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취향타는 소재 주의
남자가 다시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고 돌아왔다.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쵸로마츠는 잠깐 졸리진 않는지, 눈이 뻑뻑하진 않은지 느껴봤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마 차에 각성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아니요. 아마 차를 마셔서 그런 건지 아직 쌩쌩하네요.”
“다행이네요. 이야기가 곧 끝날거라서요.”
남자가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남자는 긴 이야기를 오래 하면서도 차로 그저 입술만 축일뿐 많이 마시지 않았다. 이상하네. 차를 이만큼 마셨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만도 한데.
“어디까지 했더라, 아,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피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치마츠는 포기하지 않고 카라마츠의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아니, 같은 집에 사니까 맴돌았다기보단 늘 곁에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오소마츠가 집을 비우는 날엔 카라마츠의 방 문 앞에서 밤을 지새우다 새벽녘이 되서야 자리를 떴고, 카라마츠가 혼자 있을 때엔 멀리서 카라마츠를 지켜보다가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면 스윽 사라지곤 했습니다. 카라마츠도 이치마츠가 싫은 건 아니었어요. 물론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에게 그런 가족 이상의 호감을 느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쵸로마츠를 응시했다.
“아니,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이치마츠는 조용히 상대방에게 스며드는 사람이었어요. 카라마츠가 만약 이치마츠를 정말 싫어했다면 그의 주변에서 이치마츠가 맴도는 걸 견디지 못하고 오소마츠에게 도망가버렸을지도 몰라요. 오소마츠는 아기가 눈에 어른거린다고 말도 없이 찾아와 카라마츠와 아기를 꼭 끌어안고 쪽잠을 잔 뒤 돌아가기도 했고, 아기가 바깥바람을 쐴 수 있을 때가 되자 이 집을 나가 극단에선 좀 떨어져 있지만 셋이서 알콩달콩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찾자고 카라마츠에게 속삭였습니다. 카라마츠는 행복했어요. 아기는 날이 갈수록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귀여워졌습니다. 아기가 방긋방긋 웃을 때면 오소마츠가 보이기도 했고, 카라마츠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주 가끔은, 이치마츠가 보이기도 했죠. 오소마츠와 떨어지지 않고 매일매일 그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오소마츠도 아기가 커 가는 것을 카라마츠와 함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카라마츠는 망설였습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아기를 너무 아끼고 사랑해 혹시 그들이 분가하면서 아기를 데리고 가버리면 상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카라마츠는 시어머니를 정말 자신의 어머니처럼 사랑했고,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소마츠는 달랐습니다. 그는 매물로 나온 집을 하나 둘 찾아 카라마츠에게 보여줬고, 아기가 뛰어놀 마당이 있고, 안전하고,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계획을 뚜렷하게 짜기 시작했어요. 카라마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좋았고, 아기가 빡빡한 도시와는 달리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소마츠가 골라온 집들이 눈에 차지 않았죠. 카라마츠가 계속해서 퇴짜를 놓았지만 오소마츠는 포기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집들을 찾아왔습니다. 꼭 오소마츠가 조급해하는 것 같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에게 혹시 신경 쓰이는 것이 있냐고, 아기는 아직 어리니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고 부드럽게 얘기했지만 오소마츠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카라마츠를 끌어안았죠. 오소마츠가 내색은 하지 않지만 혼자 사는 게 많이 외로웠구나, 카라마츠는 이렇게 가족들이랑 함께 있지만 오소마츠는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혼자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카라마츠는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카라마츠는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님 멍청한 거야? 쵸로마츠가 미간을 찌푸렸다.
