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굽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본능적으로 식욕이 돌았다. 그리고 이치마츠는 눈을 꼭 감고 입에 고인 침을 바늘처럼 삼켰다.

어젯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고 놓아주질 않았다. 이치마츠 나름대로의 위로가 통했던 걸까. 이치마츠의 귓가에 카라마츠의 고른 숨결이 산들바람처럼 스쳤다. 그리고 이치마츠는 악몽을 꿨다. 그가 간밤에 거칠게 베어냈던 가는 발목이 이치마츠의 숨통을 꾹 누르고 있었다. 한참을 발버둥 치다 간신히 꿈에서 깨어났지만 카라마츠는 깨지도 않고 계속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새벽이려나. 이치마츠는 해가 뜰 즈음이 되어 새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보려다 곧 새들도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치마츠는 다시 잠이 찾아올 때까지 가만히 카라마츠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귀 뒤로 넘겨주었다. 다행히 카라마츠는 옅게 웃는 표정이었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니? 너는?

진짜 먹을 생각이야?”

카라마츠는 찡그린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이건 우리가 고기를 먹음으로서 의미가 완성된다고. 하지만 이치마츠는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삼켰다. 정신병자 같은 얘기겠지. 카라마츠도 이치마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진 않았다. 우린 이제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들과 다른 종족이고, 우리가 저지른 것이 살인이 아닌 사냥이 되기 위해선 피해자를 묻어줄게 아니라, 전리품을 먹어야 했다. 이치마츠는 밤새 벗겨낸 가죽과 내장을 해가 뜨자마자 집에서 먼 골목까지 나가 버렸다. 등 뒤로 무언가가 느리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고갤 돌리지 않았다.

남은 것은 마트에서 팔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붉고 흰 살코기였다. 이치마츠는 어머니가 쓰던 식칼로 그걸 적당한 크기로 썰어내고, 간밤에 밥을 끓인 불구덩이에 석쇠를 올려 고기를 얹었다. 고기는 느리게 익었다. 카라마츠는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릇하게 고기 익는 냄새가 나는데 이치마츠는 계속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약해빠진 새끼. 이치마츠는 계속해서 침을 삼켰다. 그의 목구멍에 바늘이 박혀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익은 고기는 접시에 담겨져 식탁에 올려졌다.

남은 건 훈제를 하던가 하자.”

이치마츠는 젓가락을 건네주며 말했다. 카라마츠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곧 굳은 어깨를 펴고 식탁 앞에 앉았다.

신선한건 오랜만이네.”

이치마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라마츠도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먼저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망설이지도 않았다. 카라마츠는 늘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어른스러운 척하곤 했었지. 이치마츠도 이어 고기를 입에 넣었다. 이상한 맛이었다. 고기 맛은 맞는데, 뭐랄까, 낯선 맛이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고기를 먹었다. 형제들 중 카라마츠가 유달리 고기를 좋아했고, 다른 형제들도 한창 성장기였던 만큼 고기를 먹으러 가면 서로 사정 봐줄 것 없이 달려들어 입에 하나라도 더 밀어 넣기 위해 다투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식탁은 텅 비어있었고, 둘은 꼭 공장에서 뭔가를 조립하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입에 고기를 밀어 넣었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진다. 처음에는 견뎌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삶은 일상이 되어 적당히 타협해가며 살게 된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텅 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둡고 낯선 곳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다른 것들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고, 해가 지면 잠을 자고, 해가 뜨더라도 주변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밝아져야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서로 한마디도 언급하진 않았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 세상의 규칙이었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카라마츠가 가방에 작은 물통을 넣고 참치 통조림과 빵 통조림을 챙겼다. 이치마츠는 얼마 전 옷가게에서 훔쳐온 옷의 포장을 뜯다 멈춰 고민에 빠졌다. 이건 그들 나름대로의 적응방법이었다. 꼭 주인을 잃어버린 것처럼 텅 비어버린 세상은 두 고등학생에겐 제법 스릴 넘치는 놀이터였다. 그 차가운 자유 속에서 이치마츠는 담배를 시작했고, 카라마츠는 평소 그들이 갈 수 없었던 구역에 들어가 보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

학교?”

학교?”

