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별 중요한 얘기가 아닐지도 모르고, 이게 제 병이랑 연관된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윽.”
쥬시마츠의 손이 날개뼈 밑을 꾹꾹 눌러왔다.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시원했다.
“주말이었어요. 날씨도 선선하고 공기도 맑은 날이라 손님들이 정말 많이 왔었습니다. 그만큼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도 많고, 찾겠다고 모여드는 사람들도 많아서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죠. 밥 먹으러 나갈 겨를도 없어서 오소마츠 형이랑 간신히 도시락을 사다가 먹었으니까.”
쥬시마츠는 아무 대답도 없이 카라마츠의 등에 기름을 바르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걸까? 카라마츠는 가만히 장작 타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저희 사무실 옆엔 미아보호소가 있어요. 놀이공원이 워낙 넓어서 그런지 미아들이 제법 많이 옵니다. 그날도 엄마 손을 놓쳤다고 우는 애들이 한 여덟 명은 됐던 것 같은데, 그 중에서 한 아이가 좀 이상했어요. 다른 애들은 펑펑 울거나 아니면 잔뜩 겁먹어서 직원들한테 안겨있는데, 그 아이는 놀라지도 않고 그냥 다른 애들이 우는 걸 이상하단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는 거에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 애가 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는데, 그땐 엄마랑 떨어지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낄 나이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는 직원이 이름과 집 주소, 전화번호, 부모님 성함 같은 걸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질 않는 겁니다. 아이가 발달이 느린 아이였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다른 건 물어봐도 대답을 잘 했거든요. 제가 과자랑 음료수를 나눠주니까 고맙다고 인사도 꾸벅 하고, 혹시 놀라서 그런 건가 싶어 아이를 안고 여기 저기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말을 거니까 자기는 기린이 좋고, 병아리는 귀엽고, 팬더는 조금 무섭다 하는 얘기를 조잘조잘 잘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신상에 관한 얘기는 은근히 돌려서 물어보기만 하면 금세 알아차려서, 아무 말도 없이 풀죽은 표정만 짓고 있었어요.”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등에서 손을 떼고 오일병 뚜껑을 닫았다. 그리곤 카라마츠가 옆에 벗어두었던 윗옷을 조심스럽게 입혀주고 카라마츠의 어깨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오일은 바를 만큼 발랐으니까, 이불 덮고 있어요.”
“수고하셨어요.”
쥬시마츠는 활짝 웃고 자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카라마츠에게 물었다.
“그 아이가 부모를 찾았나요?”
“아니요. 아이는 정말 한마디도 하질 않아서 그날 하루 종일 다른 애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떠나는 걸 멀뚱히 보기만 하다가 결국 경찰서로 갔어요. 그 뒤에 일은 알 수 없었어요. 아마 미아보호소 쪽에서 CCTV 화면 같은걸 확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일하는 쪽이 아니니까.”
“카라마츠 씨가 속상했겠네요.”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다음 말을 꺼내기 위해 숨을 골랐다.
“그날 저녁에 마감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이 생각이 났어요. 병아리는 조류고, 팬더는 포유류고, 금붕어는 어류라고 얘기할 만큼 똑똑한 아이가 왜 자기 이름도, 전화번호도, 집주소도 얘길 하지 않았는지. 그런데 그날 밤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아이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거에요. 아이가 어쩌면 부모님을 찾고 싶지가 않았다던가, 아니면,”
“아니면?”
“부모님에게 버려질 거라고 미리 예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사실 아이가 부모님에게 반항해서 손을 놓고 도망쳤다고 하면 부모님은 당연히 놀이공원 직원들이 아이를 미아보호소로 데려올 거라는 걸 아니까, 그 쪽으로 아이를 데리러 왔겠죠? 하지만 그 아이를 데리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냥 동네 공원도 아니고 주거지역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놀이공원인데, 아이가 거기까지 혼자 왔을 리는 없잖아요.”
“부모가 아이를 버리러 온 거네요.”
카라마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쥬시마츠는 의자를 침대가로 조금 더 가까이 붙여 앉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아이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이 자기 부모를 찾아낼 수 있을 법한 정보는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고, 담담하게 버려짐을 받아들인 거에요. 속상했어요. 그렇게 조그맣고 귀엽고 똑똑한 아이가 왜 버려져야 하는지, 그리고 아이는 왜 거기에 분노하거나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고 얌전히 버려지는지. 이건 좀 많이 나간 것 같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계속 암시를 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넌 필요 없는 아이고, 널 어딘가에 버리고 올 거라고 하면서.”
가슴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쥬시마츠도 눈치를 챘는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조심스럽게 카라마츠의 심장 부근을 만졌다.
“많이 슬펐나봐요. 카라마츠 씨의 심장이 다시 얼어붙고 있어요.”
