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라]증거라는 이름의 허울 4
물은 삼일 만에 끊겼고, 전기는 사일을 버티다 끊겼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집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안에 남은 음식들로 연명했다. 통조림이나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들보다 상하기 쉬운 것들을 먼저 먹었다. 물이 끊기고 나서는 생수를 목욕탕에 부어놓고 씻었지만 물은 금세 동났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닌 조용한 도시에서 생존을 걱정하기 시작한다는 건 오묘한 기분이었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마지막 생수통을 탁탁 털어 마지막 물 한 방울까지 마시곤 햇볕에 잘 널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 수돗물 대신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이제 집 밖으로 나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카라마츠는 쌍안경을 들고 발코니로 나가 한참 골목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치마츠는 편한 옷을 챙겨 입고 커다란 배낭을 찾아 멨다. 카라마츠도 배낭을 찾아 메고 손수레를 집어 들었다가 아차, 하고 이치마츠에게 넘겨주었다.
“왜?”
이치마츠가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묶다가 물었다.
“혹시 공격받을지도 모르니까?”
카라마츠는 쥬시마츠의 알루미늄 야구배트를 챙겼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는 것 같더니 부엌으로 가 식칼을 들고 현관으로 걸어왔다. 칼날이 번뜩거리는 걸 보고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렸다. 카라마츠는 식칼을 허리춤에 어떻게 고정을 시키곤 이치마츠의 옆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었다.
거리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이치마츠는 배낭을 꽉 붙잡고 서서 카라마츠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카라마츠의 손을 잡았다. 집밖에서 다시 손을 잡고 있으려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라마츠도 이치마츠의 손을 꼭 잡았다. 고양이도 없고, 참새도 없고, 심지어 쥐도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조용한 골목이었다.
둘은 슈퍼마켓을 향해 걸었다. 마시고 몸을 씻을 때 쓸 물을 좀 가져오고, 라면이니 통조림이니 하는 것들이 아닌 좀 신선한 것을 먹고 싶었다. 이치마츠는 아삭한 배의 식감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배가 있을까? 카라마츠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카라마츠도 먹는 걸 좋아했고, 마음이 급했겠지. 그러나 상가 골목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나는 듯 빠르게 걸어가다 상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기 전에 벽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골목을 내다보았다.
저번에 봤던 것보다 사람껍질을 한 것들의 수가 줄어있었다. 그리고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이치마츠는 헛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참고 입을 막았다. 저번에 보았을 때는 그 사람들이 느긋하게 드러누워 있거나 햇볕을 피해 숨어있었는데, 지금은 엉거주춤하게 골목을 배회하며 뭔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뭘 찾는 거지?”
카라마츠가 작게 속삭였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더 내밀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가게에 쌓여있던 과일이며 야채들의 찌꺼기가 길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이 골목에 머무르는 무리들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새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새 먹이는 뭘까? 이치마츠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사람이 사람의 생살을 뜯어먹을 수 있을까?”
이치마츠가 물었다. 카라마츠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줄을 놓아버리면 못할 건 없지 않을까?”
“다른 집을 털어볼까? 물이나 비상식량 같은 건 쌓아두고 있잖아, 보통.”
“좁고 격리된 공간에서 공격당하는 것 보단 밖이 낫지.”
카라마츠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니면 저 뒤쪽에 작은 슈퍼 쪽으로 가볼까?”
“아냐, 발코니에서 봤을 때 거긴 셔터를 다 내려뒀더라고. 못 들어갈 거야.”
방법이 없었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이 도시 어딘가에 이치마츠와 카라마츠 같은 조난자들이 남아 있을까?만약 혼자 남아있다면 이미 죽어버렸을까? 무섭고 외로워서 산체로 뜯어 먹히는 걸 선택했을까, 아니면 조용히 목을 맸을까? 카라마츠가 허리춤에서 식칼을 꺼내 이치마츠에게 건네주었다.
“여차하면 눈 꼭 감고 찔러버려.”
이치마츠가 마른 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마츠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야구배트를 고쳐 쥐었다. 카라마츠가 앞장서서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손수레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조용한 골목 안을 울렸다. 그 순간, 골목 안에 있던 것들이 전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치마츠는 놀라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다들 이상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옷을 반쯤 벗은 사람도 있었고, 오물에 뒤덮인 것 같은 꼴을 한 사람도 있었다. 손 하나가 떨어져나가 허전한 팔을 휘두르며 어기적거리고 걷던 사람이 고개를 돌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에게 한발자국 다가왔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야구배트를 있는 힘껏 휘둘러 전봇대를 후려쳤다. 쇳덩이가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찔렀다. 손 엄청 아프겠는데? 소리에 놀랐는지 사람들이 뒷걸음질 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카라마츠는 전봇대를 시작으로 마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배트로 계속해서 큰 소리를 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뒤에 바짝 달라붙어 그를 따라갔다.
