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라] 안식의 오소마츠 프롤로그 4
이치마츠는 그날 밤 악몽을 꿨다. 잠들기가 무서워 이치마츠는 TV도 크게 틀어보고 졸릴 때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담배를 피우는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수마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술이라도. 이치마츠는 술에 약한 편이었다. 술에 약한 만큼 조금이라도 마시면 금세 취해서 꿈도 꾸지 않고 잠들 수 있었을 텐데 방 안 곳곳을 다 뒤져보아도 술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부엌을 뒤져볼까 하기도 했지만 누가 살인자인지 모르는 지금 눈에 띄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건 위험하다. 불현듯 카라마츠 생각이 났다. 카라마츠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카라마츠한테 시체 얘기를 해야 할까. 난방을 최대치로 올렸지만 이치마츠는 온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긴장한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치마츠는 진통제 두 알을 물도 없이 삼키고 소파 구석에 쪼그려 앉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문 한 겹 너머에 있는 시체도, 지금 이 저택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살인자도 무서웠지만 그보다 악몽이 무서웠다. 이치마츠는 다시 도살장의 그 피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게 느껴졌다.
“이치마츠!”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에 이치마츠가 눈을 떴다. 그는 소파에서 굴러 떨어져 테이블 사이에 낀 채로 자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카라마츠가 문고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이치마츠를 불렀다. 이치마츠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선물 사왔다! 이거 맛있다더라. 제일 비싼 거야.”
카라마츠가 금박 포장지가 요란한 과자 상자를 들이밀었다. 이치마츠는 울고 싶었지만, 밤새 눈물을 쏟아 온몸의 수분이 다 빨려나간 듯 했다.
“무슨 일이야? 이치마츠? 무슨 일 있었어?”
카라마츠가 놀라 과자상자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이치마츠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따뜻했다. 포근하고. 카라마츠는 평소랑 다르게 가죽 자켓도 해골벨트도 없이 하얀 셔츠에 짙은 색 가디건만 걸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잠깐 숨을 돌리고 카라마츠를 잡아 당겨 방안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갔다.
“무슨 일이야.”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양 뺨을 잡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반가우면서도 그가 이치마츠의 흉터에 손을 올리는 게 신경 쓰였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열이 나지는 않은지,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을 해보고 가디건 소매를 잡아당겨 이치마츠의 눈가를 꾹꾹 눌러 닦았다.
“지금 자다가 일어난 거 같은데 악몽 꾼 거야? 형아 며칠 못 봤다고 울었어?”
카라마츠가 피식 웃고 이치마츠를 다시 끌어안아 등을 토닥였다. 카라마츠의 머리카락에서 차가운 바깥 냄새가 느껴졌다. 새삼 이치마츠는 자신이 이 지하에, 딱 하나 있는 방에 혼자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치마츠는 가만히 카라마츠의 품에 기대어 숨을 고르다 조심스럽게 카라마츠의 허리에 팔을 둘러 안았다. 카라마츠가 싫어하면 바로 내려야지. 하지만 카라마츠는 움찔하지도 않고 이치마츠를 가만히 안고 있다 그의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꿈 얘기나 들어볼까. 과자도 먹고.”
이치마츠는 잠깐 멈칫 했다가 TV를 틀어 볼륨을 높였다. 카라마츠가 TV는 왜? 하고 물었지만 이치마츠는 대답하지 않고 카라마츠를 끌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뚜껑내린 변기 위에 앉혀놓고 자긴 세면대 앞 벽에 기대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이치마츠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시체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치마츠가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은 걸 간신히 버티면서 줄줄이 늘어선 냉장고를 확인해본 결과 총 네 구의 시체가 있었다. 젊은 여자와 남자, 장년의 남자 둘. 이치마츠는 최대한 냉장고를 건드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자리를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시체는 깔끔했다. 피 묻은 손으로 시체를 만져 자국이 남은 곳도 없었고, 칼에 찔려 죽은 것으로 보이는 시체들은 대부분 급소를 한 번에 찔려 죽은 것들이었다. 아마도 살인자는 한두 번 살인을 해본 사람도 아니고,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하게 시체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왜 시체를 냉동실에 둬야 했을까. 이치마츠를 대체 왜 고용해 이곳에서 시체가 있는 창고를 관리하게 했을까. 죽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왜 죽은 걸까. 저 사람들이 마지막 피해자일까.
이치마츠는 한참을 벌벌 떨다 순간 식당 아줌마가 늘어놓던 소문이 생각났다. 이 집에서 실종된 박사와 아들, 딸, 그리고 주치의. 네 명. 이치마츠는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이 서재에서 빌려온 책들을 옆구리에 낀 채 마스크를 쓰고 방 밖을 나가 문을 잠갔다.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 꼭 다리에 납덩이가 매달린 것처럼 무거웠다. 한 걸음 한 걸음. 충격으로 쓰러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치마츠는 강했다.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2층에 올라가 복도에 혹시 누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이 풀려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치마츠는 비틀거리다 테이블 위에 책들을 대충 올려놓고 박사가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을 뒤졌다.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지 서랍이 뻑뻑해 잘 열리지 않았다. 손이 떨리고 시려 그저 서랍의 내용물만 확인하는데도 힘들었다. 서랍에는 온갖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칸에서, 이치마츠는 세 남자와 두 여자가 활짝 웃으면서 찍은 단체사진을 발견했다. 안타깝게도, 모두 이치마츠가 직접 얼굴을 확인했던 사람들이었다. 죽었구나. 다들.
