올라가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철로 된 손잡이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 바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손이 후끈거렸다. 설마? 이치마츠는 눈을 꼭 감고 다시 손잡이를 잡아 비틀어 열었다.

2층 복도는 시뻘겋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벽지는 마른 신문지처럼 빠르게 불이 붙어 타들어가고, 불이 옮겨 붙은 양탄자에선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경찰들이 1층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느 방에서 불이 시작한 거지? 이치마츠는 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 두리번거리다 가장 크게 불길이 일어나는 방을 발견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뛰어가 문을 걷어찼다. 순간 불길이 확 일어나 이치마츠는 양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훅 하고 뜨거운 열기를 들이마셔 폐가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이치마츠는 콜록거리며 손을 내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가 있었다. 이치마츠는 혹시 운전기사가 아닌가 하고 살펴보았지만 시체의 키가 큰 것으로 봐서 박사의 주치의인 것 같았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고 꽁꽁 얼려버린 시체라지만 불에 태워버리면 단숨에 알아보기 힘들다. 운전기사는 아마 수사에 혼동을 주면서 동시에 뭐가 있을지 모를, 예를 들자면 이치마츠가 가져온 사진 같은 것들이 발견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치마츠의 발이 화끈거렸다. 어느새 이치마츠의 신발과 바지에 불이 붙어있었다. 이치마츠는 황급히 방에서 빠져나와 불이 아직 붙지 않은 바닥에 굴러 불을 끄고 시계탑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역시 문은 열려있었다.

이치마츠는 허리에 차고 있던 망치와 칼을 손에 쥐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손바닥과 발, 다리에 화상을 입었지만 이치마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저 위에, 늘 무표정한 얼굴에 말이 없는 운전기사가 어떻게든 제 살 궁리를 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을 그 살인자가 있을 거라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마침내 이치마츠는 계단 꼭대기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시계탑은 정말로 좁았다. 뒤쪽으로 벽이 반쯤 트여있어 바람이 쌩쌩 불었고, 커다란 시계장치 뒤로 가로세로가 3미터정도 될법한 좁은 공간이 있었다. 젊은 여자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운전기사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밧줄로 올가미 같은 것을 만들고 있었다. 자살할 생각인가? 아니, 자살을 하겠다고 결심했으면 그냥 이 밖으로 뛰어내리면 될 일이다. 뭐든 간에.

이치마츠가 문을 쾅 닫자 운전기사가 고개를 들어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무섭도록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에서는 공포도, 분노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이치마츠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스크를 풀었다. 그리고 망치를 바로 잡았다. 더 물을 것도, 들을 것도 없었다.

죽어!!!!!!!”

이치마츠가 달려가 운전기사를 발로 거칠게 걷어찼다. 제대로 숨을 끊어놓기 위해선 짐승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하는 법이다. 놈은 피하지도 못하고 힘없이 걷어차여 구석으로 굴러갔다. 늘 작다고는 생각했지만 작고, 가볍고, 너무 힘없이 차여 이치마츠는 화가 솟구쳤다. 네까짓 게 뭐라고 사람을 죽여. 이치마츠는 와들와들 떨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운전기사를 향해 다가갔다. 여자의 시체가 바로 옆에서 나뒹굴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운전기사는 기침을 켁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말없이 다가가 다시 한 번 놈을 힘껏 걷어찼다. 운전기사가 벽에 쿵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밖으로 들릴 정도였다. 이치마츠는 운전기사의 듬성듬성한 머리채를 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죽지는 않을 만큼. 운전기사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피 맛을 봐야 대가리를 깰 수가 있더라고.”

이치마츠는 놈의 귀를 단번에 물어뜯었다. 운전기사가 소리도 지르지 않고 물 밖으로 나온 고기마냥 파드득거렸다. 너는 말을 못했구나. 이치마츠는 야들야들한 귓바퀴를 어금니로 몇 번 씹다가 바닥에 퉤, 하고 뱉었다. 카라마츠 생각이 났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다시 악몽을 꾼 날 이치마츠가 횡설수설 늘어놓는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도망치겠다고 말해주었다. 카라마츠는 그렇게 징그러운 꿈을 꾼 이치마츠를 불쌍하게 생각해줬다. 나는 그 피가 나를 죽일까봐 무서웠던 게 아니야, 카라마츠, 난 내가 한 짓들이 무서웠어.