마트 입구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아마도 이치마츠는 저번에 편의점 안에서 봤던 사람들의 흔적을 떠올렸다. 봉투를 뜯는 법은 모르고 무작정 힘으로 봉투를 뜯어 안에 든 것들을 먹어치웠었지. 카라마츠는 먼저 마트 입구에 서서 숨을 가다듬더니 문 옆을 배트로 후려치며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놀란 표정을 한 사람 몇이 마트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이 이치마츠의 코앞을 스쳐지나가서 이치마츠는 놀라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카라마츠도 뒤로 물러나 이치마츠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들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들의 뒤로 퀴퀴한 냄새가 남았고, 팔에 소름이 돋았다.
“칼 계속 들고 있어야 돼. 안 나온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카라마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치마츠는 그들을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 안에서 썩는 냄새가 났다. 이치마츠는 입으로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과 비슷한 때에 전기가 끊겼다면 끊긴지 제법 오래되었을 거고, 그러면 고기나 야채, 두부 같은 것들도 모조리 썩어버렸을 것이다. 카라마츠는 일단 라이터를 한 움큼 들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야채와 과일들은 썩어 문드러져있었다. 이치마츠는 상자채로 썩어버린 배 앞을 지나치지 못하다 카라마츠가 소매를 잡아끌어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야채와 과일, 생선 코너는 황급히 지나쳤고, 그들은 라면과 국수, 레토르트 식품과 통조림을 배낭에 담았다. 손수레에는 물을 가득 실었다. 뭔가 다른 걸 먹고 싶었는데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다. 이치마츠는 낑낑거리며 손수레를 끌고 가다 마트 안쪽엔 창고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마트 안쪽에 창고가 있어.”
“창고?”
카라마츠가 독한 술을 집어 들면서 물었다.
“거기에 다른 물건이 있을지도 몰라.”
카라마츠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그들의 배낭과 수레는 무거웠고, 들고 가기 힘들 정도로 물건을 많이 가지고 나가면 갑자기 공격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반격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치마츠는 창고 안쪽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어머니를 따라 장을 보러 왔을 때 안에서 직원이 물건을 들고 나오는 걸 본적이 있었다. 아득하리만치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창고는 손잡이를 아래로 내려 여는 문이었다. 저 사람은, 아니 짐승들은, 하여간에 저것들은 들어가지 못했을 것 같았다. 이치마츠는 손수레를 놓고 카라마츠를 향해 손짓했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맥주병 하나를 옆 기둥에 부딪쳐 깨뜨렸다. 파삭, 하는 소리가 나고 맥주가 줄줄 흘러나왔다.
“터프하네.”
이치마츠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카라마츠도 씩 웃으며 바닥이 깨져 뾰족하게 위협적인 무기가 된 맥주병을 칼처럼 휘둘러 보였다. 웃는 것도 간만이었다.
이치마츠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내려 문을 열었다. 안에는 빛도 하나 없이 어두웠고, 카라마츠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켜졌다.
그 순간, 캬아아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이치마츠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카라마츠가 먼저 손을 뻗었다. 라이터는 바닥에 떨어져 잠깐 타오르다 꺼졌다. 누가 새된 소리로 작게 신음소리를 흘렸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카라마츠!”
이치마츠가 놀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축축한 액체가 만져졌다. 설마, 설마 카라마츠가. 어둠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이치마츠는 혹시 가까이서 보면 조금이라도 보일까 싶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때, 이치마츠의 어깨에 무거운 손 하나가 얹어졌다.
“가자.”
카라마츠의 목소리였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카라마츠였다. 이치마츠는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 창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카라마츠는 창고 문을 열고 이치마츠를 먼저 내보냈다. 이치마츠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어둠속에 잠기는 창고 안쪽을 흘깃 보았다.작은 손이 보였다가, 창고 문 너머로 사라졌다.
카라마츠는 창고 바깥으로 나와 문을 닫고선 문에 기대 스르륵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카라마츠의 손에 피가 엉망으로 묻어있었다. 이치마츠는 자기도 모르게 카라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카라마츠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이치마츠는 옷 상의로 카라마츠의 손에 묻은 피를 문질러 닦았다. 카라마츠의 피가 아니었다. 이치마츠는 배낭을 내려놓고 윗옷을 벗어 카라마츠의 얼굴과 목, 손에 튄 검붉은 핏방울을 닦아냈다. 손이 떨려 자꾸 옷을 놓쳤다. 카라마츠의 눈동자가 힘없이 이치마츠의 손을 따라 움직이다 이치마츠가 결국 옷을 떨어뜨리자 이치마츠의 손을 잡아 당겨 안았다. 카라마츠는 떨고 있었다. 이치마츠의 맨 목과 가슴에 카라마츠의 마른 숨이 닿았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창고에서 뭘 보고 싶어 했던 거지?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끌어안고 토닥거렸다. 창고 안에 뭐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 거야?쓰레기새끼. 카라마츠의 옷 뒤쪽에 누군가 피 묻은 손으로 움켜잡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윗옷을 벗겨 손에 둘둘 말았다. 그리고 카라마츠에게 손수레를 맡기고, 카라마츠가 했던 것처럼 야구배트로 전봇대 같은 곳을 후려치며 큰 소리를 냈다. 야구배트가 부딪칠 때마다 이치마츠의 팔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카라마츠는 말없이 손수레를 끌고 따라왔다. 이치마츠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저 손수레 바퀴가 구르는 소리를 듣고 카라마츠가 따라오고 있음을 짐작했을 뿐.