카라마츠가 되물었다. 여태 그들이 가본 곳들과는 달리 너무나 일상적인 공간이었다. 학생이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도 얼마 되진 않았고, 같은 학교 여자애들이 쓰던 여자화장실은 이미 금단의 맛을 알아버린 그들에겐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치마츠는 학교에 가보고 싶었다. 그들이 제 2의 집처럼 생활하던 공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집이랑은 다를 것 같은데. 카라마츠를 붙잡고 이렇게 센티멘털한 얘길 하는 건 좀 부끄러웠다. 다행히 카라마츠도 더 묻지 않고 짐을 챙겼다. 그는 얼마 전 백화점에서 훔쳐온 선글라스를 쓰곤 웃었다. 이치마츠는 코랑 입 밖에 보이지 않는 그 얼굴을 보면서 덩달아 웃었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카라마츠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교로 가는 길은 너무나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카라마츠는 기왕에 어른이 될 거면 차까지 몰아보자고 나섰지만 열쇠가 꽂힌 채로 버려진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또래들이 좀처럼 만져볼 수 없는 가격의 선글라스를 쓰고, 독한 담배를 제법 능숙하게 피우며 손을 잡고 걸었다. 카라마츠의 손은 이제 이치마츠의 또 다른 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손을 잡고 있으면 이치마츠는 안심이 되었고,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었다. 힘이 넘치는 손. 버려진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그들의 무릎께에서 일렁였다. 학교로 가는 길에 작은 하천을 건너면서 이치마츠는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강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위로 내려쬐는 햇살은 물결의 흐름을 따라 갈라지면서 거대한 금빛 그물 같았다. 이치마츠는 잠깐 그 그물이 잉어니 붕어니 하는 것들을 남김없이 잡아 하늘로 올라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했다.

예상외로 학교 안엔 그것들이 꽤 모여 있었다. 그리고 꼭 짠 것처럼 그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 그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던 얼굴이었다. 이치마츠는 교우관계가 좁아 아는 얼굴이 얼마 없었지만 카라마츠는 누군가와 마주칠 때마다 멈춰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느새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셔츠 주머니에 끼워 넣었다. 학생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이치마츠는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문득 이치마츠를 괴롭게 했던 신입이 떠올랐다. 이치마츠는 그의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는 카라마츠와 손을 잡고 걸으면서 마주치는 얼굴을 꼼꼼하게 뜯어보았다. 카라마츠는 다섯 번째 아는 얼굴을 만나 멈춰 섰다가 아, 하고 작게 탄식하더니 이치마츠의 손을 놓고 위층으로 달려갔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놓고 가버리는 건 처음이었다. 고작 손이었는데 이치마츠는 놀라 카라마츠의 뒤를 쫓아 달렸다.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카라마츠는? 카라마츠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아? 혼자 남는 게 무섭지 않아? 이러다 둘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릴까봐 무섭지 않아? 이치마츠의 뒷목이 뻐근하게 당겨왔다. 카라마츠는 어느 교실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카라마츠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그저 교실 문을 붙잡고 그 안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곧 이치마츠도 숨을 헐떡이며 따라와 카라마츠의 어깨를 거칠게 부여잡았다.

왜 그래?”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교실 안쪽을 가리켰다.

어쩌면...”

카라마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치마츠도 고개를 내밀어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고약한 냄새가 났다. 다들 아는 얼굴이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이치마츠에게 그가 대본을 쓰고, 카라마츠가 연극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던 사람이었다. 그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들의 연극부실에서, 엉망이 된 꼴을 하고 교실 안을 맴돌고 있었다. 카라마츠의 숨이 거칠어졌다. 어쩌면.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하려던 말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이 죽인 것은, 그리고 함께 이 세상을 견뎌내고 있는 것들은 짐승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카라마츠는 헐떡거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이치마츠도 입이 바짝 말라왔다. 그 순간, 이치마츠의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치마츠는 계속 거기서 물러나려고 하는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아 그 교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치마츠, 그만 가자...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이치마츠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이 텅 빈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봐.”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고 무작정 입을 맞췄다. 첫 키스였다. 로맨스 영화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부드러운 움직임도 없었고, 혀가 오가지도 않았으며 애무하지도 않았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입을 맞추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이치마츠는 그런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고 그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치마츠!”

이치마츠가 입술을 깨물자 카라마츠는 정신이 도로 들었는지 이치마츠를 밀쳐냈다. 이치마츠는 칠판에 어깨를 꽝 소리가 나게 부딪치고 얼얼한 어깨를 문지르며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 쟤네가 사람이었으면 우리끼리 키스하는 걸 보고 가만히 있었을 것 같아?”

카라마츠는 손등으로 거칠게 입술을 문지르다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증거야! 저것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고!”

그게 과연 카라마츠를 위한 말이었을까? 이치마츠는 한참을 씩씩거리며 카라마츠를 노려보았다. 카라마츠는 먼저 돌아서 교실을 빠져나갔다. 이치마츠는 조금 자라 옷깃을 덮는 카라마츠의 뒷머리가 문 너머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달려가 카라마츠의 손을 꽉 쥐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손은 잡도록 내버려두었다. 이치마츠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손을 잡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짊어진 배낭에서 덜그럭거리며 통조림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치마츠는 이곳으로 느릿느릿하게 모여들었을 그 짐승들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여긴 익숙한 곳일 테고, 그럼 밖에서 한참을 돌다가 익숙한 장소를 찾아갔을 수도 있다. 보면 고양이들도 고양이들마다 자주 가는 곳이 있잖아? 그렇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묻고 싶었지만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물고 꼭 이치마츠가 없다는 것처럼 걸었다. 문득 저 사이에 형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을 카라마츠가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아니, 이치마츠가 보고 싶지 않은 건가. 자꾸 눈앞에서 카라마츠가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내던 모습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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