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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라] 네임버스 썰

riverside0210 2016. 1. 2. 00:47

글자가 완전히 말을 표현할 수 있게 된 후로 간혹 몸에 사람 이름을 단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건 남자 이름일 때도 있었고, 여자 이름일 때도 있었고, 아이가 태어난 곳에선 쓰지 않는 언어로 된 글자일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일지 한참 고민을 하다 이는 신이 아이에게 내려주신 이름이라 생각하고 아이에게 그 이름을 지어주었다. 오랜 전통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이름에 얽매이는 걸 촌스럽게 여기기 시작했고 다른 이름을 붙여주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사실 몸에 보이는 곳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마츠요가 여섯 쌍둥이를 낳았다. 그런데 여섯 명이 일란성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단 두 명만 몸에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발바닥에, 하나는 손바닥에. 이상하네. 왜 그 두 명만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걸까. 마츠요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두 사람이 좀 더 특별한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라 믿고 한평생 서로를 의지하는 좋은 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바꾸어 지어주었다.

 

토도마츠, 몸에 이름 새겨져 있는 거 없지?”

토도마츠가 갤러리를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 그게 왜?”

요새 도는 소문인데, 자기 몸에 새겨진 이름이 사실 운명의 상대라나 봐. 그런 사람들을 찾아주는 사이트도 생겼어. 토도마츠는 이름이 없다니 아쉽네.”

글쎄. 토도마츠는 피식 웃고 다시 핸드폰 액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형들은 서로의 이름을 몸에 새기고 있었지만 그다지 잘 맞는 구석도 없었고, 친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것에 가까웠다. 사실 이름이라는 게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바꿔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 둘이 운명의 상대라면 좀 이상하지 않아?

 

아들 여섯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초등학교 때까지야 어머니가 아들들을 통제해보겠다고 나섰지만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후엔 제발 범죄만 저지르지 말고 고등학교까진 졸업해달라며 방목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담배는 집 밖에서. 이건 어머니의 마지막 보루였고, 이치마츠는 어쩔 수 없이 집 옆 골목에서 담배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이었다. 집에 남아있는 형제들과 부모님은 이미 잠이 들었을 때였다.

그런데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시간에? 혹시 형제들이 야식이라도 만드는 걸까? 이치마츠는 잠깐 고민하다 조용히 부엌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뜻밖에도 카라마츠가 잠옷차림으로 가스레인지 앞에 서 철사를 달구고 있었다. 저걸로 뭘 하려고? 이치마츠는 인기척을 내지 않고 조금 뒤로 물러나 어둠속에 몸을 숨겼다. 카라마츠는 나무젓가락으로 철사를 집어 불에 한참 달구다 부엌 바닥에 앉아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렸다. . 이치마츠가 속으로 웃었다. 카라마츠는 손을 벌벌 떨면서 빨갛게 달군 철사를 조심스럽게 발바닥 위로 가져다 댔다가, , 하고 철사를 떨어뜨렸다. 그 정도 각오로 뭘 하겠다고. 이치마츠가 부엌창문을 열었다.

이치마츠!”

카라마츠가 당황해 아직 뜨거워 보이는 철사와 나무젓가락을 급히 주워 등 뒤로 숨겼다.

봤어.”

이치마츠는 부엌 불을 끄고, 카라마츠의 앞으로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 카라마츠와 눈을 마주쳤다. 카라마츠의 눈이 있는 힘껏 커다랗게 뜨여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걸로 될 것 같아?”

아니, 이치마츠, 형이 설명할 수 있어.”

소문 들었구나.”

카라마츠가 이를 악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해도 얼굴 표정이 일그러져서, 꼭 이치마츠가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 눈에 띄지도 않는 발바닥인데, 그걸 왜 이 한밤중에 남모르게 지우려고 하겠어. 그치?”

이치마츠가 웃으며 마스크를 내렸다. 카라마츠가 계속 고개를 저으며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이치마츠는 기분이 좋아 카라마츠의 조잡한 변명 따윈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지우고 싶은 사람은 나지. 나는 손바닥에 이름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툭하면 그걸 내 이름으로 오해한다고. 기분 나쁜 쪽은 오히려 나잖아.”