이치마츠는 뒷마당 한 구석을 파 안에 말라죽은 나뭇가지를 좀 뜯어 넣고 불을 붙였다. 불이 적당히 타기 시작하자 냄비에 쌀과 물을 넣어 구덩이 위에 얹었다.
카라마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한 병 들고 욕실로 들어가더니 나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이치마츠는 욕실 문 앞에 앉아 카라마츠가 나오길 기다리다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해 부엌 한 구석에 쌓았다. 그리고 카라마츠가 벗어서 밖에 내놓은 옷에 핏자국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핏자국을 발견하면 칼로 긁어냈다. 까맣게 말라붙은 핏자국을 긁어내면서, 이치마츠는 지금 그가 칼로 긁고 있는 것이 자신의 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만 세상에 남은 이후로 처음 느끼는 자기혐오였다.
쌀은 밥보다는 미음 같은 것이 되었다. 이치마츠는 그래도 그걸 그릇에 덜고, 구덩이의 잔열로 레토르트 카레를 데웠다. 뜨뜻미지근한 온도에서 더 데워지질 않아 포기하고 그릇에 담았다. 카라마츠는 여전히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커다란 타월과 카라마츠의 속옷, 그리고 얇은 옷을 가지고 나와 문을 두드렸다.
“카라마츠.”
“...응.”
카라마츠도 문 앞에 기대있었는지 바로 앞에서 대답이 들렸다.
“밥 먹자.”
“응.”
문이 천천히 열렸다. 카라마츠는 욕실 창문의 블라인드도 다 내리고 어두컴컴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던 것 같았다. 몸이 차게 식어있었다. 이치마츠는 타월을 펼쳐 카라마츠를 감싸고, 대충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고 속옷을 내밀었다. 카라마츠는 얌전히 이치마츠가 시키는 대로 옷을 입었다.
꾸역꾸역 밥을 먹고 카라마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둘만 남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카라마츠가 먼저 떨어져 있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치마츠는 거실에 앉아 습관처럼 티비를 켜려고 리모컨을 들었다. 그러나 티비는 켜지지 않았고, 거실 베란다에 조금 열린 틈으로 작게 바람이 불어와 이치마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오후였다. 이치마츠는 어서 밤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라마츠가 얼른 잠에 빠져들어 모든 걸 잊어버릴 수 있다면 좋을 거야.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려 베란다 바깥을 보았다. 해가 조금 진 것 같았다.
아니, 카라마츠는 잠들지 못했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가 헛구역질 하는 소리에 잠이 깨 방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카라마츠는 어두운 화장실에서 변기통을 붙잡고 나오지도 않는 것을 토해내느라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옆에 있던 생수병으로 입을 씻었다가, 다시 구역질을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화가 났다. 자기 자신에게 나는 화였다. 이치마츠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발장 위엔 말끔한 식칼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이치마츠는 식칼을 집어 들어 단단히 쥐고 문 바깥으로 나갔다.
오래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치마츠는 손에 든 것을 다시 고쳐 잡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카라마츠가 문 앞에서 쩔쩔매면서 이치마츠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이치마츠를 발견하고, 달려와 이치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이치마츠! 그렇게 나가버리면 걱정하잖아!”
“사냥을 했어.”
“뭐?”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잡아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이치마츠는 손에 든 것을 질질 끌면서 뒷마당으로 나갔다. 카라마츠가 보기 힘들어할 머리나, 손, 발 같은 건 다 잘라서 내버리고 왔으니 좀 덜할 것이다.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멱살을 잡았다.
“누가 너보고 이런 짓 하래? 이러면 내가 죄책감이 덜해질 것 같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손을 뿌리치고 칼로 사냥감의 목에서 배까지를 길게 잘랐다. 도살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대충 이렇게 하지 않을까, 하고 이치마츠는 뼈를 따라 고기를 잘라냈다.
“이건 고기야.”
이치마츠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짐승을 잡았고.”
내장이 바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나는 사냥을 했어.”
카라마츠가 이치마츠의 등 뒤에 주저앉아 이치마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곤 곧 엉엉 소리 내며 울기 시작했다. 이치마츠의 등이 뜨끈하게 젖어왔다. 이치마츠는 달빛을 받으며 고기를 썰어냈다. 내장은 금방 썩을 테니까 내일 해가 뜨면 바깥에 버리고 오고, 고기는 훈제를 하든 뭘 하든 먹을 만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자. 비릿한 피냄새가 났다. 이치마츠는 아까 뱃속에 든 것을 모조리 토해버리고 와서 그런지 신물이 올라왔다.