이치마츠는 엎드려있던 운전기사를 돌려 눕혔다. 기괴하게 작고, 구부러진 목을 한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그의 귀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피 냄새가 났다. 이치마츠는 칼날이 아래로 가도록 바투 쥐고, 단숨에 남자의 왼쪽 눈에 박아 넣었다. 푹 하는 소리가 나면서 눈알이 터졌다. 검고 흰 물이 남자의 눈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다음은 이쪽 눈이냐고? 아니, 나는 네가 끝까지 봤으면 좋겠어.”

이치마츠는 미친 듯이 버둥거리는 남자의 목을 바닥에 꾹 누르고 남자의 입에 칼날을 갖다 댔다. 운전기사는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치마츠는 칼끝으로 남자의 앞니를 톡톡 건드렸으나 입을 벌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이치마츠는 칼날을 바깥으로 가게 해서 남자의 한쪽 입 끝에 갖다 대고 옆으로 훅 찢었다. 칼날이 제대로 들지 않아 이치마츠는 남자의 어금니가 드러날 때까지 톱질하듯 칼로 살을 반 정도 썰어내야 했다. 썰린 살의 단면으로 시뻘건 근육이 파들거리며 떨었다.

아파? 아프겠지.”

다음은 네가 카라마츠를 죽인 손가락 마디를 하나하나 부숴 놓을 거야. 이치마츠는 망치를 집어 들었다. 남자의 목을 한쪽 무릎으로 짓누르면서, 이치마츠는 몸을 돌려 한 손으로 남자의 손목을 붙들고 망치를 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새끼손가락부터가 좋을까?

순간 이치마츠의 왼쪽 허리께에 날카로운 칼날이 푹 파고들었다. 이치마츠는 들고 있던 망치를 떨어뜨리고 고개를 돌렸다. 이치마츠가 몸을 돌린 사이 남자가 숨겨둔 칼을 꺼내 이치마츠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남자의 하나 남은 눈과 이치마츠의 눈이 마주친 순간, 남자는 칼을 가로로 있는 힘껏 베었다. 이치마츠의 배에서 피가 쏟아져 내렸다. 아픈가. 사람이 놀라면 고통을 느끼지도 못한다고 했던가. 카라마츠도 아팠을 텐데, 나도 죽을 때 아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치마츠는 허리를 숙여 다른 손으로 상처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치마츠의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 칼을 들어 이치마츠의 목을 찔렀다.

머리가 멍해졌다. 키스할 때는 눈을 감는 거야. 이치마츠는 마지막 힘을 짜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처음 연성을 시작하면서 마지막은 무조건 이치마츠가 죽는 것으로 끝내겠다고 마음먹어 이렇게 끝을 내게 되었습니다. 곧 미처 풀지 못한 설정과 내막, 후기를 간단히 정리해 올릴 생각입니다. 꼭 읽으실 필요는 없지만, 읽어주시면 설명이 안 된 부분을 좀 더 이해기 편하실 것같아요.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카라마츠가 입고 있던 샤워가운 주머니에선 낯선 보석들이 나왔다. 이치마츠는 보석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지만 카라마츠가 착용한 걸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카라마츠의 부모님이 주셨다던가 할 물건도 아니다. 카라마츠의 부모님도 무척 가난하셨다고 했으니까. 여주인에게서 훔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뒷목이 뻐근하게 당겨왔다. 여주인이 잠들었을 때 카라마츠가 몰래 들어가 보석함을 뒤져 금시계 같은 것들을 훔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카라마츠가 왜 저렇게 샤워가운만 입고 도망치려고 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샤워가운도 여주인이 준 것이겠지. 이치마츠가 없는 사이 여주인이 카라마츠를 불러 샤워가운을 내밀고 입기를 강요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카라마츠가 금붙이를 슬쩍해왔을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경찰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구석으로 비켜서서 가방 지퍼를 열어 망치와 칼을 꺼냈다. 아까 경찰에게 확인을 받은 물건이니 만약 경찰이 흉기를 들고 다니지 말라고 막아서도 어디에 살인범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호신용으로 들고 있겠다고 우겨볼 생각이었다.

