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시카라] 별 내용은 없는 닥터 쥬시마츠와 환자 카라마츠 完
쥬시마츠는 샛노란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어두컴컴한 거리에 옅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트럭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바퀴 주변이나 트럭 뒤쪽에 흙먼지가 좀 묻어있긴 했지만 꽤 현실감이 없는 광경이었다. 쥬시마츠는 도로 한가운데에 트럭을 세우고 카라마츠에게 달려와 카라마츠를 번쩍 들어 카라마츠가 뭐라고 말리기도 전에 조수석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채워주었다.
“왠지 닥터는 차 같은 거 타지 않고 날아다니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한겨울 바깥에 있었던 탓인지 트럭 안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웠다. 카라마츠는 몸을 바짝 웅크리고 덜덜 떨었다. 쥬시마츠는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가며 히터를 틀고 환기를 시켰다.
“저기, 카라마츠 씨에겐 말을 못했지만.”
쥬시마츠가 차 핸들을 붙잡고 머뭇거렸다. 카라마츠는 조금이라도 덜 차가운 부분을 찾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고개를 돌렸다.
“카라마츠 씨도 잘 모르고 저를 찾아오신 것 같더라고요.”
“네?”
쥬시마츠는 뭐라고 말할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핸들에 붙어 있는 해바라기를 꾹 눌렀다. 꼭 소리 나는 인형처럼 해바라기가 납작하게 눌렸다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면서 뾰로롱 하고 새소리를 흘렸다.
“벌써 세시 이십분이네요.”
쥬시마츠가 핸들을 단단히 붙잡고 엑셀을 밟았다. 차 엔진소리가 낮게 깔렸다. 어두운 트럭 안으로 가로등 불빛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차 속도가 점점 빨라져 카라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차 문 위쪽에 붙은 손잡이를 잡았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를 한번 돌아보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여기서 동쪽으로 한 두어 시간 달리면 동생이 돌보는 작업장이 나와요. 햇살 농축액은 해가 하늘에 떠 있을 때면 언제든지 짜낼 수 있지만, 아, 잠시 만요.”
쥬시마츠가 말을 멈추고 다시 해바라기를 두 번 꾹꾹 눌렀다. 그러자 이번엔 야옹,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다행이다. 오늘은 날이 맑다네요! 카라마츠 씨, 이제 병의 원인을 알았고 또 증상도 심각하니까 이제 한 번에 해치워버립시다!”
“해치워요?”
“사실 카라마츠 씨가 지금까지 맞아 왔던 농축액은 100퍼센트 농축액을 시냇물 소리로 희석시킨거에요. 맞을 때 뜨겁지 않았어요?”
“그러긴 했는데 심하진 않았어요.”
쥬시마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햇살 원액은 그것보다 훨씬 뜨겁고,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거에요.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방법은 그것뿐이에요. 저는 카라마츠 씨가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의 저주로 그렇게 얼어붙는 줄만 알았는데, 카라마츠 씨가 직접 빈 소원이라 풀 수 있는 방법이 얼마 없어요…….”
쥬시마츠가 말문을 흐렸다. 그렇구나……. 카라마츠는 도로 옆으로 휙휙 지나가는 소나무와 잣나무 숲을 멍하니 보았다. 카라마츠가 멍청한 짓을 한 걸까?
“그렇지만 카라마츠 씨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 소원이 실제로 이뤄지려면, 온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바래야만 실현되는거에요. 카라마츠 씨는 착하고, 상냥하고, 다정하니까.”
닥터는 이제 마음도 읽을 수 있는 건가. 카라마츠가 고개를 돌리자 쥬시마츠는 핸들을 양손으로 꽉 붙잡고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온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닥터도 상냥해요.”
카라마츠가 씨익 웃었다. 쥬시마츠는 눈도 돌리지 않았으면서 카라마츠가 웃는 걸 봤는지 따라서 환하게 웃었다.
“사실 말은 못했지만, 카라마츠 씨는 제 첫 손님이에요.”
“병원이요?”
“제가 치료사가 되고 처음으로 받은 손님이요!”
“치료사요? 의사가 아니라요?”
“음, 둘 다 닥터지만 조금 달라요.”
쥬시마츠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시험에 통과하고 병원을 차리려고 했는데 사기를 당해서 그런 외진 건물 옥상에 병원을 짓게 되어버렸어요.”
“경찰에 신고는 하셨어요?”
“하긴 했는데, 벌써 바다 밑으로 들어가 버려서 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쥬시마츠가 한숨을 푹 쉬었다. 차는 어느새 낯선 들판 위를 달리고 있었다. 작고 낡은 집들이 한 채씩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고,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운하가 그들 곁에서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손님은 오지도 않고, 혼자 있으려니까 심심한데 나가서 놀았다가 그 새에 손님이 오면 어쩌나 싶어서 혼자 병원에서 야구만 하고 있었는데, 카라마츠 씨가 온 거에요.”
