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츠가 입고 있던 샤워가운 주머니에선 낯선 보석들이 나왔다. 이치마츠는 보석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지만 카라마츠가 착용한 걸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카라마츠의 부모님이 주셨다던가 할 물건도 아니다. 카라마츠의 부모님도 무척 가난하셨다고 했으니까. 여주인에게서 훔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뒷목이 뻐근하게 당겨왔다. 여주인이 잠들었을 때 카라마츠가 몰래 들어가 보석함을 뒤져 금시계 같은 것들을 훔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카라마츠가 왜 저렇게 샤워가운만 입고 도망치려고 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샤워가운도 여주인이 준 것이겠지. 이치마츠가 없는 사이 여주인이 카라마츠를 불러 샤워가운을 내밀고 입기를 강요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카라마츠가 금붙이를 슬쩍해왔을지도 모른다.

이치마츠는 경찰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구석으로 비켜서서 가방 지퍼를 열어 망치와 칼을 꺼냈다. 아까 경찰에게 확인을 받은 물건이니 만약 경찰이 흉기를 들고 다니지 말라고 막아서도 어디에 살인범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호신용으로 들고 있겠다고 우겨볼 생각이었다.

여주인은 나이와 신경쇠약을 이유로 방에 틀어박혀있었다. 여주인이 나오지 않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경찰들이 2층으로 올라가 알리바이나 그런 것들을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치마츠는 여주인의 증언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조용히 비상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주인의 방문 앞을 경찰이 지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여주인이 쫓아낸 것인지 아님 저택의 출입구를 모두 통제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2층 복도에는 경찰 두 명만 남아 빈 방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경찰들 곁을 지나면서 가볍게 묵례했고, 경찰들은 흠칫 놀랐지만 이렇다 할 것을 따져 묻지 않고 그를 지나가게 해주었다. 이치마츠는 경찰들이 서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여주인의 방 문고리를 소리 없이 돌렸다. 다행히도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여주인은 잠옷 차림으로 커다란 여행 가방에 아무렇게나 옷을 집어던지고 서랍에 든 것을 쏟아 부으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자고 한건 너잖아! 내가 시간 끄는 거 싫다고 했지! 아니 걔는 처음부터 내가 가자고 했으면 갔을 거라고!”

가자고 했으면 갈 애라는 게 누굴까? 카라마츠? 여주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치마츠는 방문을 잠그고 천천히 여주인의 뒤로 다가가 단숨에 목덜미를 잡고 여주인의 침대 위에 패대기쳤다.

이치마츠 군! 살아있었구나!”

여주인이 이치마츠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면서 애써 웃어보였다이치마츠는 여주인이 당황한 사이 전화기에 연결된 전화선을 뽑아 침대 밑으로 걷어찼다.

내가 분명히 우리 식구 중에 한 명이 더 있다고 했는데 이치마츠 군이 보이지 않는대서 걱정했지. 이치마츠 군 대체 밤새 어디 있었던 거야? 내가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 혹시 이치마츠 군도 어떻게 됐을까봐…….”

여주인이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치마츠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알이 빠져버릴 것 같은데, 여주인에겐 보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치마츠가 거칠게 이를 가는 소리는 들릴 수밖에 없었다.

왜 죽인거야.”

이치마츠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알고는 있지만, 카라마츠가 죽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 그게 정말 사실이 되어버린 것 같아 이치마츠는 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죽이다니! 이치마츠 군, 나 같은 힘없는 노인네가 뭘 어떻게 하겠어?”

여주인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침대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이치마츠가 다시 멱살을 잡아 침대 중간으로 잡아끌었다. 더럽게 넓기도 하지.

카라마츠를 왜 저렇게 내버려뒀는지 내가 모를 거 같아? 냉동 창고에 숨겨둔 걸 옮기느라 시간이 없었던 거잖아!”

이치마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주인은 대답도 없이 이치마츠를 노려보다가 꺄아아아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져 나왔다. 여주인의 비명소리가 온 저택을 울렸다.

진작 죽여 버렸어야 했어. 난 늘 기다리기 싫다고 했었는데 말이지.”

여주인은 이치마츠가 막고 있는 침실 문이 아니라 옷방 문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치마츠가 조금 더 빨랐다. 이치마츠는 두툼한 여주인의 목덜미를 부러뜨릴 듯 꽉 잡고 그 허리에 들고 있던 칼을 쑤셔 넣었다. 칼은 무뎌지지 않았다. 전등 불빛이 반사되어 시퍼런 칼날이 번뜩 빛났다. 뾰족한 칼끝은 주름진 피부를 찢고, 빽빽하게 들어찬 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여주인이 헉, 하고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며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이치마츠는 칼날 손잡이가 피부에 닿을 만큼 깊게 칼날을 더 밀어 넣었다. 여주인의 피가 이치마츠의 바지에 온통 튀었다. 이젠 돌이킬 수가 없구나. 이치마츠는 칼을 꽂은 그대로 여주인을 침대에 던져놓고 옷방 문을 통해 도망쳤다. 1층에서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올라오면서 방문을 급하게 열어젖히는 소리가 났다. 이치마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사람을 죽였다. 소를 수십 마리 죽였지만 사람을 죽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처음이라고 해서는 안 되지. 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아니다. 카라마츠를 죽인 사람이 남아있었다.

