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른 전력 60분으로 쓴 썰입니당 ㅇㅅㅇ)/ 카라른 최고








남자친구, 소개 안 시켜줘?”

난데없는 아웃팅이었다. 카라마츠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모조리 흘려버리고 거칠게 기침을 했다. 언젠가 형제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이렇게 이를 줄이야. 카라마츠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도록 콜록거리면서도 연신 고개를 돌려 혹시 다른 형제들이 들어오려고 하지는 않는지 기척을 살폈다. 다행히 이치마츠의 말을 들은 건 카라마츠뿐이었고, 다른 형제들은 빈 그릇을 나르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을 가져온다고 방을 비우고 없었다. 다행이다. 아니, 다행이 아닌가? 다른 형제들도 전부 알면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게 아닐까? 카라마츠는 손이 벌벌 떨렸다. 입과 상의가 젖어 불쾌했다. 일단 이걸 다 닦고, 이치마츠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아무렇지 않게 둘러대야 하는데. 휴지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옷소매를 당겨 입을 문질러 닦았다. 이치마츠는 턱을 괴고 카라마츠가 허둥지둥 하는걸 빤히 보고 있다 곁에 있던 티슈상자를 건네주었다.

진짠가 보네.”

이치마츠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 아니…….아닌아닌데…….”

글렀다. 순식간에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울고 싶지는 않았다. 동생에게 동성 애인을 들켜버린 주제에 울기까지 해버리면 카라마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비참해질 것 같았다. 왜 하필이면 이치마츠일까. 그제야 카라마츠는 그동안 이치마츠가 했던 호모포비아적 발언이 모두 카라마츠를 향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날 향한 칼이었다는 게, 상대가 형제라는 걸 알면서도 날카롭게 벼린 칼이라는 게 너무 아파서, 카라마츠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눈물이 눈꼬리를 따라 흘러 뚝, 떨어졌다. 카라마츠는 급히 티슈를 뽑아 대강 뭉친 다음에 양 눈을 아플 정도로 꾹 눌렀다.

 

호모새끼들은 다 죽여 버려야 돼.”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보던 와중에 이치마츠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내뱉듯 말했다. 카라마츠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이치마츠가 알아버린 걸까? 카라마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노력하면서 음료수 컵을 들고 이치마츠의 눈치를 살폈다. 이치마츠는 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토도마츠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안 돼, 이치마츠 형. 사람들마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나는 남자가 나만 좋아하지 않으면 되는데 말이지. 요샌 어디 가서 그런 말 했다간 욕먹어.”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카라마츠는 억지로 웃었다. 속이 쓰렸다.

카라마츠는 난생 처음 짝사랑 하던 상대와 이어져 새콤달콤한 첫사랑을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형제들에게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가 사랑하는 그는 같은 반의 남학생이었기에. 다른 형제들이 서로에게 연애상담을 하고 좋아하는 여자애 얘기를 하며 신나하는 걸 카라마츠는 그저 부럽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사랑을 하고 있어. 카라마츠는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물었다.

사랑하는 그와는 영화 취향이 비슷해 주말이면 만나 영화를 보러 갔고, 학교가 끝나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더위도 추위도 모를 정도로 딱 붙어 길을 걸었다. 그와는 정말 온갖 얘기를 나누었다. 학교생활, 언젠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 그리고 그의 소중한 형제들까지. 어느 인적 드문 골목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첫 키스를 하기도 했고. 학교를 졸업하면 같은 대학에 가고, 여느 룸메이트들처럼 자취방을 구해 함께 살자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카라마츠는 꼭 하늘을 나는 것처럼 둥둥 떠 있었다. 늘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야 손을 잡았고, 또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에게 들키진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행복했던 순간이 물거품처럼 터지는 것 같았다. 카라마츠가 눈가에 대고 있던 티슈는 어느새 푹 젖었고, 카라마츠가 얼른 새 티슈를 뽑아 다시 눈을 가리려고 하는 순간 다른 형제들이 깎은 배를 한 접시 가득 담아 들고 들어왔다.