“카라마츠와 오소마츠가 밤늦게까지 집들을 둘러보고 오던 날이었습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고, 오소마츠를 먼저 욕실로 보내고 카라마츠는 아이를 찾아 아기 방으로 갔습니다. 아기방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고, 아기용 장난감이랑 침대, 그림책 같은걸 갖다 둔 방이었어요. 방문이 조금 열려있었습니다. 불도 켜져있었구요. 카라마츠는 아마도 시어머니가 깜빡하고 주무시러 간 모양이구나, 하고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어요. 아주 조그만 목소리가, 아빠야. 아빠라고 불러. 아빠. 하고. 이치마츠였습니다. 이치마츠가 엉거주춤하게 아기를 안고 아기의 이마에 뺨을 부비며 아빠라고 부르라고 속삭이고 있었죠. 카라마츠는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치마츠가 그에게 보이는 비정상적인 관심과 집착을 카라마츠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카라마츠가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뒤에서 오소마츠가 나타나 카라마츠의 어깨를 잡았죠. 카라마츠가 해명을 하기도 전에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부드럽게, 하지만 힘을 줘 뒤로 밀었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잠시 후에 새근새근 잠이 든 아기를 안고 나타나 카라마츠에게 안겨주고 방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말했죠. 카라마츠는 아기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문 앞을 서성였습니다. 곧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뭔가를 집어 던지는 소리도 들렸고, 부서지는 소리도 들렸죠. 이러다 아기가 깨겠다 싶어 카라마츠는 빠른 걸음으로 카라마츠의 방에 아기를 안고 가 아기 침대에 눕히고, 다시 아기방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치마츠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습니다. 형이 무슨 낯짝으로 그럴 수가 있냐고, 형이 먼저 약속을 어기지 않았냐고, 왜 자기한테 딱 한번만 양보할 수는 없는 거냐고. 카라마츠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이제 치고 박고 싸우는 건지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카라마츠는 말려야겠다 싶어 문고리를 잡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있었어요. 오소마츠는 단 한 번도 문을 잠근 적이 없었는데. 카라마츠는 저러다 누구 하나가 심하게 다치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 집 안을 한참 뒤져 마스터키를 찾았습니다. 차마 오소마츠의 어머니를 깨울 순 없었어요. 아들 둘이 저렇게 싸우는 걸 본다면 시어머니가 마음이 아플 게 분명했으니까요.”
형제간에 치정싸움이라니. 시어머니가 마음아파야 할 부분은 그 부분 아닌가? 쵸로마츠는 손이 조금 시려와 찻주전자를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러다 카라마츠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 그리고 그들과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쌍둥이. 세 명이 저택의 거실을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분명히 다들 똑같이 생겼는데 카라마츠는 왠지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를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어요. 어느 부분이 다르고, 어느 부분을 보니 오소마츠고 이치마츠다 하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카라마츠는 분간할 수가 있었죠. 그리고 카라마츠가 처음 본 세 번째 쌍둥이는 다른 형제들보다 표정이 훨씬 밝고, 더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오소마츠는 왜 이 세 번째 형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걸까? 카라마츠는 싸움을 말리러 가는 것도 잊은 채 사진을 들고 한참동안 서있었습니다. 오소마츠와 이치마츠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그려려니 해도, 왜 그들이 세 쌍둥이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걸까. 세 번째 형제는 어디로 갔을까. 병이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뜬 걸까? 카라마츠는 사진과 마스터키를 들고 다시 아기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불이 꺼져있었습니다. 카라마츠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 불을 켰죠. 방 안은 난장판이었습니다. 어느 하나 성한 것 없이 모조리 박살이 나있었고, 누가 흘린 건지 알 수 없는 피가 곳곳에 튀어있었죠. 큰일 났구나. 카라마츠는 구급차를 부르려고 전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전화기 앞엔 오소마츠가 먼저 와있었죠. 카라마츠의 발소리가 들리자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굴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고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어요. 카라마츠는 손에 힘이 풀려 사진과 열쇠를 떨어뜨리고 벌벌 떨면서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습니다. 카라마츠가 혹시, 혹시,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자 오소마츠는 씩 웃으면서 카라마츠를 끌어안았어요. 설마 내가 하나뿐인 동생을 죽이겠어? 그냥 의견차이로 다퉜을 뿐이야, 하고 카라마츠를 달랬죠. 오소마츠의 목소리엔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어요. 카라마츠는 마음을 놓았고, 오소마츠의 품에 안겨 그의 멍든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그 세 번째 쌍둥이가 생각나 사진을 다시 주워들었습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내미는 걸 보고 뭔데? 하고 고개를 숙였다가 사진을 알아보자 그걸 빼앗듯 가져가 구겨 바지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카라마츠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그를 보자 오소마츠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막내동생이 어려서 사고로 죽었다고, 그의 어머니가 보면 마음이 찢어질 거라며 사진을 치워야 한다고 했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약을 발랐습니다. 카라마츠는 계속 이치마츠가 걱정되었지만 오소마츠의 앞에서 이치마츠를 찾아봐야겠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오소마츠가 어련히 힘조절을 했겠지 싶었고, 이제 정말 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했죠. 이치마츠가 외로웠고, 그저 가까이 있는 사람이 카라마츠였기 때문에 그에게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을 품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카라마츠가 좋게만 생각하려고 하는 것도 카라마츠가 어려서였을까요?”