“그 안에서 야구가 돼요? 유리병은요?”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며 카라마츠를 한번 돌아보았다.
“카라마츠 씨가 첫 손님이라서 기뻤어요. 사실 치료사로서 모든 손님을 공평하게 소중하게 대해야 된다고 배웠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카라마츠 씨라서 더 열심히, 행복하게 치료를 할 수가 있었고요.”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대답도 듣지 않고 음악을 틀었다. 차 안에 은은한 노랫소리가 흘렀다. 가사는 없었고, 여자가 하프 소리에 맞춰 허밍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자요.”
카라마츠는 눈을 감고 조수석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하다가 카라마츠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카라마츠 씨, 도착 했어요!”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안전벨트를 풀고 조심스럽게 카라마츠를 흔들어 깨웠다. 어느 새 차는 멈춰있었고, 하늘이 연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카라마츠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무거울 텐데 내려주세요. 걸어가겠습니다.”
카라마츠가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지만 쥬시마츠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라마츠를 안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저어기, 저 커다란 쟁반같은 거 보여요?”
카라마츠가 뻣뻣해진 고개를 조금 돌리자 은빛 바탕에 수박 무늬 같은 게 그려진 거대한 쟁반이 들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보였다. 쥬시마츠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 밑에서 첫 햇살을 짜낼거에요. 그리고 그걸 카라마츠 씨의 심장 위로 떨어뜨리는 거죠.”
“그럼 이제 낫는 건가요?”
“…그럴거에요. 아쉽지만......”
“왜 아쉬워요?”
쥬시마츠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카라마츠 씨가 다 나아버리면 이제 병원에도 오지 않을 거고, 그럼 또 저 혼자 남아야 하는 거니까요...... 아 물론, 카라마츠 씨가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건 좋아요!”
쥬시마츠가 말을 황급히 덧붙였다.
“놀러갈게요.”
카라마츠가 쥬시마츠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려 안기면서 말했다.
“병원 문에 부재중 팻말 걸어놓고 나가서 야구도 하고, 우리 놀이공원에도 놀러오세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직원할인 받아서 표도 싸게 살 수 있어요.”
쥬시마츠가 킥킥거리며 웃곤 카라마츠를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
“닥터?”
“금방 도착할거에요!”
쥬시마츠는 카라마츠의 허리를 단단히 잡고 거의 나는 것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의 옷을 꽉 붙잡고 쥬시마츠의 트럭이 거의 샛노란 점처럼 멀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쥬시마츠랑 야구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쥬시마츠가 공 던지는 걸 받으면 카라마츠의 손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카라마츠는 괜한 말을 했다 싶어 후회했다.
어느새 그 은쟁반 앞에 도착했다. 쥬시마츠는 멀미를 하느라 휘청거리는 카라마츠를 바닥에 앉혀놓고, 은쟁반 밑에 아주 조그만 입구로 다가가 입구 옆에 놓인 화분 밑을 뒤적거렸다. 화분 밑을 뒤졌다가, 창틀 구석구석으로 손으로 쓸어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카라마츠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와 거의 카라마츠만 한 바위를 번쩍 들어 그 밑에서 조그만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열쇠로 문을 열었다.
“가시죠!”
쥬시마츠가 자기 옷에 손을 슥슥 닦고 카라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라마츠는 그 손을 잡고, 어두컴컴한 실내로 들어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쥬시마츠는 길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에게 바짝 달라붙어 걸었다. 저 멀리에서 천장에 구멍이 뚫린 건지 빛이 내려오는 곳이 있었다.
“멀어서 힘들지는 않아요?”
“아뇨, 아까부터 계속 안아주셔서 괜찮아요.”
쥬시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꽉 붙잡았다.
“100퍼센트 원액을 담을 수 있는 병은 없어요. 그래서 아마 카라마츠 씨가 저 밑에 누워서 심장에 바로 햇살 원액을 맞아야 할 거에요. 제가 정말 조심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역시 쥬시마츠가 말하는 햇살 농축액이라는 건 선샤인이 맞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받아온 쥬시마츠가 놔준 햇살 농축액이나 오일같은 건 다 효과가 있었으니까. 첫 환자라고 해도 쥬시마츠는 꽤 능력이 있었다.
“걱정 안 해요.”
