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카라마츠가 당번이지?”

쵸로마츠가 교복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말했다. 이치마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쵸로마츠가 신발장 위에 놓여있던 열쇠를 휙 던져주었다. 이치마츠는 현관 옆 벽에 기대어 삐딱하게 쵸로마츠를 보고 있다 날아온 열쇠를 간신히 잡고 쵸로마츠를 째려보았다.

나 다리 부러진 거 안보여?”

야구하다가 부러뜨린 놈이 말이 많네.”

쵸로마츠가 피식 웃고 현관을 나섰다. 얄미운 놈. 이치마츠는 쵸로마츠의 뒤에 대고 가운데손가락을 내밀었다.

 

평소에 운동이라곤 간신히 학교에서 집 사이를 걸어 다니는 것 밖에 안하던 탓일까. 이치마츠는 깁스한 다리 위를 슬슬 만져보며 깁스를 풀면 꼭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토도마츠가 하는 것처럼 조깅이라도 하면 도움이 될 텐데. 이치마츠는 현관 옆에 서서 엉겁결에 쵸로마츠, 토도마츠, 쥬시마츠, 오소마츠를 배웅했다.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다 같이 학교를 다녔는데, 학년이 올라가자 각자 생활 패턴과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느라 여럿이서 학교를 가는 일이 드물었다. 이렇게 누구 하나가 다리 혹은 팔을 부러뜨려 자전거로 데려다 주는 게 아니라면.

, 이치마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카라마츠가 한참 만에 방에서 나와 이치마츠의 가방을 받아들고 어깨에 멨다. 이치마츠는 아직도 빗질 자국이 남아있는 카라마츠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손에 한참동안 쥐고 있던 열쇠를 집어던졌다. 열쇠는 카라마츠의 오른쪽 어깨에 맞고 툭 떨어졌다. 카라마츠는 놀라 뒤를 돌아보곤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집어 들어 교복 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신발 신는 거 도와줄까?”

카라마츠가 현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내밀었다. 괜히 싫은 생각이 들어 이치마츠는 신경질을 낼까 하다가 접고 순순히 바닥에 앉아 발을 내밀었다. 남자애 여섯이 사는 집의 신발장은 아무리 정리를 한다 하더라도 정신이 없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그 신발 무더기에서 단번에 이치마츠의 신발을 골라내 조심스럽게 이치마츠의 발에 신발을 신겼다. 신발 뒤축을 정리한다고 카라마츠의 긴 손가락이 이치마츠의 발뒤꿈치를 스쳤다. 이치마츠는 잠깐 숨을 멈췄다가, 카라마츠가 손을 놓자 신발장을 붙잡고 일어나 현관으로 내려왔다.

그럼 가서 자전거 꺼내올게.”

카라마츠가 먼저 현관을 나섰다. 카라마츠가 문 밖으로 나가는 걸 보고 나서야 이치마츠는 참았던 숨을 휴, 하고 내쉬었다.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랑 완전히 똑같을 저 손가락이, 저 등이, 저 어깨가 신경 쓰였다.

 

카라마츠가 자전거 경적을 울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찬바람이 훅 불어왔다. 이치마츠가 집 안과 밖의 온도 차이에 굳어있자 카라마츠가 자전거 바구니에 가방 두 개를 쑤셔 넣고 이치마츠에게 고갯짓을 했다.

지각하기 전에 얼른!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입만 다물면 참 좋을 텐데. 이치마츠는 절뚝거리며 자전거 뒷자리에 앉았다. 눈앞에 카라마츠의 넓은 등이 있었다.

이치마츠, 허리 붙잡아야지.”

카라마츠가 페달에 발을 올리고 말했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양 팔을 내밀어 카라마츠의 허리를 감아 안고, 손에 깍지를 꼈다. 얇은 교복 셔츠와 재킷 너머로 납작한 카라마츠의 배가 만져졌다. 카라마츠가 숨을 쉴 때마다 배가 조금씩 움직였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만 손가락을 살짝 세워 손가락 끝으로 배를 덧그렸다.

꼭 잡았지? 그럼 간다!”

카라마츠가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아무리 카라마츠가 앞에 앉아 찬바람을 막아준다고 하더라도 둘은 키 차이가 나질 않아 팔 틈새로, 귀 너머로 바람이 휙휙 스치고 지나갔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잔뜩 웅크리고 카라마츠의 등 뒤에 숨었다. 혼자면 모를까 이치마츠를 뒤에 매달고 있어서 그런지 카라마츠의 숨이 조금씩 빨라졌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등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가 곧 한쪽 뺨을 갖다 댔다. 그 등이 따뜻해서, 이치마츠는 팔에 더 힘을 줘 카라마츠를 끌어안았다

저기 정문 보이네. 다 왔어, 이치마츠. 교실까지 가방 들어다줄까?”

학교 가는 길은 너무 짧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등에 이마를 댄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럼 있다가 수업 끝나고 데리러 갈까?”

나 죽을 병 걸린 거 아니거든. 그냥 신발장 앞에서 기다려.”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전거가 멈췄다. 자전거가 옆으로 조금 기울었고, 카라마츠가 한쪽 발을 땅에 딛고 자전거를 단단히 잡았다. 내려야겠지. 이치마츠는 손에 깍지를 풀었다. 팔 안에 가득 찼던 카라마츠를 놓는 게 아쉬웠다. 불편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어 뻣뻣하게 굳은 목을 풀고 자전거에서 내리자 카라마츠가 다시 자전거 페달에 발을 올리고 이치마츠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카라마츠의 양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카라마츠는 바구니에서 이치마츠의 가방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그럼 있다가 학교 끝나고 보자!”

카라마츠가 손을 흔들고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이치마츠는 가방을 꼭 카라마츠의 허리처럼 품에 끌어안고 카라마츠가 다시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 경비실 옆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로 가는 걸 바라보았다. 그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유달리 정문과 본관 사이의 거리가 멀었다.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침 조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라마츠는 저기에 자전거를 묶어놓고 이 넓은 운동장을 뛰어 오겠지. 카라마츠가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자전거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카라마츠를 기다릴까. 지각이라고 소리치는 학생들이 이치마츠의 곁을 빠르게 스치고 달려갔다. 여기서 카라마츠를 기다린다고? 카라마츠가 왜 기다렸냐고 물어보면 무슨 핑계를 대려고? 카라마츠가 자전거를 묶어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치마츠는 황급히 몸을 돌려 신발장으로 걸어가 재빨리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고 계단을 올라갔다. 마음이 급해 다리가 불편한 줄도 몰랐다. 내가 왜 기다리려고 했지? 이치마츠는 교실 뒷문을 열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을 알 것 같기도 했고, 모르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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