사진 뒤편엔 볼펜으로 거의 30년 전의 날짜와 ‘처남 생일에 온 가족이 모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다시 사진을 확인해보니 박사의 아내를 사이에 두고 서있는 남자의 양복상의 주머니에 청진기가 삐져나와있었다. 주치의는 박사의 처남이었던 것 같았다. 이치마츠가 식당 아줌마한테 듣기론 함께 실종된 사람이 이 집안사람들의 주치의라고 했는데, 아마 주치의가 실종된 다음에 이 집에서 일하게 된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이치마츠는 사진을 접어 바지 주머니에 꾹 쑤셔 넣고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던 책을 책이 원래 꽂혀 있던 자리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가 빌리고 있던 아라비안나이트 시리즈의 다음 권을 꺼내들고 서재 문을 나섰다.
카라마츠는 입을 떡 벌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이치마츠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치마츠는 목이 타들어가 세면대에서 수돗물을 한 컵 받아 한 번에 마셨다.
“이게 그 사진.”
이치마츠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내밀었다. 카라마츠는 몇 번이나 사진을 앞뒤로 넘겨가며 보다가 다시 이치마츠에게 돌려주었다.
“그럼 저, 그니까, 창고에 시체가 있는 거네. 네 명이나.”
이치마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시체, 확인해보려면 봐.”
안 보는 게 좋지만……. 이치마츠가 말끝을 흐렸다. 카라마츠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을 못 믿는 게 아냐. 그냥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는 거야.”
이치마츠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도 수없이 많은 시체를 보았지만 사람의 시체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눈을 감으면 간밤에 꾼 그 악몽이 눈앞에 선했다. 끼기긱,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창고 문이 천천히 열리고, 얼어붙은 시체들은 줄줄이 기어 나와 그의 주변을 맴돈다. 바닥에 단단한 얼음이 끌리는 소리가 난다. 드드득, 드드득. 그리고 한 명씩 입에서 더운 김이 오르는 선지피를 쏟아낸다.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시뻘건색의 피는 이치마츠가 매일 매일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들이었다.
이치마츠의 안색이 다시 나빠지자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손을 잡았다.
“우리 도망쳐야겠네.”
“...응.”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데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우리, 라고 말해준 게 고마웠다. 이치마츠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을 때 그는 카라마츠를 떠올렸다. 좋아. 이런 상황에서도 함께 라고 해줘서 고마워. 이치마츠 자신은 어딜 가든 눈에 띄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가 하는 얘기를 듣고 혼자 도망칠 수도 있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짐이 될 거고,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에게 먼저 함께 도망치자고 말할 수 없었다. 카라마츠가 딱 잘라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치마츠가 고집을 부려 카라마츠에게 매달린다면 카라마츠는 애써 웃으면서 그래, 그러자 하고 이치마츠를 받아줬다가도 점점 그를 부담스럽고 귀찮은 존재로 느낄지도 몰랐다. 고마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아. 나중에 부담스러워져서 나를 버려도 좋아. 내가 네 친절에 너무 기대고 의존해서 미안해. 사실 우리 사이는 별 특별한 게 아니란 걸 내가 더 잘 아는데 이렇게 집착해서 미안해.
“그런데 왜 너를 이 방에 살게 했을까.”
카라마츠가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치마츠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는 그가 그닥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대졸자 초봉에 가까운 돈을 받고,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는다는 게 신경 쓰였지만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 저택에서 일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엔 하루 24시간동안 계속 도살장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따지고 생각하고 할 것도 없었다. 시체를 숨긴 사람이 이치마츠를 이 방에서 살게 했다면 이치마츠가 시체를 확인할 거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기사님.”
그 사람이 시체를 숨긴 게 아닐까, 카라마츠가 입을 열었다. 이치마츠는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가 시체를 숨겼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이 방에 이치마츠를 살게 하고 매달 내려와 혹시 이치마츠가 시체를 건드리진 않았는지 확인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겸사겸사 창고 점검을 했더라도, 점검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냉장고 안을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네 전임자도 혹시 죽은 게 아닐까?”
카라마츠가 물었다. 이치마츠는 아, 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치마츠가 처음 이 저택에 왔을 때 식당 아줌마는 이치마츠가 머물게 될 방이 한동안 쓰지 않았던 것이며 원래 고기를 운전기사가 날라주었다고 했다.
이치마츠는 저택의 내부 구조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빈 방은 많았다. 손님용 방을 하나 내줄 수도 있는 일이었고. 그렇지만 이치마츠를 굳이 이 지하에, 단 하나 있는 방에, 그것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체가 있는 방을 내 줄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이 방은 이치마츠를 가두기 위한 무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