여주인은 나이와 신경쇠약을 이유로 방에 틀어박혀있었다. 여주인이 나오지 않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경찰들이 2층으로 올라가 알리바이나 그런 것들을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치마츠는 여주인의 증언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조용히 비상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주인의 방문 앞을 경찰이 지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여주인이 쫓아낸 것인지 아님 저택의 출입구를 모두 통제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2층 복도에는 경찰 두 명만 남아 빈 방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경찰들 곁을 지나면서 가볍게 묵례했고, 경찰들은 흠칫 놀랐지만 이렇다 할 것을 따져 묻지 않고 그를 지나가게 해주었다. 이치마츠는 경찰들이 서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여주인의 방 문고리를 소리 없이 돌렸다. 다행히도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여주인은 잠옷 차림으로 커다란 여행 가방에 아무렇게나 옷을 집어던지고 서랍에 든 것을 쏟아 부으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자고 한건 너잖아! 내가 시간 끄는 거 싫다고 했지! 아니 걔는 처음부터 내가 가자고 했으면 갔을 거라고!”

가자고 했으면 갈 애라는 게 누굴까? 카라마츠? 여주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치마츠는 방문을 잠그고 천천히 여주인의 뒤로 다가가 단숨에 목덜미를 잡고 여주인의 침대 위에 패대기쳤다.

이치마츠 군! 살아있었구나!”

여주인이 이치마츠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면서 애써 웃어보였다이치마츠는 여주인이 당황한 사이 전화기에 연결된 전화선을 뽑아 침대 밑으로 걷어찼다.

내가 분명히 우리 식구 중에 한 명이 더 있다고 했는데 이치마츠 군이 보이지 않는대서 걱정했지. 이치마츠 군 대체 밤새 어디 있었던 거야? 내가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 혹시 이치마츠 군도 어떻게 됐을까봐…….”

여주인이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치마츠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알이 빠져버릴 것 같은데, 여주인에겐 보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치마츠가 거칠게 이를 가는 소리는 들릴 수밖에 없었다.

왜 죽인거야.”

이치마츠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알고는 있지만, 카라마츠가 죽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 그게 정말 사실이 되어버린 것 같아 이치마츠는 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죽이다니! 이치마츠 군, 나 같은 힘없는 노인네가 뭘 어떻게 하겠어?”

여주인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침대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이치마츠가 다시 멱살을 잡아 침대 중간으로 잡아끌었다. 더럽게 넓기도 하지.

카라마츠를 왜 저렇게 내버려뒀는지 내가 모를 거 같아? 냉동 창고에 숨겨둔 걸 옮기느라 시간이 없었던 거잖아!”

이치마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주인은 대답도 없이 이치마츠를 노려보다가 꺄아아아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나왔다. 여주인의 비명소리가 온 저택을 울렸다.

진작 죽여 버렸어야 했어. 난 늘 기다리기 싫다고 했었는데 말이지.”

여주인은 이치마츠가 막고 있는 침실 문이 아니라 옷방 문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치마츠가 조금 더 빨랐다. 이치마츠는 두툼한 여주인의 목덜미를 부러뜨릴 듯 꽉 잡고 그 허리에 들고 있던 칼을 쑤셔 넣었다. 칼은 무뎌지지 않았다. 전등 불빛이 반사되어 시퍼런 칼날이 번뜩 빛났다. 뾰족한 칼끝은 주름진 피부를 찢고, 빽빽하게 들어찬 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여주인이 헉, 하고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며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이치마츠는 칼날 손잡이가 피부에 닿을 만큼 깊게 칼날을 더 밀어 넣었다. 여주인의 피가 이치마츠의 바지에 온통 튀었다. 이젠 돌이킬 수가 없구나. 이치마츠는 칼을 꽂은 그대로 여주인을 침대에 던져놓고 옷방 문을 통해 도망쳤다. 1층에서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올라오면서 방문을 급하게 열어젖히는 소리가 났다. 이치마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사람을 죽였다. 소를 수십 마리 죽였지만 사람을 죽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처음이라고 해서는 안 되지. 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아니다. 카라마츠를 죽인 사람이 남아있었다.

한 번 손에 피를 묻혔는데 두 번 묻힌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었다. 경찰들은 여주인의 허리에 꽂힌 칼을 보고 바로 이치마츠의 것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비상계단은 바로 부엌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은 사람은 경비와 운전기사다. 하지만 경비는 카라마츠가 죽은 걸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카라마츠를 죽인 그대로 방치해 놓은 것을 봐선 시체를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긴 게 확실했다. 간밤에는 장대비가 한참을 쏟아졌다. 땅에 묻었다간 흙이 씻겨 내려가 시체가 금세 드러날 것이다. 아니면 옥상?

