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라] 택시 - 객원 선수로 뛰는 카라마츠 썰에 이어지는 것 같은 썰 3
이른 새벽 택시에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지금 뒷좌석에 탄 두 남자도 그렇다. 백미러로 슥 훑어보니 아무리 봐도 얼굴이 똑같이 생긴 게 쌍둥이 같은데, 아까 택시를 탈 때도 그렇고 어딘가 모르게 초상집 분위기가 난다.
남자 둘이다. 한 명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렸었는데, 히터를 틀고 하니까 턱까지 마스크를 내렸다. 머리가 새집같이 부스스하고, 좀 구부정하고. 눈에 힘이 없다. 아까 보니까 트렁크에 커다란 짐가방을 하나 실었던데. 독립하는 걸까? 아님 여행?
다른 하나는 눈썹이 짙다. 생긴 건 옆에 탄 형제랑 똑같이 생겼는데, 이쪽은 자세도 바르고 허리가 꼿꼿하다. 그냥 얼굴만 봐선 멋쟁이일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잠옷 같은걸 입고 위에 어중간한 가죽자켓을 입었다. 역시 친인척이 급사해서 헐레벌떡 뛰어나온 건가. 그러면 짐가방은? 둘 중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일까?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먼저 말을 걸 수는 없다. 분위기가, 영 누가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가죽자켓을 입은 쪽은 눈가가 시뻘겋게 부어서 누가 옆에서 툭 치기라도 하면 울어버릴 것 같다. 마스크를 탄 쪽도 자기 형제를 힐끔힐끔 돌아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이가 안 좋은가? 아니지, 형제끼리면 달래주고 하는 걸 좀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다.
“아저씨. 잠깐만 멈춰주세요.”
마스크를 쓴 쪽이 입을 열었다. 가죽자켓을 입은 쪽이 의아하단 표정으로 돌아봤다. 딱히 급하지도 않고.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멈춰서 기다려줄 정은 있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형제도 내렸다. 마스크를 쓴 쪽이 내 눈치를 좀 보더니 도로 저 아래쪽으로 가죽자켓을 입은 쪽을 끌고 갔다.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지만,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차도 없는 도로에서. 일부러 엿들으려 한 건 아니지만 들리는 걸.
가죽자켓을 입은 쪽이 형제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처박더니 곧 무너졌다. 반쯤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엉엉 울기 시작하는데 역시 부모님 상을 치르러 가는 모양이다. 마스크를 쓴 쪽은 달래주려고 하지도 않고, 가만히 서서 형제를 내려다보았다. 이쪽은 울지 않는다.
“어…어떡하지. 이제 어떡하지.”
가죽자켓을 입은 쪽이 울면서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뭘 어떡해.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냐.”
마스크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가죽자켓은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산채로 잡혀 먹히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나도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스크 쪽이 형이겠지. 동생을 달래주고 싶은걸 거야.
마스크는 한참 그대로 서 있다가 가죽자켓의 머리를 쓸어내리다, 가죽자켓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우는 소리가 좀 줄었다.
“누가…누가 알았을까. 우리 너무 오래 있었어. 들킬 수밖에 없는 건데, 왜 몰랐지.”
가죽자켓이 목이 매여 간신히 말했다. 오래 있어? 들키다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아닌가?
“그럼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어?”
마스크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냥 나랑 장난질 좀 치다가 그만두면 된다고 생각했냐? 그냥 잠깐 재미만 보고 말고?”
형제끼리의 대화라고 치기엔 뭔가 이상했다. 이걸 더 들어도 될까? 하지만 묘한 호기심이 들어 아주 조금, 두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죽자켓이 엉엉 울면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카라마츠. 똑바로 얘기해.”
마스크가 카라마츠라고 부른 형제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자세가 달라서 그런가. 카라마츠가 마스크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데 카라마츠는 맥없이 멱살을 잡혔다.
“흡, 이치마츠, 우린…우린 방금 가족을 버린 거야.”
카라마츠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공중에서 민들레 홀씨가 흩날리는 것처럼 놓아버린 목소리였다. 이치마츠가 작게 욕을 몇 마디 했다.
“엄마도, 아빠도, 형제들도. 우리가 방금 버렸어. 그, 문고리를 잡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제 다 알거야.”
카라마츠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야반도주를 했구나. 둘이. 세상에. 쌍둥이끼리 야반도주를 해? 그것도 남자 쌍둥이가? 어디 가서 얘기라도 했다간 거짓말이라고 욕먹기 딱인 얘기였다. 이치마츠가 씨발, 하고 카라마츠를 밀쳤다.