쵸로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삐딱하게 물었다. 남자는 음, 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건 아마도 카라마츠의 천성이었을거에요. 뭐든지 좋게, 긍정적으로만 보려고 하는 성격.”
“좀 답답하네요.”
남자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남자는 쿠키를 하나 집어 조금 베어 물곤 차를 마셨다.
“새벽녘에 카라마츠는 뭔가 타는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새벽에 탄내라니, 혹시 집에 불이난건가? 하고 놀라 문을 열고 나갔지만 집 안은 조용했어요. 카라마츠가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와 창밖을 내다보니 이치마츠가 담배를 입에 물고 드럼통에서 뭔가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치마츠가 쓴 걸로 보이는 종이가 가득 든 박스가 있었고, 이치마츠는 그걸 몇 장씩 꺼내 불길이 넘실거리는 드럼통 안에 던져 넣었어요. 카라마츠는 혹시 이치마츠가 많이 다쳤을까 걱정이 되어 한참 이치마츠를 훑어보았고,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치마츠의 표정은 어떤 감정이 담겨있다고 뚜렷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이치마츠가 곧 카라마츠의 눈길을 피했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뒤척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죠.”
이제 카라마츠랑 이치마츠가 도망치는 건가? 쵸로마츠는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날 아침,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아들들의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카라마츠는 여차하면 자기가 나서서 둘러대려고 변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좀 의아하게 생각했죠. 네 사람이 거의 식사를 마칠 무렵 오소마츠가 말했습니다. 카라마츠와 아이와 함께 이 집을 떠나 극단에서 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겠다고.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치마츠는 꼭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죠. 카라마츠는 이제 아이를 데리고 오소마츠와 함께 집을 보러 다녔어요.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집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창이 넓었으면, 조금 더 조용했으면, 하고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늘 허탕을 쳤죠. 아기도 매일 차를 오래 타고 다니다 보니 힘이 들었는지 보챘고, 나중엔 감기를 앓기 시작해 카라마츠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오소마츠와 함께 집을 보러 갔습니다. 완벽한 집이었어요. 남쪽으로 난 창에는 햇빛이 환하게 들어왔고, 어디 바람이 새는 곳도 없었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아늑했죠. 카라마츠는 여기다 싶어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고 오소마츠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세 사람의 독립을 축하했죠.”
남자가 이야기를 멈추고, 자기 찻주전자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곤 잠시 만요, 하고 찻주전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아까와 표정이 좀 달랐다. 열심히 이야기를 하던 때와는 달리, 좀 더 삭막한 느낌이었다. 쵸로마츠는 기분탓이려니, 하고 남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길 기다렸다. 클라이막스였다.
