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소리가 났다. 카라마츠는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 멈추고 병원 안쪽에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들어보니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이 부른 댄스곡이 병원 벽에서 진동이 느껴질 만큼 꽝꽝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닥터의 병원에서 아이돌 노래가? 카라마츠는 문손잡이를 잡고 잠깐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 씨!”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치자 쥬시마츠가 양손에 길쭉한 풍선을 이리저리 꼬아 만든 강아지와 꽃 같은걸 들고 카라마츠에게 다가와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카라마츠에게 뭐라고 막 말을 걸었는데 노래 소리에 묻혀 들리지를 않았다. 카라마츠는 일단 그걸 받아들고 병원 천장의 네 모서리에 붙어 있는 스피커를 가리켰다.

!!!! !!!!! !!!!”

쥬시마츠는 알아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 카라마츠가 스피커를 가리키고, 그리고 풍선을 들고 있는 양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아하! 하고 달려가 리모컨으로 음악을 껐다. 병원 안쪽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유리병들이 음악소리에 펄쩍거리고 있었는지 제자리에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는 풍선을 구석에 내려놓고 먹먹한 귀를 문질렀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쥬시마츠가 책상으로 달려가더니 폭신폭신한 호랑이 앞발 모양의 장갑을 꺼내들어 손에 끼웠다. 그리곤 양손을 흔들면서 활짝 웃었다. 예전에 쥬시마츠와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했을 때 카라마츠가 사준 것이었다.

놀이공원 스타일이에요!”

, 그래서 그랬구만. 카라마츠는 피식 웃고 쥬시마츠가 만들다 실패했는지 처참한 꼴로 널려 있는 풍선조각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풍선들을 주워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아마도 봉제인형 가게에서 어린이 동물원이라고 나온 시리즈를 전부 다 사온 것으로 보이는 인형 세트들을 들여다보았다.

어때요?”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있었다. 어젯밤 카라마츠가 출근을 해야 한다고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쥬시마츠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 일은 그만두고 하루 종일 자기랑 같이 병원에 있어주면 안되냐고 물었던 것이다. 사실 카라마츠도 쥬시마츠와 병원에서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고, 쥬시마츠가 들려주는 요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은 뽀뽀도 하고 하는 일이 꽤 즐거워 쥬시마츠의 제안이 솔깃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도 살아오면서 연애를 몇 번 해봤고, 무작정 붙어 있기만 하는 게 좋은 점만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카라마츠는 지금 그가 하는 일도, 함께 일하는 오소마츠도 좋았기에 쥬시마츠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된다는 얘기를 들어도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꽉 붙잡고 입을 삐죽거리며 왜 안 되는 거냐고 물었고, 카라마츠는 차마 그들이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질려버릴 거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놀이공원 분위기가 좋아서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둘러대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모양인거지. 카라마츠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뒤에서 카라마츠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는 쥬시마츠의 손을 겹쳐 잡았다. 아마 쥬시마츠는 오늘도 휴일팻말을 걸어놓고 신나게 쇼핑을 하고 병원 안을 꾸몄을 것이다. 카라마츠는 샹들리에에 걸린 빨갛고 노란 리본들을, 나름 동물원처럼 같은 우리를 쓰는 애들끼리 나눠서 늘어놓은 인형들과 그리고 쥬시마츠가 오늘 산 것으로 보이는 반짝반짝한 오디오를 둘러보았다. 카라마츠가 쥬시마츠의 손을 토닥거리며 잡고 있자 쥬시마츠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나랑 같이 병원에 있어주면 안돼요?”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엔 두 번째 거절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옅은 기대감이 깔려있었다. 카라마츠는 몸을 돌려 쥬시마츠의 양 뺨을 잡고 코끝에 쪽 하고 뽀뽀했다. 쥬시마츠의 눈이 반짝거렸다.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우리 일 안 할 거잖아요?”

할건데에....”

맨날 낚시가고 여행가고 맛있는 거 해먹고 재밌는 거 구경하러 가고 하다보면 굶어죽을걸?”

쥬시마츠가 입을 삐죽거렸다.

왜 굶어죽어요? 맛있는 거 해먹을 건데?”

쥬시마츠는 몰라도 나는 매일매일 세끼 밥이랑 고기를 못 챙겨먹으면 죽어요. 진짜로.”

카라마츠는 대답을 하고 곁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쥬시마츠가 잠깐 생각을 하는가 하더니 자기 의자를 끌고 와 카라마츠 곁에 바싹 붙어 앉았다.

우리 농사지을까요? 그리고 돼지랑 소랑 닭이랑 양이랑 참치도 키우고?”

그걸 다?”

