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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카라/이치카라] 파카카라 썰 3

riverside0210 2015. 12. 27. 23:32

그날 저녁은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성대하게 저녁식사를 차렸습니다. 카라마츠도, 시어머니라고 부를까요. 그게 헷갈리지 않고 좋을 것 같네요. 카라마츠도 시어머니를 도우려고 했지만 시어머니는 자기가 다 하겠다고 카라마츠를 부엌에서 내보내고 두 형제를 불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부엌을 나왔지만, 저택은 하도 넓고 복도가 이리 저리 꺾여있던터라 카라마츠는 어디에 형제들이 있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카라마츠는 일단 그가 시어머니와 이치마츠를 만났던 거실로 가서, 이치마츠가 사라진 복도 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복도는 중간 중간에 불이 켜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꼭 옛날 드라큘라 영화에 나올법한 오래된 집이었어요. 벽에는 그림에 문외한인 카라마츠가 보기에도 대단한 작품들이 걸려있었고, 조각품이 전시되어있었죠. 카라마츠는 하나하나를 감상하면서 복도를 걷다가, 2층 복도 끝에서 누군가 말다툼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구나 싶어 카라마츠는 다가가 문손잡이를 잡았죠. 그 순간 말다툼하는 소리가 딱 멈추고, 오소마츠가 문을 열었습니다. 오소마츠는 웃으며 카라마츠의 이마에 살짝 입 맞추고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카라마츠의 손을 떼어냈습니다. 동생이랑 잠깐만 얘기하다가 갈게. 하고. 문 너머에서 이치마츠가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카라마츠는 어쩔 수 없이 얼른 얘기를 끝내고 내려오라고 하고 부엌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이 남자는 자기가 영화에서 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런 스토리의 영화가 뭐가 있을까. 쵸로마츠도 영화를 꽤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딱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카라마츠와 그의 시어머니가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오소마츠와 이치마츠가 식당으로 내려왔습니다. 주먹다짐은 하지 않았는지 누가 다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어요. 오소마츠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웃으며 카라마츠의 곁에 앉았고,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치마츠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대충 끼적거리기만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카라마츠는 마음이 불편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볼 사람인데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싫어 오소마츠와 다투기까지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식사를 마치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자기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오소마츠의 방은 3층 끝에 있어 저택을 둘러싼 숲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어요. 카라마츠가 창밖을 내다보니 집 뒤편에 양봉장이 있었습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취미로 양봉을 한다고, 오소마츠가 고개를 저었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끌어안고 날 믿고 따라와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자고. 카라마츠와 아기가 자기에게 와줘서 정말 기쁘다고 속삭였습니다. 카라마츠는 행복했죠. 결혼식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어쩌면 둘이서 결혼식 비스무리한 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한창 나이의 연인답게 두 사람은 한참 사랑을 속삭이다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죠. 그리고 카라마츠는 다시 악몽을 꿨습니다. 이번에도 세 사람이 꿈에 나왔어요. 오소마츠를 닮은 아이가 뛰어다니고, 갓난아기가 울면서 엄마를 찾고, 문 앞에는 오소마츠를 닮은 남자가 서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카라마츠가 자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신음소리를 내자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악몽이라도 꾼 거냐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품에 안겨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소마츠는 가만히 카라마츠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건 전부 카라마츠가 아직 불안해서 그런 거라며 카라마츠를 다독였죠.”

결혼식은 왜 하지 못한다는 거지? 카라마츠의 나이가 어려서? 쵸로마츠는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남자는 오래 이야기를 하면 지친다더니, 영 이야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다. 악몽에 나오는 사람들은 누굴까?

다음날 오소마츠는 다시 시내로 돌아갔습니다. 오소마츠는 주연을 맡았고, 그가 하는 일들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카라마츠와 떨어져야 했죠. 카라마츠는 집 대문 앞까지 나가 오소마츠를 배웅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와 친해져볼까 싶어 어제 이치마츠와 오소마츠가 싸우던 방으로 갔습니다. 카라마츠가 노크를 하자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이치마츠가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잠깐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하고 카라마츠가 물었지만, 이치마츠는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으며 너 같은 정신 나간 애랑은 할 얘기 없어, 하고 문을 쾅 닫았죠. 생각보다 이치마츠가 자길 노골적으로 싫어해 카라마츠는 상처받았고, 다시 문을 두드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른 방을 하나하나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은 굉장히 넓었고, 쓰는 사람이 없어 손님방이라고 생각했던 방마다 그 방의 소유주였던 사람의 흔적이 가득 남아있었어요. 어느 방에는 한쪽 벽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큰 책장에 가득 악보가 꽂혀있었고, 어느 방에는 카라마츠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진 상 같은 것이 액자에 담겨 다닥다닥 걸려있었죠. 이젤과 먼지가 쌓여가는 캔버스로 가득찬 방이 있었고, 옷을 만들 때 쓰는 마네킹 같은 것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소마츠의 가족들은 끼가 많은 사람이었겠구나 싶어 카라마츠는 괜히 웃음이 나왔죠. 그가 사랑하는 오소마츠도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였고, 뭐든지 잘하는 남자였으니까요. 집 뒤편으로 나가자 오소마츠의 어머니가 막 양봉할 때 입는 옷을 벗으며 카라마츠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갓 딴 꿀로 가득찬 유리병이 들려있었어요. 시어머니는 카라마츠에게 우리 손주를 건강하게만 낳아주렴, 하고 유리병을 건네주었죠. 갓 딴 꿀을 드셔본 적이 있으신가요?”

남자가 갑자기 쵸로마츠에게 물었다.