카라마츠 형! 왜 울어?”

이치마츠, 쟤 왜 저래?”

형제들은 접시를 던지듯 내려놓고 카라마츠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을 살폈다.

물 마시다가 사레들려서 저래.”

목에 커다랗고 뜨끈한 덩어리가 걸린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른 형제들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언제 이치마츠가 얘기를 할지 모르지만. 카라마츠는 웃으면서 젖은 티슈뭉치를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치마츠가 배를 하나 집어 들어 와작와작 씹어 먹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우는 걸 봤으면서도 아무런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아마 카라마츠가 이렇게 반응할 줄 알고 있었겠지. 카라마츠는 올린 입꼬리에 힘을 줘 배로 시선을 돌렸다.

 

걔랑 헤어져.”

이치마츠는 형제들이 다 잠에 빠져들자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고 집 뒷마당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카라마츠는 복잡한 머릿속을 한참 정리하다 간신히 잠에 빠져들었는데, 자다가 갑자기 일으켜져 헤어지라는 소리를 들으니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

이치마츠가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사귀고 있는 걔랑 헤어지라고.”

카라마츠는 간신히 잠이 깨 눈을 비볐다.

?”

이치마츠는 한참 카라마츠의 눈을 노려보다 마당에 침을 뱉었다.

나랑 똑같은 얼굴을 한 새끼가 다른 남자랑 떡치는 생각만 해도 더러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다른 애들한테 얘기하고 학교에 소문내기 전에 헤어져.”

카라마츠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늘 상처 주는 말만 골라서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카라마츠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가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사람이었고, 또 그는 카라마츠가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카라마츠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마루에 앉아 다리를 세우고 고개를 파묻었다. 이치마츠가 노려보고 있는지 정수리가 따끔거렸다. 카라마츠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말을 해야 했다. 이치마츠에게. 이 말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야."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좋아했고, 2년도 넘게 짝사랑만 하다가 포기하기 직전에 사귀게 됐어. 살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좋아해본 적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 이치마츠, 그냥 못 본 척 해주면 안 될까? 이 사람하고 헤어지면 나는 죽을지도 몰라.”

, 이치마츠가 어이없다는 듯 바람 새는 소리를 내고 웃었다. 카라마츠는 옷소매를 씹었다. 이치마츠가 안 된다고 하면, 형제들에게 모두 말해버리면 어떡하지. 카라마츠는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었고, 곧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한동안 부모님 집에 붙어서 살아야 했다. 이치마츠가 부모님에게, 형제들에게 말을 해버리면 카라마츠는 갈 곳이 없었다. 카라마츠가 좋아하는 그 사람도 동갑의 고등학생이었고, 또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하는데. 이치마츠는 대답이 없었다. 카라마츠는 꼭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제발 짓밟지만 말아달라고 이치마츠의 선처를 기다리는 벌레. 내가 흉측하고 더럽고 징그럽다는 건 알고 있어. 보이지 않는 곳에 조용히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숨어있을게. 제발 짓밟지만 말아줘.

네가 뭘 모르나본데, 걔를 아무리 사랑한대도 그건 잠깐이야. 대학만 가 봐도 만나는 사람은 얼마나 많고, 또 여자들은 얼마나 많은데. 너는 걔 하나만 믿고 가족을 다 버리겠다는 거야? 미쳤냐? 걔한테 빚졌어? 걔가 그렇게 씹질을 잘해? 너는 걔 없으면 욕구불만으로 죽어?”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바로 앞에 서서 조근조근 잔인한 말을 쏟아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카라마츠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눈을 뜨면 카라마츠의 심장에서 김이 후끈후끈하게 오르는 피가 줄줄 흘러가는 게 보일 것 같았다.

그래도 안 돼…….”

카라마츠는 다시 목이 멨다.

안 돼……. 걔가 좋아서, 나는 안 돼…….”

