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츠의 방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카라마츠가 할 일이 없긴 하겠지. 여주인은 느즈막히 일어나 자기 방에서 아침 식사를 하곤 늘어져 있다가 주변 친목회 모임에 나가 놀다가 해가 다 진 뒤에나 들어오거나 혹은 한밤중에 돌아오던가 했다. 물론 식당 아줌마가 그에게 여주인의 근황에 대해 자주 늘어놨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카라마츠는 아침을 먹고 난 후엔 이치마츠의 방에 찾아와 그가 읽는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커다란 손잡이 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 상태를 확인하고 아니면 이치마츠는 잘 틀지도 않는 TV를 틀어 시답잖은 쇼 프로그램을 보곤 했다. 그러면서 계속 이치마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저 아이돌이 요새 인기라더라, 저 드라마가 유행이다, 하면서. 이치마츠를 끌고 나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그렇게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고 끌려 다니는 게 딱 질색이었지만 카라마츠는 아무리 이치마츠가 거절하고 밀어내고 은근한 신경질을 부려도 포기하지 않고 이치마츠에게 매달렸다. 그러기를 거의 한 달. 이치마츠는 이제 카라마츠가 하는 말에 제법 딴지를 걸 수 있게 되었다. 이치마츠가 한 마디씩 툭툭 내뱉어도 카라마츠는 큭, 하고 충격 받은 척 하곤 곧 원상복귀 해 또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카라마츠는 한 달 동안 두 사람이 제법 말을 섞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치마츠의 마스크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걸 배려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치마츠의 머릿속에서 뒤틀린 생각이 꿈틀꿈틀 기어 나왔다. 카라마츠의 저 단순한 머릿속에선 자신이 이치마츠의 마스크에 대해 묻지 않는 걸 엄청난 배려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섬세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라고 자만할지도 모른다. 이치마츠가 그의 배려에 감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의 앞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이치마츠의 방에는 거울이 없다. 그의 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에도 거울도 하나 없이 그저 약통과 수건을 담는 서랍만 있을 뿐이었다. 카라마츠는 이미 이치마츠의 마스크 너머를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 그 앞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얼마나 잘생겼는지를 꼼꼼히 뜯어보고 있는 건 이치마츠를 조롱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치마츠는 꾹꾹 눌러 참으며 애써 카라마츠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치마츠는 이 일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선 여주인의 비위를 맞춰야했다.

경비 아저씨가 포커 빌려주셨다!”

카라마츠가 아침부터 포커를 들고 와 신나게 이치마츠의 테이블을 치웠다. 이치마츠는 한참 책을 읽던 중이었다. 카라마츠가 올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기분이 나빴다. 이치마츠는 말없이 테이블 옆에 앉아 카라마츠가 자켓을 벗어 걸어놓고 카드를 섞는 걸 보고 있었다.

간밤에 또 사고가 나던 날의 꿈을 꿨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런 꿈을 꿨다. 아마 이치마츠의 무의식이 그에게 잊지 말라고 계속 반쯤 아문 상처를 헤집어 쑤시는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이치마츠가 마루에서 수박을 먹고 있다. 햇볕이 쨍쨍하고 마당에는 갓 세탁한 이불을 말리고 있어 상쾌한 세탁비누 냄새가 난다. 이치마츠는 느긋하게 수박을 먹으면서 수박씨를 마당에 뱉는다. 담장너머까지 수박씨를 뱉을 수 있을까? 툭하면 히스테리를 부리는 옆집 아줌마가 이치마츠를 잡으러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 멀리서 시뻘겋게 불타는 거대한 뭔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거실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를 미처 부를 틈도 없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이치마츠는 튕겨져 나간다. 고막이 찢어지는듯한 소리에 이치마츠가 울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동안 그것은 다시 콰쾅!!!! 하고 폭발한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크게 불꽃이 일어나면서 집은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파편이 날아간다. 엄마 아빠는, 죽었겠지. 얼굴이 불타는 듯 뜨겁고 아프다. 불이 붙은 게 아닐까. 이치마츠가 엄마아빠의 죽음을 직감하는 순간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깨면 이치마츠는 흉터가 남은 얼굴 한가득 눈물범벅이 돼서 한참 우울한 기분에 젖어든다.