“늦은 시간이었죠. 집 안은 조용했어요. 꼭 사람이 한동안 살지 않았던 것처럼 고요했습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게 처음은 아니었는데, 카라마츠는 현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불안함을 느꼈죠. 뭔가 잘못됐다고. 그리고 바로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방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습니다. 아기 침대는 비어있었어요. 아기방이 어떻게 손도 대지 못할 만큼 망가졌으니 시어머니가 거기에 아기를 둘리는 없고, 카라마츠는 다시 내려가 시어머니의 방문을 두들겼죠. 아기는 없었어요. 시어머니가 막 잠에서 깼는지 눈을 비비며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카라마츠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방문을 하나하나 열어 재끼면서 아기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치마츠를 불렀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요. 오소마츠도 다른 층에서 아기를 찾으며 방문을 열었지만 아기도, 이치마츠도 없었어요. 카라마츠는 점점 겁에 질려 미친 듯이 방문을 열다 갑자기 총에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습니다. 한 군데가 남아있었죠. 지하실. 카라마츠는 천천히 지하실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습니다. 뭔가 찌덕거리는 소리가 났어요. 카라마츠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갔죠. 저 멀리, 시어머니의 꿀 항아리의 뚜껑이 열려있었어요. 그리고 그 앞에, 이치마츠가. 이치마츠가 꿀범벅이 된 아기를 붙잡고 살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카라마츠는 정신을 잃기 직전에 이치마츠와 눈이 마주쳤어요. 이치마츠의 눈에는 슬픔과 절망, 고통, 그리고 공포가 어려 있었죠.”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다가 꼭 단칼에 끊은 것처럼 멈췄다. 뭐야. 쵸로마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자는 쵸로마츠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한참을 앓았습니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카라마츠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다시 깨어났을 땐 그의 곁에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앉아있었습니다. 카라마츠는 한숨을 쉬고,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고개를 젓고 카라마츠의 손을 부여잡았습니다. 카라마츠가 사흘 밤낮을 앓았다고. 시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찾았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오소마츠를 찾았지만 오소마츠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카라마츠가 허우적거리며 침대에서 나오려고 몸을 비틀자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카라마츠를 붙잡고 다시 자리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죠. 아주 이상하고, 오래된 이야기를.”
곧 끝납니다. 남자가 말했다.
“오소마츠네 집안사람들은 재주가 많았습니다. 다들 한 가지씩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 이름을 널리 떨쳤죠. 베토벤의 환생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음악 천재도 있었고, 세계 왕족들의 결혼 예복을 지은 디자이너도 있었고, 우주의 비밀을 조금이지만 밝혀낸 과학자도 있었습니다. 각 분야에서 거의 정상에 오른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라니. 이 집안에 대한 얘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을 부러워했죠. 그러나 이 집안사람들에게 있는 것은 사실 재능이 아니라 욕망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대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에게 주어진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 사람들을 내려다보고자 하는 욕망이었죠. 채울 수 없는 욕망은 정신을 좀먹었고, 그 욕망으로 눈이 하얗게 뒤집어지면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습니다. 바로 피붙이를 잡아먹는 것이었죠.”
“그럼……. 그 세 번째 쌍둥이는…….”
“그들은 유달리 혈육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서로를 잡아먹는 집안이 대를 잇고자 하는 발악이었을까요. 오소마츠의 아버지는 화가였어요. 그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광기를 무시하고 그에게 주어진 재능만으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었고, 그는 점점 미쳐가다 결국 그의 동생을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오소마츠와 두 동생이 지켜보고 있었죠.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아버지가 숙부를 뼈까지 씹어 먹는걸 벌벌 떨면서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세 사람은 약속을 했습니다. 우린 절대 서로를 잡아먹지 말자고.”
“설마…….”
“하지만 약속은 깨지기 마련이죠. 제일 먼저 욕망이 차오르기 시작한 건 오소마츠였어요. 그는 늘 사람들의 중심에 서고 싶었고, 늘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했어요. 그는 한동안 집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욕망을 억누르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오소마츠는 식욕이 돌았고 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 위에 그의 욕망이 넘실거려 결국 막내 동생을 삼켜버렸죠.”