이치마츠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부엌에 혹시 누가 있는 게 아닌지 귀를 기울였다. 조용했다. 경찰들이 부엌 수색은 이미 마친 뒤인 모양이었다. 이치마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 이치마츠는 다시 휘청거렸다. 식당 아줌마는 이미 배에 칼을 맞아 죽어있었다. 입막음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식당 아줌마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소문내는 걸 좋아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을 것이다. 입맛이 썼다. 이치마츠가 식당 아줌마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사람이었다. 

이치마츠는 부엌 선반에서 식칼을 하나 집어 들고 부엌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범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치마츠가 복수를 하기 위해선 경찰보다 먼저 운전기사를 잡아야 했다. 이치마츠는 운전기사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망치로 부숴버리고 눈알을 파버린 다음 가죽을 벗겨내버릴 생각이었다. 초조해졌다. 이치마츠는 고민을 하다 저택의 뒤쪽에 일렬로 늘어선 철쭉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때 이치마츠의 눈앞에 여주인의 전화기가 스쳐지나갔다. 여주인이 전화를 하고 있던 사람은 운전기사였다. 여주인이 이치마츠 군, 하고 그를 부른 순간 이치마츠가 전화선을 뽑아 전화가 끊어졌고, 운전기사는 이치마츠가 여주인을 찾아간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이치마츠가 여주인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입막음을 위해 식당 아줌마를 죽였다. 운전기사가 경찰들이 돌아갈 때까지 얌전히 저택 어딘가에 숨어있을까? 이치마츠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살인사건에, 예전에 말이 많았던 대저택이라면 하루 이틀로 수사가 끝나고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고, 경찰이 이 저택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숨겨둔 시체를 찾아낼 가능성도 올라간다. 어떻게든 이 저택을 탈출하려고 할 것이다. 저택의 담은 굉장히 높다. 운전기사는 체구가 작기 때문에 그걸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고, 저택에 딱 하나 있는 사다리는 지금 이치마츠의 눈 앞, 창고 옆에 놓여있다. 게다가 운전기사가 이 저택 뒤쪽으로 와 사다리를 타고 담을 뛰어넘더라도 저택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위험하다. 죽음을 무릅쓰고 담을 넘으려고 할까?

저택에는 정문과 뒷문, 그리고 쪽문이 있다. 정원 뒤편에 있는 담장이 반쯤 허물어져 넘어갈 수는 있으나 정원 쪽으로 가려면 훤하게 트인 잔디밭을 지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운전기사의 체구가 작다고 하더라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정문도 마찬가지이며 뒷문에는 경찰차가 여러 대 서있었다. 남은 건 쪽문뿐이다. 쪽문 쪽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고 사람만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로 이어져있었다. 쪽문은 평소에 열어두는 문이 아니었다. 식당 아줌마가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오늘 쪽문을 열어놓을 정신은 없었을 것이다. 운전기사에게 마스터키가 있을까? 경찰들은 식당 아줌마가 쪽문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그 쪽에 경찰을 세워두더라도 정문이나 후문보다는 훨씬 적은 수일게 분명했다. , 이치마츠는 헛웃음을 지었다. 운전기사는 경찰들을 끌어내야 했다.

다음 타겟은 경비였다. 이치마츠는 저택 뒤쪽에서 맨 끝 발코니가 난 방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방이었을 텐데도 발코니로 통하는 유리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이치마츠가 방문을 막 나서려고 할 때, 복도에서 독살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나고, 경찰들의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치마츠는 조용히 방 문손잡이를 돌려 잠그고, 커튼을 친 뒤 문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경찰 중 하나가 공범이 있는 걸까요? 하고 물었다. 만약 독살당한 사람이 경찰이라면 저렇게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비가 죽었겠지.

? 호수? 정원에 호수가 있어?”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경부님, 호숫가에서 시체가 나왔다고 합니다.”

호수? 만약 운전기사가 시체를 그곳까지 일부러 나를 정신이 있었다면 이미 담을 넘어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마도, 시체를 호수에 숨기고 시체가 발견되기 전에 도망치려고 했던 건가? 그렇다면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이해가 갔다. 경찰들은 그 시체가 익사체가 아니며, 죽은 지 오래된 시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경부님! 시체가 하나 더 나왔답니다! 꽁꽁 얼었다가 반쯤 녹은 상태라는데요!”