기분이 나쁘다는 말에 카라마츠가 고개를 젓는 것도 멈추고 멍하니 이치마츠의 눈을 바라봤다. 상처받은 척 하지 마. 네가 잘못한 거잖아.

네가 날 좋아하는 게 이름 탓일 것 같아?”

아냐……. 그런 거 아냐…….”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피해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옷자락을 잡아 당겨 도로 자리에 앉혔다.

좋은 핑계야. 그저 내 이름이 네 몸에 있다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겠지.”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어깨를 퍽 밀치고 뛰쳐나갔다. 카라마츠가 부엌에서 거실을 가로질러 형제들이 있는 방문을 잡았을 때,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채를 잡았다.

날 위해서 해줘. 카라마츠.”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머리채를 힘껏 휘어잡고 카라마츠의 귓가에 속삭였다. 카라마츠가 움찔거리며 이치마츠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손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가 않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머리채를 놓고, 카라마츠의 잠옷 소매를 잡아 다시 부엌으로 끌고 갔다. 카라마츠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어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지을 표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힘이 센 카라마츠가 그가 이끄는 데로 힘없이 끌려온다는 게 즐거웠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내가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는데서 오는 감미로운 만족감. 늘 짐작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받는다는 건 더 짜릿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부엌 바닥으로 밀치고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몇 글자 안 되니까, 이정도면 되지 않을까?”

이치마츠는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고 끝에 불을 붙였다. 어두운 부엌 한가운데서 담뱃불이 새빨갛게 빛났다.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카라마츠의 얼굴이 반만 드러났다. 이치마츠와 똑같이 생긴 얼굴이었고, 보기 좋은 표정이었다. 이치마츠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카라마츠의 얼굴을 감상했다.

모를 줄 알았어? 나 의식하는 거 정말 기분 더러웠는데. 옷 갈아입을 때나 목욕탕 갈 때 눈도 못 마주치지. 잘 때는 토도마츠한테 바짝 붙어서 자고. 내가 없으면 내 물건들 뒤적거리고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거 아는 척 하면서 말 붙이고. 티 나게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하는 거. 내가 네 형제라는 자각은 있어? 다른 형제들이 학교에서 소문 다 들었을 텐데 왜 얘기를 안했겠어? 네가 그렇게 티 나게 구니까 다들 말도 못 꺼낸 거 아냐.”

카라마츠가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숙였다. 이정도로 울면 안 되잖아. 나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는데.

나보고 발정하지? 내가 따먹어줬으면 좋겠어? , 아님 네가 박는 쪽이야? 내생각하면서 자위하지?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고 예쁘다고 하면서 키스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씨발, 더러워.”

이치마츠가 담뱃재를 싱크대에 툭툭 털고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숙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 깨우지 않게 적당히 해.”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왼쪽 발목을 잡아 달빛 아래로 이끌었다. 발바닥 한 구석에 희미하게, 이치마츠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한때는 이 이름이 우릴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어. 그걸 네가 망친거야.”

이치마츠가 망설임도 없이 카라마츠의 발바닥을 담뱃불로 지졌다.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나고, 카라마츠가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았다. 한순간이었다. 이치마츠는 담배를 싱크대 바닥으로 던졌다. 고여 있던 물기에 칙, 하고 담배가 꺼졌다.

 

그 후로 카라마츠는 조금 달라졌다. 텅 빈 것 같기도 했고,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치마츠를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대하지도 않았고, 학교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고 형제들에게 수줍게 고백을 하기도 했다. 너 게이잖아. 이치마츠는 목 끝까지 말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카라마츠가 게이인걸 이치마츠가 어떻게 알았냐고 형제들이 묻는다면 이치마츠는 대답할 수가 없었기에, 이치마츠는 멀리서 카라마츠가 평범하게 생긴 여자애와 등하교를 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서 맨 살을 태울 각오도 했으면서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가 있나. 아니, 나를 정말 좋아하긴 했던 건가. 더 이상 카라마츠가 거북하지 않아 이치마츠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했다. 뭔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를 의심한 적이 없는 팔다리가 하나 잘려나간 기분.

그리고 한참 후에, 이치마츠는 스스로 손바닥에 새겨진 이름을 태웠다. 하지만 그걸로 해결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이름은 그저 이름일뿐이라는 걸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