한 번 손에 피를 묻혔는데 두 번 묻힌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었다. 경찰들은 여주인의 허리에 꽂힌 칼을 보고 바로 이치마츠의 것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비상계단은 바로 부엌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은 사람은 경비와 운전기사다. 하지만 경비는 카라마츠가 죽은 걸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카라마츠를 죽인 그대로 방치해 놓은 것을 봐선 시체를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긴 게 확실했다. 간밤에는 장대비가 한참을 쏟아졌다. 땅에 묻었다간 흙이 씻겨 내려가 시체가 금세 드러날 것이다. 아니면 옥상?

이치마츠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부엌에 혹시 누가 있는 게 아닌지 귀를 기울였다. 조용했다. 경찰들이 부엌 수색은 이미 마친 뒤인 모양이었다. 이치마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 이치마츠는 다시 휘청거렸다. 식당 아줌마는 이미 배에 칼을 맞아 죽어있었다. 입막음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식당 아줌마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소문내는 걸 좋아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을 것이다. 입맛이 썼다. 이치마츠가 식당 아줌마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사람이었다. 

이치마츠는 부엌 선반에서 식칼을 하나 집어 들고 부엌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범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치마츠가 복수를 하기 위해선 경찰보다 먼저 운전기사를 잡아야 했다. 이치마츠는 운전기사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망치로 부숴버리고 눈알을 파버린 다음 가죽을 벗겨내버릴 생각이었다. 초조해졌다. 이치마츠는 고민을 하다 저택의 뒤쪽에 일렬로 늘어선 철쭉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때 이치마츠의 눈앞에 여주인의 전화기가 스쳐지나갔다. 여주인이 전화를 하고 있던 사람은 운전기사였다. 여주인이 이치마츠 군, 하고 그를 부른 순간 이치마츠가 전화선을 뽑아 전화가 끊어졌고, 운전기사는 이치마츠가 여주인을 찾아간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이치마츠가 여주인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입막음을 위해 식당 아줌마를 죽였다. 운전기사가 경찰들이 돌아갈 때까지 얌전히 저택 어딘가에 숨어있을까? 이치마츠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살인사건에, 예전에 말이 많았던 대저택이라면 하루 이틀로 수사가 끝나고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고, 경찰이 이 저택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숨겨둔 시체를 찾아낼 가능성도 올라간다. 어떻게든 이 저택을 탈출하려고 할 것이다. 저택의 담은 굉장히 높다. 운전기사는 체구가 작기 때문에 그걸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고, 저택에 딱 하나 있는 사다리는 지금 이치마츠의 눈 앞, 창고 옆에 놓여있다. 게다가 운전기사가 이 저택 뒤쪽으로 와 사다리를 타고 담을 뛰어넘더라도 저택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위험하다. 죽음을 무릅쓰고 담을 넘으려고 할까?

저택에는 정문과 뒷문, 그리고 쪽문이 있다. 정원 뒤편에 있는 담장이 반쯤 허물어져 넘어갈 수는 있으나 정원 쪽으로 가려면 훤하게 트인 잔디밭을 지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운전기사의 체구가 작다고 하더라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정문도 마찬가지이며 뒷문에는 경찰차가 여러 대 서있었다. 남은 건 쪽문뿐이다. 쪽문 쪽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고 사람만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로 이어져있었다. 쪽문은 평소에 열어두는 문이 아니었다. 식당 아줌마가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오늘 쪽문을 열어놓을 정신은 없었을 것이다. 운전기사에게 마스터키가 있을까? 경찰들은 식당 아줌마가 쪽문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그 쪽에 경찰을 세워두더라도 정문이나 후문보다는 훨씬 적은 수일게 분명했다. , 이치마츠는 헛웃음을 지었다. 운전기사는 경찰들을 끌어내야 했다.

다음 타겟은 경비였다. 이치마츠는 저택 뒤쪽에서 맨 끝 발코니가 난 방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방이었을 텐데도 발코니로 통하는 유리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이치마츠가 방문을 막 나서려고 할 때, 복도에서 독살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나고, 경찰들의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치마츠는 조용히 방 문손잡이를 돌려 잠그고, 커튼을 친 뒤 문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경찰 중 하나가 공범이 있는 걸까요? 하고 물었다. 만약 독살당한 사람이 경찰이라면 저렇게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비가 죽었겠지.

? 호수? 정원에 호수가 있어?”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경부님, 호숫가에서 시체가 나왔다고 합니다.”

호수? 만약 운전기사가 시체를 그곳까지 일부러 나를 정신이 있었다면 이미 담을 넘어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마도, 시체를 호수에 숨기고 시체가 발견되기 전에 도망치려고 했던 건가? 그렇다면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이해가 갔다. 경찰들은 그 시체가 익사체가 아니며, 죽은 지 오래된 시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경부님! 시체가 하나 더 나왔답니다! 꽁꽁 얼었다가 반쯤 녹은 상태라는데요!”

경부인 것 같은 남자가 경악에 차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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