쥬시마츠는 구석에서 간이침대를 끌고 와 카라마츠를 눕혔다. 카라마츠는 윗옷을 벗어 얌전히 밑에 내려놓고 자리에 누웠다. 공기가 차가워 팔에 소름이 돋았다. 쥬시마츠는 꼭 치과에서 볼법한 작업대에 앉아 버튼을 이것저것 눌렀고, 그러자 위이이잉 하는 소리가 나더니 천장에 나 있던 구멍이 정말 바늘만 하게 줄어들었다. 쥬시마츠는 카라마츠가 누운 침대를 이리 저리 움직여 그 구멍이 정확히 카라마츠의 심장 위에 닿도록 맞췄다.
“이제 움직이면 안돼요!”
쥬시마츠가 한껏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카라마츠는 덩달아 겁이 났다.
“혹시 치료를 받다가 죽을 수도 있나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 원액을 맞고 또 한참을 요양해야 하구요.”
카라마츠는 바지 주머니를 뒤적여 지갑을 꺼냈다.
“정말 만에 하나 제가 죽으면 부탁드릴게요. 나중에 치료비는 이 카드로 결제하면 되고요, 여기 신분증에 적힌 주소가 제 집입니다. 그리고 이건 오소마츠 형 전화번호니까 여기로 전화해서 제가 죽었다고 얘기해주세요.”
쥬시마츠가 지갑을 받아들고 두 손으로 꼭 쥐었다가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카라마츠 씨.”
“네?”
“제가 카라마츠 씨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떨 거 같아요?”
카라마츠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한참 고민했다. 쥬시마츠도 좋지만, 글쎄,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인가? 두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만약 이게 고백이라면,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라마츠가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는 게 예의일 것이었다.
“나중에 대답해도 될까요?”
쥬시마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쥬시마츠가 천장에 달린 길쭉한 레버를 당기자 천장이 쿵쿵 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쟁반으로 햇빛을 모을 거에요. 쟁반이 꼭 우산을 접는 것처럼 점점 오므라들 거고, 그럼 안에서 햇살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툭툭 튀어오를거에요. 그걸 쟁반이 꾹꾹 눌러서 짜내면, 그게 햇살 농축액이 됩니다.”
천장에서 뭔가 톡톡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배 위에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천장에 뚫린 구멍을 올려다봤다. 쥬시마츠가 아차, 하더니 작업대 밑에서 웃기게 생긴 선글라스를 두 개 꺼내 하나를 카라마츠에게 씌워주고 남은 하나는 자기가 썼다.
“꼭 쓰고 있어야 돼요! 안 그러면 눈이 타버려요!”
쥬시마츠는 초조하게 작업대 앞에 앉아 손을 꼼지락 거리다가 천장에 달린 레버를 조금씩 조금씩 더 뒤로 당기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꼭 콩이나 탁구공이 떨어지는 것처럼 톡톡거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꼭 팝콘을 튀기는 것처럼 펑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 난 틈 사이로 모래알 같은 게 스르륵 떨어졌다. 쥬시마츠가 카라마츠를 업고 옥상에서 떨어졌던 게 떠올랐다. 카라마츠는 화들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쥬시마츠를 소리쳐 불렀다.
“닥터!”
“네?”
“아, 제가 당장 대답할 수는 없지만,”
“뭐를요?”
“제가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데이트부터 시작해도 될까요?”
쥬시마츠가 레버를 놓고 카라마츠에게 다가와 카라마츠의 손을 꼭 잡았다.
“데이트면, 같이 카라마츠 씨가 일하는 놀이공원으로 가는거에요?”
“가서 동물원 구경도 하고, 솜사탕도 먹고, 놀이기구도 타는 건데, 닥터가 재밌어 할지는 모르겠어요.”
“아뇨, 재밌을거에요.”
쥬시마츠가 활짝 웃으면서 카라마츠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리곤 잽싸게 손을 놓고 달려가 레버를 잡아당겼다. 천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 카라마츠는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햇살이라는 건 쉽게 짜낼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카라마츠는 눈을 꼭 감고 샛노란 옥수수 알갱이 같은 햇살이 점점 커지면서 우산처럼 오므라든 쟁반 안을 이리저리 튀어다는 것을 상상했다. 쥬시마츠가 낑낑거리면서 레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쥬시마츠는 제법 힘이 센 것 같은데 저렇게 힘들어할 정도라니. 카라마츠는 조금 겁이 났다. 펑펑 터지는 소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이젠 철썩 철썩 하고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햇살이 녹아 흐르고 있는 건가? 쥬시마츠가 놔주던 햇살 농축액은 황금빛이 정말 예뻤는데, 원액도 직접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카라마츠는 못내 아쉬웠다. 그때 쥬시마츠가 소리를 질렀다.
“카라마츠 씨!”