“그러면 처음부터 얘길 했어야지! 시발, 나 갖고 놀다가, 놀다가 적당히 때 되면 버리고 돌아 갈 거라고 얘길 했어야 될 거 아냐! 넌 그러고도 나랑 다시 보통 형제들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어? 병신아 너는 이제 나 보면 꼴린다고! 그게 정상이야? 너는 원래부터 정상 같은 거 아니었어. 너도 나도, 우린 존나 병신새끼들이라고!!!!”
이치마츠가 소리 질렀다. 텅 빈 도로에 이치마츠의 비명 같은 고함소리가 가득 찼다가 훅 하고 꺼졌다. 카라마츠는 놀라 우는 것도 멈추고 이치마츠를 올려다봤다. 어쩌다 그랬을꼬. 쌍둥이에, 보니까 다른 형제들도 있고. 간혹 따로 자란 남매들이 커서 만났다가 자기들이 한 핏줄인줄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는 본거 같은데, 한 배에서 동시에 태어나서 같이 자란 형제가 눈이 맞았다니. 좀 소름이 돋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웠지만 두 사람은 아직 차를 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카라마츠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이치마츠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추울 텐데. 이치마츠는 고개를 눈가를 연신 닦아냈다.
“내가 미안해.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카라마츠가 중얼거렸다. 울음기는 거의 가신 목소리였다.
“내가 형인데, 내가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렸어야 했어.”
“지랄하지 마. 우린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 너도, 나도 언젠간 달려들었을 거라고.”
“우리 죽을까?”
“죽으면 끝날 줄 알아?”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 형제인거, 쌍둥이인거 한눈에 알아볼 거 아냐. 그냥 게이도 아니고 쌍둥이 근친이라고.”
“얼굴 갈아버리면 돼. 다 뜯어고치지 뭐.”
넌 얼굴에 손댈 생각 하지 마. 내가 할 거니까. 이치마츠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카라마츠를 일으켜 세웠다.
“꼬라지 봐라.”
이치마츠가 퉁명스럽게 얘기하면서도 카라마츠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카라마츠는 다시 훌쩍거리다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우리 돈도 없는데 어쩌지.”
“아까 통장에 있는 거 헐어서 일단 잘 곳부터 구하고, 그다음에 막노동이라도 뛰지 뭐.”
“진짜 죽어도 안 끝나는 걸까?”
죽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지.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두 사람이 어디로 도망을 가든 간에, 이치마츠가 어떻게 얼굴을 고치든 간에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보니까 가족들에게 들킨 모양인데 가족들이 그들을 그저 내버려둘까? 부모는 아들 둘이 붙어먹었다고 그냥 알아서 살아라 하고 놓아줄까? 내 자식들을 떠올려보니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절대 안 된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갈라놓고 제대로 살도록 말릴 것이다. 저 형제는 아직 어려서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건 녹록치 않다. 동성애자라는 것도, 형제라는 것도. 언젠가 사랑이 식으면 두 사람도 지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이다. 두 사람이 이제 정리가 된 모양인지 차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해가 뜨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담배를 끄고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그 사이에 차가 식어 시트가 오싹했다. 택시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태웠다. 연예인도, 야쿠자도, 정치인도, 범죄자도. 불륜 커플을 태운 적도 적지 않았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눈물겹게 서로를 어루만지던 커플이었다. 하지만 저 둘은 달랐다. 나는 저 두 사람을 내 차에 태우면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가 있을까.
형제가 차에 탔다. 아까보다 좀 가까이에 붙어 앉아서,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지만 이치마츠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제 가죠, 하고 말했다. 나는 백미러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뒷좌석에서 간혹 카라마츠가 숨을 고르려고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났지만 별 다른 대화는 없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린 커플이었다. 순진하고, 사랑이면 모든 게 해결 되리라고 믿는 젊은이들. 그, 누구더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식을 올려주고 줄리엣에게 죽은 듯 잠드는 약을 주었던 성직자가 떠올랐다. 나는 그저 두 사람을 태우고 운전을 할 뿐이었지만 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징그럽다던가, 더럽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육욕을 쫓고 배덕감을 즐기려고 그런 관계가 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진 운명의 희생자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껏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지만 별 다른 대화가 오고가지는 않았다. 둘 중 한 사람의 휴대폰이 진동했지만 곧 멈췄다. 전원을 끈 모양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기차역까지 태워다주고, 돈을 받았다. 가방은 작았다. 저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야반도주를 하면서 챙겨 나올게 뭐가 있을까. 돈? 통장? 옷가지? 자식뻘인 나이였다. 한 끼 밥을 거르고 하루 밤을 새우는 게 무섭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곧이어 다른 손님이 택시를 불렀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도 될까? 쌍둥이로 태어나서 사랑에 빠진 형제가 야반도주 하는 걸 태웠다고?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잘못 없는 사람의 불행한 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두 사람이 행복하기만을 빌어줄 수는 없었다.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사랑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불행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있다. 불행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