포커를 시작하고 카라마츠가 다시 이런 저런 얘기를 시작하지만 이치마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날이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여주인의 장난감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하고, 버텨야 한다. 역겨워. 이치마츠는 친척집을 전전하고 결국 쫓겨나 거리를 헤매다 도살까지 흘러갔을 때도 몸을 팔지는 않았다.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돈을 받고 섹스를 하는 건 더럽고 비윤리적인 일이다.

너도 얼굴이 반반했으면 저 새끼처럼 몸이나 팔면서 놀고먹지 않았겠어? 일하는 거 싫잖아? 이거 그냥 질투 아냐? 도덕심도 부족하고, 부모가 없어서 그런가? 더러워. 싫어. 저딴 새끼를 부러워하는 나도 싫어. 싫다.

이치마츠는 손에 든 카드를 집어 던지려고 마음먹었다. 저 잘난 얼굴을 상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테이블위에 집어던지면서 내가 여기서 놀고만 있는 줄 아냐?? 난 너같이 노인네랑 떡치는 남창새끼는 아냐 하고 비꼴 생각이었다. 소리를 질러도 위층까지 들리진 않겠지만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이치마츠가 조곤조곤하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상대들은 보통 더 큰 충격을 받는 듯 했다. 이치마츠가 입술을 비틀며 막 입을 열었을 때, 카라마츠가 자기 카드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먼저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말하는 거 좀 민망하지만, 네가 쫓아내지 않아줘서 고마워.”

내가 너를 어떻게 쫓아내겠니. 네 심기를 거슬렀다간 여주인이 오갈 데 없는 날 쫓아내고 말텐데.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너는. 이치마츠는 조금 마음이 풀려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얌전히 다음 카드를 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눈치를 잠깐 살피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왠지 모르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는 거 같아서……. 좀 그래. 이치마츠는 그저 말수가 적을 뿐이지만 그래도 잘 어울려주는데 다른 사람들은 뭐랄까, 겉으로는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느껴져. 가끔 꼬치꼬치 캐물을 때도 있고.”

카라마츠는 보기엔 멍청해 보이지만 제법 눈치가 있었다. 경비나 운전기사와 말을 섞을 일은 없어 몰랐지만 식당 아줌마는 계속해서 카라마츠의 흉을 보곤 했다. 아줌마랑 경비, 운전기사한테 계속해서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게 불쾌하기 짝이 없으며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이치마츠 군은 성실한 사람이니까 카라마츠 같은 애들하고 너무 어울려서 물들지 말라고. 이치마츠는 늘 하던 데로 흘려들었다.

여사님도 말이지, 비서 일을 가르쳐주시겠다고 고용하신 건데 실질적인 업무 같은 건 하나도 얘기 안 해주시고 그냥 쇼핑하는데 따라가서 짐이나 들고 있게 하고, 뭐 그런다니까.”

카라마츠가 눈에 띄게 축 처져서 양손으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호스트라던가, 뭐 그런 일 하던 거 아니었어?”