글쎄요, 슈퍼에서 파는 꿀밖에 못 먹어본 것 같은데. 맛있나요?”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건 정말이지, 그저 달콤하다고 수식하기엔 죄스러울 정도에요. 카라마츠가 꿀을 한입 맛보고 감탄하자 오소마츠의 어머니는 그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어두컴컴한 방 한 구석에 거대한, 거의 카라마츠의 키만한 높이의 꿀 항아리가 있었어요. 유리로 된 것이라 안에 황금빛 꿀이 가득 차 있는 게 보였죠. 카라마츠는 보고 깜짝 놀라서 이 많은 꿀들을 시어머니가 모으신 거냐고 물었고, 시어머니는 자랑스럽게 그렇다고 말했죠. 아마 자기가 죽은 뒤에 카라마츠의 아이가 평생을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양일 거라고 하면서.”

꿀이 상하지 않는다고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조금씩 꿀을 모아서 그렇게 보관해도 되는 걸까?

오소마츠는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본가로 돌아와 카라마츠를 만났습니다. 일이 많을 때는 카라마츠에게 전화해 카라마츠가 잠들 때까지 가지 못해서 미안하고, 정말 사랑한다고 이야기했죠. 카라마츠는 좀 아쉬웠지만, 카라마츠는 그렇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오소마츠가 더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와 전화를 끊고 나면 무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 밤잠을 설쳤죠. 카라마츠는 아직 어렸으니까요. 그렇다고 아이와 오소마츠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이가 생긴 건지는 몰라도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만큼 아이를 사랑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카라마츠는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방문을 나와 큰 TV가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그 방에는 오소마츠가 좋아했다던 영화 비디오들이 많이 있었죠. 카라마츠가 그 중에 재밌어 보이는 걸 하나 골라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한 삼십분쯤 봤을까, 누군가 조용히 방문을 열었죠. 이치마츠였습니다. 카라마츠는 놀라 혹시 소리가 시끄러웠으면 미안하다며 볼륨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이치마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TV화면을 보다가, 카라마츠가 앉아 있는 소파 끝에 털썩 앉아 같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신경 쓰여 자리에서 일어날까 했지만 혹시 그게 이치마츠를 불쾌하게 하지는 않을까 싶어 계속 영화를 봤습니다. 좀 슬픈 영화였어요. 카라마츠는 어느새 영화에 빠져들어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빤히 보다가 물었죠. 영화가 재밌었냐고. 카라마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치마츠는 그런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습니다. 그 후로 가끔 카라마츠가 밤늦게 그 방에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꼭 이치마츠가 중간에 나타나 영화를 같이 보곤 했습니다. 따로 약속을 하지도 않았는데, 또 영화는 전부 카라마츠가 고른 영화였는데 이치마츠는 중간에 나가지도 않고 끝까지 카라마츠와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불륜느낌이 나는구만. 쵸로마츠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는 쵸로마츠의 표정을 보고 그의 찻주전자에 다시 뜨거운 물을 따라주었다.

지루하십니까?”

아니요, 재밌습니다.”

남자가 웃었다.

다행이네요. 이야기가 지루해지면 꼭 말씀해주세요. 주말이 되면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와 함께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갔습니다. 사실 그 집도 도시 외곽에 간신히 걸쳐 있었지만, 오소마츠는 혹시 카라마츠가 우울해하지는 않는지, 가족들하고 문제가 있진 않은지 계속 신경을 썼고, 카라마츠는 그런 다정한 오소마츠가 좋았어요. 날씨가 좋을 땐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가기도 했습니다.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카라마츠는 오소마츠의 무릎을 베고서 낮잠을 자고,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혹은 카라마츠가 눈을 뜰 때까지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어요.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의 얘기를 하고, 카라마츠가 연극에 대한 미련 때문에 침울해하면 오소마츠는 혹시 카라마츠가 밤에 외롭지 않느냐며 농담을 했죠. 카라마츠를 집에 두고 나갈 때마다 오소마츠는 카라마츠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가버릴까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면서요. 카라마츠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이치마츠와 자주 영화를 본다고 얘기했습니다. 둘이 영화를 보기로 한 게 아닌데 이치마츠가 어떻게 알았는지 꼭 와서 영화를 같이 보게 된다고. 오소마츠는 순간적으로 표정을 굳혔지만 카라마츠는 그게 그저 카라마츠가 잠들지 못하는 것 때문에 걱정을 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곧 오소마츠는 혹시 그 음침한 놈이 나랑 똑같은 얼굴이라 대신보고 만족하는 거냐며 웃었죠. 그런가? 카라마츠도 웃으면서 생각을 하는 척 하다가, 아니, 이치마츠는 이치마츠대로 다른 분위기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치마츠는 좀 슬프고, 음울하고, 신기하리만큼 오소마츠와 정반대라고. 두 사람이 어렸을 때 어땠냐고 카라마츠가 물었지만 오소마츠는 대답을 피하고, 카라마츠에게 키스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잡아먹는 듯한 키스였어요. 이런 야외에서 하면 자극적이지 않겠냐고 오소마츠가 속삭이자 카라마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오소마츠를 밀쳐냈습니다.”

남자의 이야기가 만약 실화라면 아마도 남자는 오소마츠일 거라고 쵸로마츠는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보고 순식간에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남자라고 묘사하다니. 나르시스트인가? 남자는 제법 잘생겼다. , 한번 보고 말 사람인데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까.

쿠키 좀 더 먹을 수 있을까요? 나중에 같이 계산하겠습니다.”

쵸로마츠가 머쓱해하며 빈 접시를 내밀자 남자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같이 먹자고 한 건데요. 맛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남자가 빈 접시를 들고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쿠키가 접시에 담겨있었다. 남자가 직접 굽는 건가? 쵸로마츠는 사양하지 않고 하나를 집어먹었다. 남자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쵸로마츠를 보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