그동안 형제들 틈에서 비밀을 지키느라 서럽고 외로웠던 것까지 한 번에 올라와 카라마츠는 속이 울렁거렸다. 태어날 때는 다들 똑같이 태어났는데, 왜 카라마츠만 이렇게 달라서 혼자 고통스러워야 하는 거지. 심장이 조이듯 아팠다.

이치마츠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카라마츠의 곁을 지나치려다 멈추고 카라마츠의 곁에 쭈그리고 앉아 카라마츠의 귓가에 속삭였다.

졸업할 때까지만 만나. 그리고 졸업식 날 헤어져. 그 뒤로 너희 둘이 같이 있는 게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다시는 이 집에 발도 못 들여놓을 줄 알아.”

 

기간이 정해진 사랑은 얼마나 애달픈지. 카라마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마 사실대로 얘기하지도 못하고 이별을 고했다.

상처 줘서 미안해. 너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너랑 함께 해서 정말 행복했고,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 너랑 같이 걷던 거리, 그 골목, 그 가로등 밑만 걸어도 나는 죽을 때까지 네 생각을 할 거야. 고마워. 나랑 그렇게 사랑해줘서 고마워. 겁쟁이인 나에게 먼저 고백해줘서 고맙고, 나는 그저 너한테 고맙기만 해. 사랑해. 정말 좋아했어.

하지만 카라마츠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이 모든 말을 한껏 움츠러든 그 사람의 등 뒤에 흘려보냈다. 졸업장이 든 통을 잔뜩 구겨질 정도로 부여잡고, 카라마츠는 소리 없이 울었다.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어머니가 카라마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야되는데,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야 하는데. 카라마츠는 그 사람의 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 뒤에야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카라마츠의 첫사랑이 조각도 주워 담지 못할 정도로 박살나버린 날이었다. 내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카라마츠는 어린애처럼 소리 내 울면서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게 다정하고, 상냥하고, 카라마츠에게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카라마츠의 어깨에 차가운 손이 닿았다. 카라마츠가 엉망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아보자 그 손이 카라마츠의 얼굴에 손수건을 던지고 돌아서 달려갔다.

 

카라마츠의 예상은 옳았다. 그 사람 같은 남자는 다신 만나지 못했고, 카라마츠는 그의 흔적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은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채 가지 못하는 짧은 만남이었다. 만난 남자의 수가 다섯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세상엔 카라마츠를 위해 태어난 특별한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운명처럼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그 사람이 대학에 간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새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소식을 듣고 카라마츠는 모든 희망을 접었다. 이치마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입이 썼다. 영원한 사랑이란 건 없는 모양이었다. 카라마츠에게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또 남자 만났냐.”

가로등 밑에 이치마츠가 담배꽁초를 산처럼 쌓아놓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잡았다. 그러자 뒤에서 커다란 손이 카라마츠의 목덜미를 잡아 당겼다.

무슨 짓이야?”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떼려고 노력했지만 이치마츠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라마츠를 끌고 집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텅 빈 골목에 누런 가로등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남자를 만나?”

이치마츠는 기가 찬다는 표정이었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이치마츠의 얼굴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귀는 거 아냐. 금방 헤어지니까.”

사랑해서 만나는 게 아니라?”

카라마츠는 피식 웃었다. 이치마츠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나올 줄이야.

그럴 리가.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안심해.”

카라마츠가 몸을 돌리자 다시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어깨를 잡아 돌려 이치마츠를 보게 했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뭔데?”

남자를 사랑한다고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

이치마츠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그때까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카라마츠의 턱을 단단히 잡았다.

틀렸어.”

그리곤 휘둥그레진 카라마츠의 눈을 피해서, 이치마츠가 잔뜩 튼 입술을 카라마츠의 입술에 부딪쳤다. 짙은 담배냄새가 났다. 차가운 밤의 냉기가, 가로등 불빛에 잔뜩 달아오른 온기가 그 입술에서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순간적으로 굳었지만, 곧 눈을 감고 이치마츠의 입술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번엔 카라마츠의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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