이치마츠 본인도 모르게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아차,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뱉은 말은 도로 담을 수가 없다. 카라마츠는 호스트?! 하고 놀라더니 곧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좀 멋있긴 하지. 설마 호스트라고 생각할 줄은 몰랐네. 나는 저 북쪽 촌동네에서 도시락 배달이나 하다가 왔는걸. 안개가 엄청 낀 날 실수로 여사님 차를 박아서 어떻게든 배상하겠다고 빌었더니 옆에서 일하면서 갚으라고 상냥하게 거둬주셨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카라마츠가 씩 웃으면서 다음 카드를 내며 사실 아는 것도 없고 하니까 일 시킬 수 있는 것도 없으신 거겠지, 하고 중얼거렸다. 이치마츠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카라마츠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근 한 달간 봐온 카라마츠는 허세를 부리면서 안 어울리게 터프한 척을 하곤 했지만 저렇게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없는 사연을 만들어 내 변명을 할 인물은 아니었다. 이치마츠의 앞에서 그렇게까지 체면을 차리지도 않았고. 여주인은 새로운 놀이를 하고 싶은 건가? 상냥한 고용주가 되어 어리고 순수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놀이?

그래도 다음에 부모님 뵈러 갈 때 일자리 생겼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야. 엄마랑 아빠 모두 나 노는 것만 좋아한다고 엄청 걱정했었거든.”

카라마츠가 카드를 잠깐 테이블에 엎어두고 TV위에서 물병을 집어 들어 마셨다. 이치마츠는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워 그저 카라마츠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 제법 단단해졌다고 생각한 이치마츠의 마음이 조금 아팠다. 이치마츠는 자기 자신을 가여워하기 바빠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일이 잘 없었다.

, 얘기한적 없나. 나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나 혼자야.”

카라마츠가 다시 테이블 앞에 앉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는 병 오래 앓다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교통사고로. 카라마츠가 남의 일처럼 고개를 저으며 다시 카드를 집어 들었다.

가끔 형제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이치마츠는 목에 뜨끈한 게 꽉 들어차는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아팠다. 열 군데는 전전한 친척집, 길거리, 경찰서, 마지막으로 이치마츠가 터를 잡았던 도살장, 그 어느 곳에서도 이치마츠에게 타인 이상으로 가깝게 대해주던 사람은 없었다. 먼지 가득한 골방이든 은근한 피 냄새가 빠지질 않는 도살장 숙소에서든 이치마츠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사람이 그리웠다. 형제가 있었으면 했다. 나랑 닮은 얼굴을 한 형제가, 추운 잠자리를 함께 덥혀주고 외로워 미칠 때 곁에서 걱정해주고, 말을 걸어주고 달래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치마츠도 포기하고 점점 단단해질 수 있었지만, 그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혼자 슬퍼해야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이치마츠는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오랜만이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차례를 기다리다 이치마츠가 약하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고개를 숙이자 깜짝 놀라 카드를 내려놓고 이치마츠의 곁에 다가가 한쪽 팔로 어깨를 끌어안았다.

우는 거야? 내가 너무 우울한 얘기를 했나?”

이치마츠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카라마츠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치마츠를 제대로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이치마츠는 어색해 몸이 굳었지만 카라마츠는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이치마츠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부모님 돌아가신지 꽤 됐으니까 그렇게 불쌍해하지 않아도 돼. 티 안 났지? 아빠마저 돌아가셨을 땐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뭐……. 지금은 괜찮으니까.”

괜찮지 않잖아.”

이치마츠가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괜찮을 리가 없다. 카라마츠처럼 관심 받고 싶어 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어 하고 멍청하고 착하게 구는 놈이 혼자라는 게 괜찮을 리가 없다. 허세부리는거냐 너는. 카라마츠는 말없이 이치마츠가 진정할 때까지 이치마츠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맨날 툴툴거려도 착하구나. 고마워.”

방금 전까지 너를 남창이라고 생각했는걸. 이치마츠는 마지막 말을 삼켰다.

카라마츠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카드를 정리해 가죽 자켓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치마츠는 소파에 기대어 말없이 카라마츠가 하는 걸 지켜보았다.

포커는 영 재미가 없네. 내일은 TV나 볼까?”

이치마츠는 어깨를 한번 으쓱 했다. 카라마츠는 씩 웃고, 그럼 내일 보자고! 하고 방 문을 열고 나갔다. 이치마츠는 문이 완전히 닫기는 소리가 나서야 마스크를 벗었다. 아까 흘린 눈물 때문에 마스크 안이 조금 찐득거리는 것 같아 불쾌하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스크 많이 답답하면 벗어놔도 돼.”