“슬펐어요. 속상한 건가. 사실 그 아이가 제 자식도 조카도 아닌데, 그냥 그날 하루 미아보호소 쪽에 사람이 부족해서 아이를 돌봤을 뿐인데 그냥 그 어린 아이가 버려진다는 게 속상해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차라리 아이가 펑펑 울면서 부모를 찾았다면 더 나았을지도 몰라요.”
버려질 준비가 되어있는 아이라니까 더 속상해져서……. 카라마츠가 말을 흐렸다. 쥬시마츠는 침대 가에 바싹 붙어 카라마츠의 한쪽 뺨을 감싸고 카라마츠의 눈을 들여다봤다. 쥬시마츠의 눈이 맑고 깨끗해서, 카라마츠는 그 눈동자에 자기가 비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라마츠 씨가 소원을 빌었군요.”
“소원이요?”
“소원이라는 게 늘 대단한 건 아니에요. 카라마츠 씨가 진심으로 뭔가를 바라게 되면, 그게 소원이죠.”
“아…….”
“무슨 소원이었어요?”
“…저는 어른이니까,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제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쥬시마츠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카라마츠는 그냥 눈을 비비는 척만 하려고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댔는데, 마른 눈에서 아주 조그만, 모래알 같은 알갱이가 툭 떨어졌다. 어? 카라마츠가 놀라 눈을 비비자 양쪽 눈에서 차가운 알갱이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선…선생님……, 이게 뭐죠?”
쥬시마츠가 한쪽 손을 카라마츠의 눈 밑에 가져다 댔다. 조금 따끔거렸다. 쥬시마츠는 몇 분 동안 가만히 손을 대고 있다가 손안에 든 것을 카라마츠에게 보여주었다. 투명한 얼음 알갱이가 한 스푼정도 담겨있었다.
“카라마츠 씨의 눈물이에요. 안되겠다. 지금 일단 작업장까지 가고, 첫 햇살을 받아야겠어요.”
쥬시마츠의 손 안에 든 것은 체온에 순식간에 녹아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녹색 카펫에 얼룩이 생기는 것을 물끄러미 보았다. 눈에서 저런 게 나오다니. 진짜 죽는 건가? 쥬시마츠는 병원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커다란 가방 안에 물건을 마구 쑤셔 넣었다. 카라마츠는 눈물 얼룩이 증발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야구배트와 글러브 위에 겹겹이 쌓여있는 겉옷을 하나씩 주워 입었다. 카라마츠가 아이의 상처까지 떠안길 바랐기 때문에 카라마츠가 이렇게 얼어붙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아이가 받았을 상처는 얼마나 심했던 걸까. 그 작은 아이가 이렇게 춥고, 아프고, 외로웠을 거라고 생각하면 카라마츠는 다시 마음이 욱신거렸다. 후회가 되진 않았다. 카라마츠가 패딩까지 껴입자 뒤에서 쥬시마츠가 아주 길고 두꺼운 목도리를 카라마츠의 목에 칭칭 둘러 감았다.
“…카라마츠 씨는 정말 상냥한 사람 같아요.”
쥬시마츠가 목도리를 꼼꼼하게 매듭지으면서 말했다.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 목도리는 뭐로 만든 건가요?”
“이거요? 산건데요?”
쥬시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카라마츠가 정말 한참을 잤는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눈보라는 어느새 멈춰있었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니 폐가 찌릿찌릿 아파서 카라마츠는 목도리를 끌어올려 코와 입을 막았다. 쥬시마츠는 커다란 배낭을 앞으로 돌려 매더니 카라마츠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히세요!”
“아까 올라올 때도 업고 올라오셨는데, 이번엔 제가 내려갈게요.”
쥬시마츠는 고개를 저으며 카라마츠의 양 팔을 잡아 자기 목에 두르고, 카라마츠를 억지로 업히게 해서 그의 양 허벅지를 단단히 잡았다.
“눈 감아요.”
“네?”
“좀 놀랄까봐.”
카라마츠가 눈을 감자, 쥬시마츠가 순식간에 옥상을 박차고 달려 나가 그대로 뛰어내렸다. 휘이이이잉 하고 귓가로 거센 바람이 스쳤다. 카라마츠가 쥬시마츠의 목을 있는 힘껏 끌어안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쥬시마츠가 사뿐히 땅 위에 착지해 카라마츠를 내려주었다. 쿵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꼭 깃털이 내려앉듯 가뿐했다.
“지금 저기서 뛰어내린거에요?!!”
카라마츠는 비틀거리며 건물 벽을 붙잡고 미친 듯이 요동치는 가슴을 꽉 부여잡았다. 만약 카라마츠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해도 지금 이렇게 뛰는 걸 보면 다시 살아난 게 분명했다.
“눈 감고 있으면 모를 줄 알았는데…….”
쥬시마츠가 머쓱해하며 카라마츠의 어깨를 몇 번 토닥였다.
“차 가지고 올게요. 저기 큰 길로 나가있어요.”
쥬시마츠가 의사 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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