괴상한 이야기다. 남자가 꼭 실제로 있었던 일 마냥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소마츠는 원하던 것을 쟁취했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그가 원하던 사람이 되어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어요. 어딜 가든 그는 눈에 띄었고, 자연스럽게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곤 했습니다. 이치마츠는 형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그들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식을 잡아먹은 자식마저 감싸 안았어요. 이치마츠는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게 뒤집어진 것처럼 느껴졌고, 점점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이치마츠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고, 감싸주기만 할 뿐이었어요. 그는 답답해 죽을 것 같을 때 글을 썼습니다. 시도, 소설도, 희곡도, 가리지 않고 글을 썼죠. 이치마츠는 글에 재주가 있었기에 그는 부업처럼 글을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왔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오소마츠의 아이를 잡아먹었죠.”
쵸로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떡 벌리고 남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카라마츠에게 정말 많은 돈을 줬어요. 차 트렁크에 현금을 가득 실어주고, 그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건네주었죠. 그리고 아기의 뼈가 들어있는 조그만 단지도 주었습니다. 카라마츠는 그 집을 떠나 한참을 헤맸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을 했죠. 오소마츠와 이치마츠와 그의 아기. 살이 뽀얗게 올라서 카라마츠가 이름을 부르면 팔다리를 귀엽게 버둥거렸던 아기. 늘 카라마츠에게 웃어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오소마츠. 그리고 겁에 질린 눈으로 여린 살점을 뜯어먹던 이치마츠. 가끔 오소마츠로 보이는 사람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지만 카라마츠는 멀리서 그가 보이면 바로 주거지를 옮겼습니다.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이치마츠는 자기가 대단한 작가가 되면 카라마츠가 돌아봐줄거라고 생각한건가요?”
“카라마츠는 어느 골방에서 아기의 뼈가 담긴 단지를 끌어안고 반쯤 죽어가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한적한 땅을 찾았죠. 어느 조용한 주택가에 주인이 방치한 공터였어요. 카라마츠는 그 곳에 작은 가게를 짓기로 했습니다. 전문 업체가 땅을 고르고 기반을 다졌어요. 그리고 바닥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됐을 때 카라마츠는 한밤중에 가게로 찾아와 바닥에 아기의 뼈 단지를 묻고, 아무도 모르게 흙을 덮어 가렸습니다. 그리고 가게를 찻집으로 꾸몄죠.”
쵸로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뒤를 돌아보았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운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설마. 쵸로마츠는 설마, 하는 마음에 다시 남자를 돌아보았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욕망이 뭐였는지 깨달았어요. 아무도 카라마츠에게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카라마츠는 알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과 함께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치밀어 올랐죠. 내 아기를, 내 행복하던 삶을 망가뜨렸는데. 나는 어떻게 이치마츠를 사랑할 수가 있지.”
그 때 가게 출입문에 매달린 종이 울렸다. 마스크를 쓰고 눈에 힘이 없는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가 축음기를 껐다. 그와 동시에 가게 안에 있던 불이 모조리 꺼졌다. 쵸로마츠는 황급히 테이블 사이로 달리며 출입문을 향해 달렸다.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분노는 도저히 이치마츠를 향할 수가 없었어요.”
이치마츠의 앞을 지나치며 쵸로마츠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이치마츠는 쵸로마츠를 붙잡지 않았다. 쵸로마츠는 문을 열어젖히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달렸다. 그는 어느 새 기숙사 뒷문에 도착해있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한밤중이었고, 쵸로마츠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해보니 막 열두시를 지난 때였다. 말도 안 돼. 쵸로마츠는 철문틈 사이에 손을 밀어 넣어 문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하지만 쵸로마츠가 철문을 잡는 순간 문이 부글부글 끓으며 천천히 녹아내려 쵸로마츠는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연보라 빛으로 반짝거리는 너울이 날아다녔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박은 걸까. 쵸로마츠는 정신이 아찔해 머리가 빙빙 돌았고, 눈앞에서 낮과 밤이 쉴 새 없이 바뀌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