경부인 것 같은 남자가 경악에 차 탄식을 내뱉었다

오늘의 주제는, 요새 한창 논란이 되고있는 '역류하는 꽃'입니다. 원래 우리 쇼에서 다루는 종류의 주제는 아니지만 정확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시청자분들께 미리 알려드리고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역류하는 꽃이 아직 정식 명칭은 아닌거죠?
그렇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뚜렷한 이유도, 성질도, 밝혀진게 없어 정식으로 이름이 붙지는 않았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자료화면 준비했습니다. 보시면 엄지 손톱만큼 작은것부터 손바닥만한 것까지 크기도 가지각색이고 꽃잎의 갯수도 다섯장에서 스무장까지, 정말 종류가 다양하네요.
그렇지만 의학계에서는 이 꽃들이 한 질병의 증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모양과 크기는 다를지 몰라도 이 꽃들은 대부분 같은 과정을 거쳐 몸밖으로 배출됩니다. 환자는 약 일주일에서 한 달간 가슴, 심장 부근에서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여태까지 진료를 받고 혈액 샘플을 제공한 환자중에 최대 6개월간 통증을 느낀 경우도 있어 다른 질병과 혼동될 것이 염려됩니다. 그리고 환자는 꽃들을 토해내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꽃들과는 달리 뒤가 비쳐보일정도로 얇고 새빨간 꽃잎이 붙어 있으며 몸 밖으로 배출된 뒤 약 5분이 지나면 깨알만한 알갱이를 남기고 녹아내립니다.
설마, 피인가요?
완전히 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피와 물, 그리고 기타 신체 내에서 분비되는 액체들이 섞여 있으나 피의 비중이 높긴 합니다.
알갱이는 대체 뭘까요?
글쎄요. 아직 밝혀진바가 없습니다.
전염성이 있나요?
감염성은 없습니다.
만약 꽃을 토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죠?
일단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가셔서 감염자라고 말씀하시고 절차를 밟아 혈액 샘플과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으시면 됩니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호전되긴하지만 혹시나 모를 변종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감염자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오소마츠가 채널을 돌렸다.
"좀 징그럽네."
"장미꽃같다."
낭만적이지 않아? 토도마츠가 마지막 계란프라이를 홀랑 집어먹으며 말했다.

함박눈이 펑펑 날리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멋을 포기하고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둘렀다. 어디가? 집 앞을 쓸고 있던 쵸로마츠가 물었다.
"렌탈샵. 뭐 빌려다주랴?"
쵸로마츠가 고개를 저었다. 카라마츠는 외투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었다.
감염성이 없다고 해도 형제들에게 알리기는 왠지 껄끄러웠다. 카라마츠가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지는 반년이 넘었다. 밤중에 자다가 아파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고, 한번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말을 할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다.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었고 통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카라마츠를 괴롭혔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지난 밤 첫 번째 꽃을 토해냈다. 동전만한 크기의 꽃이 스무 개정도, 새빨간 꽃잎이 빽빽하게 들어차 마치 공같은 모양이었다. 카라마츠가 놀라 세면대에 꽃들을 떨어뜨리자 꽃들은 곧 녹아 내려 작은 알갱이만 남기고 사라졌다. 카라마츠는 물을 틀어 알갱이를 흘려보냈다.

간호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사지를 내밀며 이 순서대로 검사받으시면 됩니다, 하고 첫 번째 검사실을 가리켰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카라마츠가 검사실 앞에 붙은 번호를 확인 하는데 대기 의자에 앉아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카라마츠의 소매를 잡았다. 카라마츠가 돌아보니 여자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아, 죄송합니다. 하고 소매를 놓았다.
"아는 사람이랑 너무 닮으셔서..."
"잘생긴 사람인가보네요."
카라마츠가 웃으며 대답했다. 긴 머리를 땋아내리고 조금 촌스러운 것 같기도 했지만 귀여운 여자였다. 여자는 양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사람? 여자는 잠깐 표정을 굳혔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이별해야 돼요."
"왜요?"
"저는 그렇게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쓸쓸한 얼굴이었다. 평소의 카라마츠라면 여자는 모두 사랑받아야 된다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여자는 없다고 했을텐데 차마 그럴수가 없었다. 카라마츠는 여자의 옆 빈자리에 앉아 멍하니 맞은편 벽을 바라봤다. 여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고 있어도 포기해야 하는 마음. 카라마츠는 어쩌면 이 꽃이 사랑해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걸 그만두려고 괴로워하다가, 그 마음 조각이 꼭 진주가 되는 모래알처럼 피와 살을 뜯어내 꽃이 되는게 아닐까.
돌아가는 길에 카라마츠는 렌탈샵에 들러 코미디 영화 DVD를 하나 빌렸다. 눈은 어느 새 그쳐서 은은하게 찬바람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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