이치마츠가 뭐라 대답할 겨를도 없이 카라마츠의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이치마츠는 마스크를 휴지로 잘 닦아서 문 앞에 걸어두고 고민했다. 그날 저녁 부엌으로 올라가 저녁식사를 받아오고, 자기 방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밤에 잠들 때까지 고민했다. 지금 쓰고 있는 마스크 이전엔 커다랗고 두꺼운 방한용 마스크였다. 그 전엔 싸구려 워머를 눈 바로 밑에까지 바짝 올려서 썼고, 병원에서는 눈만 내놓고 붕대를 둘둘 감고 있었다.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맨 얼굴을 보여줄 용기는 없었다. 간혹 호기심 많은 친척이나 경찰, 고용주들이 이치마츠에게 맨 얼굴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때가 있었다. 그럼 이치마츠는 이를 악물고 마스크를 내렸고, 그들의 얼굴에 점점 번져나가는 혐오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치마츠 자신도 자신의 맨 얼굴을 본지 꽤 되었다. 이치마츠는 잠자리에 누워 자신의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왼 얼굴 이마에서부터 거의 턱까지 녹아내린 양초처럼 우툴두툴한 흉터가 남았다. 그날 그의 집에 불타는 헬기가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날 그 지역에서 하던 군사 훈련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부모님이 다른 마을에, 최소한 옆집을 샀었더라면, 이치마츠는 조금 더 상냥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이치마츠는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카라마츠가 찾아왔다.

만화책 가져왔어! 만화책 잘 안보지? 누가 놓고 간 건지는 몰라도 서재에 있어서 다 들고 왔어!”

카라마츠는 들뜬 목소리로 문을 두드렸다. 이치마츠는 문 앞에서 망설이다 결국 마스크를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끼이이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길었다. 다리가 약하게 떨렸다. 아예 다른 사람들에게 맨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를 싫어하게 된다고 해도 뭐 달라질 일은 없겠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었지. 그래도 괜찮아. 이치마츠는 이 일이 좋았고, 이 방도 제법 마음에 들었고, 이대로 계속 혼자 살아도 상관없고, 언젠간 카라마츠도 여주인에게 버려져서 집을 떠날 거고.

표정 안 좋네. 이거 본 적 있어? 식당 이모님도 모른다고 하고. 누가 갖다 둔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1권부터 있으니까 한번 보자!”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어깨를 툭툭 치고 들어가 테이블에 만화책을 올려놓고-정말 몇 다스는 되보이는 양이었다소파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가만히 서 있다가 카라마츠의 발쪽에 앉아 소파에 기대 만화책의 1권을 찾아 집어 들었다. 싸구려 성인만화였다. 표지에 얼굴에 빨갛게 홍조가 오른 긴 생머리의 여자가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면서 우- 하고 입을 내밀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두 사람 다 아무 말이 없었다. 작은 방 안에는 스륵하고 만화책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울렸다.

어렸을 때 집에 사고가 났어.”

갑자기 집에 고장 난 헬기가 추락해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병원에 한참 있다가 이모 집으로 갔는데 키워주기 힘들다 그래서.”

삼촌집도 안 된다 그러고. 그렇게 몇 군데를 돌다가 그냥 집을 나갔어.”

귀엽지도 않는 어린애를 일부러 맡아 키우는 건 나도 싫을 거라고 생각해.”

어릴 때부터 귀염성이 없어서.”

물건도 훔치고, 쓰레기통도 뒤지고 그러다 경찰서에서 좀 있기도 하고.”

도살장에서 소를 잡았어.”

직업이긴 해도 좀불편해서.”

여기서 지내게 됐어. 이치마츠가 중얼거렸다.

나도 그래.”

카라마츠가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이치마츠는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권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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