할 수 있어요.”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난데없이 참치라니. 카라마츠는 웃음이 나오려는걸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키워놓은 걸 잡아서 먹으려면 슬퍼서 안돼요.”

그럼 열심히 안 키우고 씨앗만 뿌려서 다 자라면 잡아먹는 건?”

씨앗? 카라마츠는 쥬시마츠가 밭이랑에 훠이훠이 하면서 씨를 뿌리자 그 자리에서 소랑 닭, , 돼지, 참치가 쑥쑥 자라는 걸 상상했다. 바로바로 먹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매번 고기를 먹을 때마다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고기가 먹기 싫어질 것 같았다.

쥬시마츠는 병원을 해야 되니까 안돼요. 오늘은 손님 왔어요?”

카라마츠가 화제를 돌려버리는 게 못마땅했는지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뾰로통한 표정을 짓다가, 아차 하고 고개를 들었다.

오늘 토도마츠한테 전화가 왔어요.”

동생분?”

동생이 취미로 바둑클럽을 나가는데 거기서 만난 친구랑 내기 바둑을 두다가 동생이 관리하는 과수원을 날려버렸나 봐요. 애가 소소한 운은 좋은데, 그런 데서는 약하다니까요.”

쥬시마츠가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토도마츠와는 몇 번 만나서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한창 겨울이 깊어갈 때쯤 햇살 원액을 맞으러 주인 없는 작업장을 방문하기도 했었고. 토도마츠는 쥬시마츠와 닮았지만 조금 더 일반인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내키는 대로 옷을 골라 입는 쥬시마츠와는 다르게 평범한 대학생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지. 토도마츠는 꽤 활동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바둑도 뒀구나. 카라마츠는 쥬시마츠가 바둑판을 앞에 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둑을 두는 걸 상상해보았다. 어울리지 않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가 병원 안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간식거리를 내오는 걸 보면서 씩 웃었다. 쥬시마츠는 그냥 쥬시마츠 그대로가 제일 잘 어울렸다.

그럼 이제 쥬시마츠랑 동생분이랑 같이 사는 거에요?”

왜요?”

쥬시마츠가 김이 오르는 커피 두 잔을 들고 오며 물었다. 카라마츠가 보너스를 탄 기념으로 캡슐커피를 사주면서 쥬시마츠는 커피에 푹 빠졌다. 캡슐커피, 믹스 커피, 그리고 핸드드립으로 이어지면서 쥬시마츠는 커피콩을 키우겠다고 옥상 화분에 커피를 잔뜩 심었다. 카라마츠는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옥상에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보기로 결심했다.

동생 분은 그 과수원에서 사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걸 날려버렸으면 갈 데가 쥬시마츠 병원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과수원을 주면 안돼요.”

?”

그래서 과수원을 숨길 생각이에요.”

과수원을 숨겨? 카라마츠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쥬시마츠가 커피 향을 맡더니 한 번에 다 마셔버리고 컵을 내려놓았다.

카라마츠 씨 내일 쉬니까, 오늘 병원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같이 토도마츠네 과수원으로 가요.”

쥬시마츠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카라마츠가 거의 매일같이 퇴근을 하면 쥬시마츠의 병원으로 와 한밤중이 될 때까지 있었지만 쥬시마츠는 매일 헤어지는 걸 아쉬워했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쉬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쥬시마츠가 신나게 달려가 안쪽으로 사라졌다. 세면대에 양치 컵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라마츠는 그의 입맛에 딱 맞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진짜 쥬시마츠랑 여기서 살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쥬시마츠의 트럭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무것도 없던 조수석에는 카라마츠의 야외용 선글라스와 예비용 선글라스, 고글, 카라마츠가 좋아하는 과자와 껌 같은 군것질거리가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카라마츠가 좋아하는 음악 CD도 몇 개 꽂혀 있었다. 달라진 것은 트럭뿐만이 아니었다. 카라마츠도 더 이상 쥬시마츠가 그를 업고 옥상에서 바닥까지 뛰어내린다고 놀라지 않았다. 사실 다른 사람이 볼까봐 무섭긴 했지만 여태까지 운이 좋았는지 그들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가 막 뜰 무렵이었다. 초봄이었지만 해가 뜨기 전에는 좀 쌀쌀해 카라마츠는 담요를 꺼내 무릎에 두르고 창문을 닫았다. 잔잔한 바람에 길가에 핀 빨갛고 하얗고 노란 꽃들이 소리 없이 흔들렸다. 쥬시마츠가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닥터 쥬시마츠와 환자 카라마츠의 외전입니다 ㅇ0ㅇ

사람잡아먹는 걸 쓰고 나니 포카포카한 걸 쓰고 싶어졌어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