“네?”
“이제 진짜 꼼짝하면 안돼요!”
원액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배 위에 올린 손이 하얗게 되도록 꼭 잡았다. 그 때 바늘로 가슴을 콕 찌른 것처럼 따가움이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놀라 눈을 번쩍 떴고, 눈앞에 꼭 유리로 만든 기다란 바늘 같은 게 카라마츠의 가슴 위로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봤다. 빛이 카라마츠의 심장 안으로 파고들고 있는 걸까? 카라마츠의 심장이 꼭 불에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파왔다. 카라마츠는 신음 소리를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으면 돼요!”
쥬시마츠가 멀리서 소리쳤다. 카라마츠의 심장에서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빛이 흘러가고 있었다. 뜨겁고, 아프고, 따끔거리면서 카라마츠는 꼭 전신이 활활 타는 것만 같았다. 기절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온 몸의 신경이 바짝 일어서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을. 카라마츠는 뇌까지 녹아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금붕어와 팬더, 기린 얘기를 하던 아이를 떠올렸다.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아이를 찾아봐야겠다. 아이가 부모를 찾았을까. 부모는 아이를 찾으려고 했을까. 쥬시마츠가 놀이기구를 타면 재밌어 할까? 순간 펑, 하고 카라마츠의 심장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터졌다고 생각했다. 카라마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집이었다. 카라마츠는 멍하니 이불을 덮고 천장을 보다가 심장에 손을 올렸다. 더 이상 춥거나 떨리거나 하는 증상은 없었다. 심장도 멀쩡하게 잘 뛰고 있었고,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온몸이 개운했다. 꼭 햇살 농축액을 막 맞았을 때처럼. TV를 켜보니 월요일 아침이었다. 주말 내내 잠들어있던 걸까? 카라마츠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침대에서 카라마츠의 지갑이 툭 떨어졌다. 아마 쥬시마츠가 여기까지 카라마츠를 데려다 준 모양이었다. 카라마츠는 지갑을 주워들어 이러 저리 내용물을 살펴보고, 또 침대 주변이나 탁자 위 같이 눈에 뜨이는 곳을 전부 훑어보았지만 쥬시마츠가 남겼을법한 쪽지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하나 낯선 물건이 있었다. 카라마츠는 식탁 위에 놓여있는 해바라기를 들어 그 가운데를 꾹 눌렀다. 그러자 뾰롱, 하고 새 소리가 들렸다.
“뭐? 카라마츠, 병원은 길 동쪽이 아니라 서쪽이라고! 대체 겁도 없이 어떻게 그런 데를 간 거야?”
오소마츠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카라마츠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다 나았는걸?”
“햇살 농축액을 맞아서? 아니 그게 마약이라던가 아니면 불법 시술일수도 있는 거 아냐? 뭘 믿고 몸을 맡긴 거야? 병원이 수상하다 싶으면 다른 병원을 찾아가봐야지!”
카라마츠는 머쓱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카라마츠는 그닥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소마츠의 귀에는 영 터무니없는 얘기로 들리는 것 같았다. 오소마츠가 혹시 사기를 당한 게 아니냐며 카드 내역을 살펴보라고 했지만 쥬시마츠의 병원에서 긁은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돈이 안 나갔으면 뭐 다행이긴 한데……. 혹시 카라마츠 신장같은 거 뺏긴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면 흉터가 남아있겠지?”
사실 흉터가 남긴 남았다. 카라마츠가 아침에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자 아마 그 바늘이 닿았을 법한 자리에 황금색으로 작은 나무 가지 모양의 흉터가 남아있었다. 카라마츠는 흉터를 손으로 살살 문질러 보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쥬시마츠에게 물어보면 설명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오소마츠는 극구 말렸다. 운 좋게도 그런 시술을 받고 몸이 나았다고 하더라도, 다시 찾아갈만한 곳은 아니며 의심도 좀 해보고 살아야 한다고. 카라마츠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쥬시마츠에게 데이트부터 시작하는 게 어떠냐고 했었는데, 그리고 쥬시마츠는 나쁜 사람같이 보이지도 않았고.
“실례합니다!”
누군가 분실물센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손님인가? 카라마츠는 그날 발견된 분실물을 적어두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카라마츠의 책상 위에 정말 거대한, 꼭 꽃집에서 파는 모든 꽃들을 있는 힘껏 묶어 놓은 것 같은 알록달록한 꽃다발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달고 새콤한 꽃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카라마츠 씨랑 동물원 구경하러 왔는데, 잠깐 괜찮을까요!”
오소마츠는 옆에서 꽃다발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카라마츠의 어깨를 잡았다.
“누구야?”
카라마츠는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